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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다보탑이야기 2014-02-11

浮萍草 2014. 2. 11. 07:00
    <삼국유사> 효선 제9 ‘대성이 두 세상의 부모에게 효도하다(신문왕 때)’를 보면“모량리 가난한 여인 경조의 아들 대성은 품팔이로 얻은 밭을 시주하여 후세 응보를 도모하고 얼마 후 죽어서 나라 재상 김문량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른이 되어 곰을 죽인 것이 인연이 되어 죽인 곰을 위해 장수사를 세우고 이에 감동하는 바가 있어 자비로움이 더욱 독실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현생의 부모를 위해 경주 불국사를 세우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를 세웠다. 불국사의 구름다리와 석탑은 장안의 여러 사찰 중 어느 것 보다 뛰어났다”고 전한다. 이러하듯 누구나 잘 아는 경주 불국사에 가면 백운청운교를 넘어 자하문을 지나 대웅전 앞에 서면 다른 모양의 두 개의 탑을 보게 된다. 이 두개의 탑은 부처님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어 우리나라가 부처님의 나라임을 증명해 보이고 있어 불국사이다.
    법화경 들으려 보탑이 불쑥 솟아오르다
    東에 위치한 불국사 다보탑, 경전 따라 표현 통도사 영산전 벽화 속 탑, 아름다움의 극치 탑 속 앉은 석가모니.다보여래 중생에 법문
    경주 불국사 다보탑
    국유사에서도 말하였듯이 효심으로 조성된 부처님의 나라는 1300년을 지나도 부처님 사상과 조형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전에 의거한 완벽한 부처님의 나라를 불국사에 건설하였다. 먼저 서쪽에 자리한 탑이 석가탑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상징한다. 그 당시 인도 마가다국 영취산(기사굴산)에서 묘법연화경을 설하시는 장면 으로 인도 영취산 꼭대기는 바위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석가탑 기단석 밑이 자연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탑 주변에는 8송이 연꽃이 피어난 팔방금강좌가 있다. 이 자리는 보살들이 앉았던 곳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에워싸고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어 사실성을 더해주고 있다. 또한 동쪽에는 다보탑(多寶塔)이 보배가 많은 탑이란 이름에 걸맞게 일반 적인 석탑과는 완전히 다른 독특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두 석탑의 배치와 형태는 철저히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견보 탑품(見寶塔品)의 내용에 따라 이루어졌다. 경전에 보면“그때 부처님 앞에 칠보탑이 하나 있으니 높이는 5백 유순이요, 넓이는 2백 5십 유순으로 이 탑은 땅에서 솟아나 공중에 머물러 있다. 그것은 가지가지 보물로 장식되어 있으며 5천개의 난간과 천만의 방이 있으며 한량없이 많은 당번(幢幡)을 장엄하게 꾸미고 보배영락을 드리우고 보배 방울 또한 그 위에 수없이 달았으며,그 사면에는 다마라발전단향을 피워 향기가 세계에 가득하고,모든 번개(幡蓋)는 금,은,유리,자거,마노, 진주,매괴 등 칠보를 모아 이루니 그 탑의 꼭대기는 사천왕궁에까지 이르렀다. 이때 보배탑 가운데서 큰 음성으로 찬탄하여 말하길 ‘거룩하시고 거룩 하시도다. 석가모니 세존이시여! 능히 평등한 큰 지혜로 보살을 가르치는 법이시며, 부처님께서 보호하고 생각하시는 묘법연화경으로 대중을 위하여 설하시니, 이와 같이 석가모니 세존께서 하시는 말씀은 모두 진실 이니라’ 하였다.”
    파주 용미리 석가, 다보 이불병립상
    경전의 내용처럼 경주 불국사 다보탑은 다른 석탑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이다. 먼저 동쪽에 위치하여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항상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하여 앉으셨다. 깨달음에 이르실 때도 동녘 샛별을 보셨고, 법화경 서품에 보면 “그때 부처님 께서 미간의 백호상으로 광명을 놓아 동방의 1만 8천세계를 비춰 두루 하지 않은 데가 없다”하여 동쪽을 향해 앉으셨음을 알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앉으신 자리 앞 동쪽에 다보탑이 솟아올랐던 것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석탑에 난간을 두른 것도, 계단 위에 큰 방을 둔 것도, 모두 경전의 내용을 이해하고 표현한 것이다. <법화경>에 보면“이 보배탑 속에 동방 보정(寶淨)이라는 나라의 다보여래가 계시며 그 부처님은 ‘시방국토에 법화경을 설하는 곳이 있으면 나의 탑은 이 법화경을 듣기 위해 그 앞에 솟아올라 증명하고, 거룩하다고 찬탄하리라’ 하였느니라. 대요설아 지금 다보여래의 탑도 이 법화경을 들으려고 땅에서부터 솟아나 거룩하다고 찬탄하느니라.”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모든 사부대중들이 일어나 보배탑을 열어주기를 원하는 것을 들으시고 허공 가운데 머무르시며 오른 손가락을 튕겨 칠보탑의 문을 여니 다보여래께서 보탑 안에서 선정에 드신 듯하였고,‘거룩하시고 거룩하시 도다! 석가모니불께서 법화경을 설하시니 이 경을 듣기위해 여기에 왔노라.’하였다. 그때 다보여래께서 자리를 반으로 나누어 드리고‘석가모니불께서 이 자리에 앉으소서’ 하여 허공에 머문 다보탑 속에 들어가기 위해 다보탑에는 다른 석탑 에서는 볼 수 없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이 계단을 밟고 다보여래의 방으로 들어가자 다보여래는 자리를 나누어주며 앉기를 권하였다.
