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불교미술의 해학

43.사람이 되고 싶은 용의 서원

浮萍草 2014. 2. 25. 07:00
    아직 번뇌가 남아있어 윤회의 세계에 머무른다면 천,아수라,인간,축생,아귀, 지옥인 육도중생 가운데 어디가 제일 좋을까? 천상의 세계는 즐거움만 있어 공부에 마음을 두지 않아 시간이 흐르면 결국 나락(奈落)으로 떨어지고,아수라 또한 싸움에만 정신이 팔려 목숨이 꺼지는 등불 같으며,죽음의 공포 속에서 결국 생을 마감하는 축생의 어리석음과 배고픔의 과보에 눈이 뒤집혀지는 고통을 감내하는 아귀나 고통을 멈출 시간적 여유가 없는 지옥 등은 자신의 내면을 살필 시간적 여유가 없어 성불의 길은 멀고도 멀기만 하다.
    인간 되려했지만…순간의 성냄으로 ‘와르르’
    자신 잡으려는 인간에 악심 안 품으려 ‘발버둥’ 오히려 탐욕스런 어부들에 ‘측은한 눈빛’ 보내 인욕바라밀 수행하는 용의 모습…큰 감명 받아
    안동 봉정사 영산암 송암당 외벽 벽화
    러면 인간은 어떨까? 인간은 살아가면서 천상에서부터 지옥에 이르기까지 윤회의 세계를 모두 다 느낄 수 있으니 자기 마음먹기에 따라서 쉽게 성불에 이르기도 하고 나태하여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성불의 길에 이르기 쉬운 인간 몸 받기가 그리 쉽지 않다고 말한다. 용(龍)은 변화무쌍한 자신의 능력을 바라지 않고 오직 인간으로 태어나서 성불하기를 갈구한다. 용의로서의 체면, 용기, 전지전능 다 버리고 오직 참고 견디는 인욕바라밀 수행으로 인간으로 몸 받기를 원한다. 그만큼 육도중생 중 인간이 최고라는 의미이다. <보살본연경> 용품(龍品)에 보면“보살이 예전에 성낸 인연으로 용 가운데 떨어져서 기독(氣毒),견독(見毒),촉독(觸毒) 등 세 가지 독을 지닌 몸을 받아 용의 무리 가운데 왕이 되었다. 어느 때 금시조가 용의 무리를 잡아먹으러하자 용왕은 금시조에게 말하였다. ‘너는 내게 항상 원한과 해함을 냈지만 나는 네게 도무지 악심이 없노라. 내가 숙세의 업으로 이 큰 몸을 받고 비록 힘이 있으나 일찍이 남에게 악심을 내지 않았노라. 능히 큰불을 토하며, 큰 몸으로 해와 달을 가리고 혹 작은 몸으로 연뿌리 실 구멍 속으로 들어가고 또한 땅을 강과 바다로 만들며 산을 움직이는 신통한 능력을 지녔으나 너와 더불어 싸움하지 않는 것은 내가 네게 악함을 내지 않는 때문이다. 내가 비록 짐승의 몸이지만 업보를 잘 알아서 작은 악이라도 그 악의 업보가 쫓아와서 그냥두지 않는 것이 마치 형체의 그림자가 서로 떨어지지 않는 것과 같음을 살피어 아느니라. 너는 응당 여래의 말씀하신 바를 깊이 생각할 지니라. 원망하는 마음으로는 능히 원증(怨憎)을 쉬지 못하네, 오직 욕됨을 참아야만 그 다음에 이것이 없어지네’하였다.” 용의 능력이 무궁무진함에도 싸우지 않고 참아서 자비심을 내었다.
    구례연곡사 부도비 이수
    또<본생경> 산카파라 용왕의 전생 이야기를 보면“산카파라 용왕이 사람이 되고 싶어 포살일 지키기 위해 ‘내 가죽이나 살이나 무엇이건 바라는 이는 가져가십시오’ 하고 둑 위에 누워 있는 것을 두메산골 사람들이 보자‘오늘은 내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내 몸을 저들에게 아주 맡기고 오로지 마음을 고요히 하여 저들이 칼로 내 몸을 끊더라도 성을 내어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고 결심을 굳게 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날카로운 꼬챙이로 여덟 군데를 찌르고 새 꼬챙이로 콧구멍을 찔러 밧줄을 꿰어 머리를 들어 올리고 산채로 끌고 갔다.” 이렇듯 용의 서원이 담긴 경전의 이야기를 벽화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 안동 봉정사 영산암이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영화로 유명해진 장소이기도한 영산암 송암당 외벽 면을 잘 살펴보면 용왕의 인욕 바리밀행을 볼 수 있어 가슴이 아리다. 용왕으로의 권위와 능력을 모두 버리고 오직 포살계를 지켜 인간으로 태어 나고자 하는 서원에 숙연해 진다.
    송암당 전면 포벽에 있는 그림을 보자. 용을 잡으려는 인간의 욕심이 한없이 드러난다. 커다란 용이 갈고랑이에 코를 꿰어서 어부와 한바탕 줄다리기를 한다. 배를 탄 어부는 웃통을 벗어 던지고 있는 힘을 다하여 용을 당겨 보려한다. 꿈쩍도 하지 않는 용에게“야! 용 너는 나에게 딱 걸렸어. 나에게 잡혀주어야겠어.” 어부는 재촉하지만 아무리 다음 생에 인간으로 태어난다 하더라도 어찌 목숨을 내어 놓기가 그리 쉬운가? 실랑이 속에 용이 몸부림치니 파도가 크게 일어 넘실거린다. 불도를 닦아 다음 생을 기약하는 용이기에 비록 짐승의 몸이지만 업보를 잘 알아서 작은 악이라도 짓지 않으려는 듯,용왕은 불을 토하지도 않고 위엄을 나타내지도 않으며 이제 마음을 고요히 하려는 듯,용의 눈알은 악의는 전혀 없고 선한 기운마저 든다. 오직 탐욕을 부리는 인간을 측은하게 생각하니 오히려 잡힌 자가 잡으려는 자를 위로하는 듯 해학미가 흘러나온다. 오른쪽 멀리 보이는 흰 연꽃 봉우리는 용왕이 다음 생에 인간으로 태어날 것을 암시하려는 듯 향기를 뿜는다. 이뿐만 아니라 영산암 응진전 외벽에도 이러한 용을 잡는 그림이 또 있어 어디에서도 볼 수없는 해학미를 나타낸다. 인간이 되려는 서원으로 용이 잡혀준 줄도 모르고 용을 잡았다고 신나하는 두 사람이 욕심 가득한 얼굴에 웃통을 벗어 던지고 반 바지 차림으로 긴 밧줄을 용의 콧수염에 묶어서 당긴다. “영차! 영차!” 밧줄을 당기거나, 둘러메고 안간힘을 쓴다. 두려움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를 벗어 던진 용은 오히려 목숨을 내어놓는 것이 좋은 듯 웃고 있다. 용의 두 뿔엔 턱밑 푸른 수염을 가지런히 말아서 모든 것이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용의 흰 콧수염을 밧줄로 묶어서 당긴다? 상상을 뛰어 넘는 해학성이다.
    봉정사 영산암 응진전 외벽화
    봉정사 영산암 이 벽화는 욕심 많은 인간들에게 인욕바라밀을 가르쳐 주고 있다. 벽화를 바라봄으로써 전생에 용왕이었던 석가모니 부처님의 인욕바라밀을 직접 느껴보기에도 충분하다. 나도 영산암 용처럼 목숨을 버리는 인욕바라밀을 할 수 있겠는가? 부끄러움이 앞선다. 그래서 사바를 능히 참으며 살아가는 세계라 하지 않던가? 그러나 한 번의 성냄으로 인간이 되지 못한 용도 있으니 구례 연곡사의 현각선사 부도비 이수에 조각된 용이다. 한사람의 성내는 마음의 불길은 삼천대천세계를 태우고도 남는다고 한다. 탐ㆍ진ㆍ치 삼독심은 영원히 성불의 길을 방해함으로 불교에서는 이것을 제거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용 또한 인간이 되려고 무수한 세월을 인욕바라밀을 행하여 왔으나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여 결국 허사가 되어버렸다. 남에게 악한 마음을 내지 않고 오직 참으며 인고의 세월을 보내왔는데 아뿔싸! 한 순간 성냄의 결과는 그동안의 모든 공덕을 태워 버려 눈,코,입이 멋지게 생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려던 순간 멈추어 버렸다. 용의 입에서는 불길이 치솟아 인간이 되지 못한 속 타는 마음을 표현하여 재미있다. <금광명최승왕경> 여의보주품에“그 때에 모든 큰 용왕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공경하여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저희도 또한 여의보주다라니가 있사온데 나쁜 번개를 능히 막고 모든 무서움을 없애며,인간,천상에서 큰 이익이 되며, 세간을 어여삐 여겨 온갖 사람들을 옹호하고,큰 위신력이 있어 구하는 것은 원대로 되고,횡사를 멀리 여의고, 온갖 독약은 모두 없애며,온갖 조작하는 저주와 상스럽지 않은 일은 모두 덜어서 없애게 하나이다. 제가 이제 이 신주를 부처님께 받들어 드리오니 저희들로 하여금 이 용취(龍趣)를 벗어나서 간탐(貪)을 영영 버리게 하여 주소서, 간탐으로 말미암아 나고 죽는 가운데 모든 고통을 받으니 저희들은 간탐의 종자를 끊기를 원하나이다” 하여 인간과 천상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용들의 서원에 간탐 많은 우리들은 부끄러울 뿐이다.
    불교신문 Vol 2483         권중서 조계종 전문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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