    통도사 영산전 벽화 다보탑
    이것이 두 분의 부처님이 함께 나란히 자리한다 하여 이불병좌(二佛竝坐) 혹은 이불병립(二佛竝立)이라 한다. 법화경 내용에 따라 석가모니불과 다보여래가 함께 그려지고 조각되기도 한다. 아울러 사찰의 금당 앞에 탑이 2기가 나란히 자리하는 것 또한 석가모니불과 다보여래를 상징하여 법화경 사상을 강조하였다. 이와 더불어 법화경 견보탑품의 내용을 불화로 잘 설명한 곳이 양산 통도사 영산전 벽화이다. 밝은 황금색과 붉은색,녹색이 조화를 이루어 경전의 내용대로 수많은 난간과 많은 당번(幢幡)을 장엄하게 꾸몄으며,보배 영락을 드리우고 보령(寶齡) 또한 그 위에 수없이 달아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또한 꼭대기 번개(幡蓋)는 칠보를 모아 장엄하였으며 탑의 꼭대기는 천상에 까지 이른 듯하다. 탑 속에는 석가모니불과 다보여래가 나란히 앉아 계시는데 경전에 보면“그때 대중들은 생각하기를 ‘부처님 자리가 매우 높고 멀어 우리들로 하여금 허공에 머물도록 하여 주소서’ 하니 석가모니불께서 신통력을 나타내시어 대중들을 허공 가운데로 모두 이끌어 올리시고 큰 음성으로 사부대중에게 널리 말씀 하셨다. ‘누가 능히 이 사바세계에서 묘법연화경을 설하겠느냐? 지금이 바로 이 경을 설할 때이니라.” 하셨다. 이와 같이 탑 주변의 보살과 제자들이 들어 올려져 구름 속에서 이 광경을 보고 찬탄하고 있으며 상서로운 오색구름은 공중에 떠 있는 다보탑을 더욱 장엄하고 있어 아름답다. 파주 용미리 석불(石佛)인 석가모니부처님과 다보여래를 두고 세간에서 남자, 여자 부처님으로 말한다니 세상에 남자부처님이 어디에 있고 여자부처님이 어디에 있는가? 무조건 음양으로만 따지려는 발상이 참으로 안타깝다. 법화경의 내용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양산 통도사 영산전 벽화 주변 사부대중
    이불병립 형태를 취하고 남쪽을 향한 두 분 중 연꽃줄기를 들고 계시며 설법 인의 수인과 둥근 보관을 쓰고 계신 분이 석가모니불이다. 서 계신 곳도 서쪽이며 법화경을 설하시기 때문에 설법인을 취하고 있으며 법화경의 주존불(主尊佛)로 사바세계의 교주이시기 때문에 하늘을 상징(天圓) 하는 둥근 보관을 하고 계신다. 그리고 그 옆 다보여래는 협시불(挾侍佛)이기에 석가모니불보다 조금 작게 표현되고 동쪽에 서 계신다. 법화경을 들으시는 합장인의 화불(化佛)모습을 하고 있으며 땅에서 솟아올라 땅을 상징(地方)하는 사각보관을 쓰고 있어 확실히 법화경 견보탑품의 두 분의 부처님(二佛)임을 알 수 있다. 신라시대나 고려시대나 또한 조선시대에도 시대를 막론하고 믿음이 어려운 사람에게 부처님의 실체를 열어 보여 믿으려 하지 않는 중생들에게 끝까지 자비의 손길을 펼쳐 대백거(大白車)가 끄는 일승(一乘)의 법화경. 1300년 전 불국토를 장엄한 김대성의 효심으로 돌아가 믿음이 부족한 이 시대 에 다시 한 번 묘한 법 향기를 내뿜는 연꽃으로 피어오르길 간절히 바란다.
    불교신문 Vol 2479         권중서 조계종 전문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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