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불교미술의 해학

38.중생과 부처님이 얼싸안은 부석사

浮萍草 2014. 1. 21. 07:00
    자연의 섭리는 어김없다. 어느 땐가 무더위에 허덕이더니 이젠 제법 쌀쌀한 날씨에 생기가 솟아난다. 들녘의 황금물결을 따라 명산 속에 대찰을 찾아가자. 조용히 부처님을 부르며 산길을 걸으면 노랗게 물든 은행잎은 참배객들에게 축복을 내리고 양옆에 탐스럽게 달린 붉은 사과는 천만 개의 태양을 달아놓은 듯 비로자나불의 법신을 본다. 화엄의 본찰 영주 부석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석등 앞에서 두 팔 펼치니 무량수전이 ‘와락’
    돌계단 따라 오르며 험난한 ‘성불의 길’떠올려 누각서 바라본 안양루, 마치 극락의 궁전 같아 단순 명쾌한 전각 내부 ‘연화장 세계’ 보는 듯
    누각 밑에서 본 영주 부석사 안양루
    파른 길을 오르면 펼쳐지는 석축의 장엄함은 큰 돌, 작은 돌이 서로서로 의지하며 중중 무진 연기(緣起)의 세상을 펼쳐 보인다. 제석천의 그물인양 해인(海印)의 바다에 펼쳐진 석축의 아름다움은 제석천의 그물코 하나하나에 달려있는 영롱한 보석이다. 큰 돌은 작은 돌과 함께 1333년의 세월을 도반으로 서로 격려하며 살아왔다. 창건주 의상조사 법성게 말씀 중‘일중일체 다중일 일즉일체 다즉일 일미진중 함시방 일체진중 역여시’ 라 하였다. 미물이든,부처이든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바늘 하나 꽂을 곳 없는 옹졸한 인간 마음이 곧 크고 광대한 부처님의 마음인 것을 알려준다. 우리나라 화엄 십찰(부석사,해인사,화엄사,범어사등)은 모두 산을 깎아 석축을 쌓아 계단으로 오르는 구조로 되어 있다.
    영주 부석사 바람난간
    왜 하필이면 넓은 땅은 마다하고 경사가 가파른 높은 곳에 절을 세웠을까?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가는 구법 여정을 옮겨다 놓았다. 부석사를 찾아가는 길은 공부도 스스로 하고 부처도 스스로 되는 것을 알려 주는 멋진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의상조사 일승발원문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왜 화엄 사찰은 석축을 쌓아 계단으로 절을 지었는지를 알 수 있다. “선지식이 크나큰 행을 닦듯이 나와 중생 또한 게으르지 아니하여 크나큰 보현보살 실천행을 갖추어서 연화장 세계에 새로이 태어나서 비로자나불을 친견하여 나와 남 일시에 성불하여 지이다.” 하여 중생구제를 위해 힘들고 높은 계단을 의도적으로 마련하였다. 실천행을 하지 않고 말로만 떠드는 사람들에겐 성불의 길은 멀다는 것을 가르치는 의미 있는 높은 돌계단이다.
    이뿐인가? 아니다. 불교의 다양성은 사물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봉황산 부석사’ 현판이 붙은 누하주(樓下柱) 사이를 지나면 오래된 기중들이 길게 도열하여 참배객을 맞이한다. 덤벙덤벙 놓은 주춧돌 위에 돌의 크기에 따라 들쑥날쑥한 기둥들의 키 재기도 재미있고 누마루 끝과 돌계단 위돌 사이로 보이는 안양루도 일품이다. 액자 속 그림 인양 약간 측면으로 보여 입체감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미인은 반 측면으로 보라 하였던가? 살짝 드러난 무량수전과 공중에 떠 있는 안양루의 팔작지붕을 보면 ‘극락세계의 궁전은 이렇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낸다. 바라보면 볼수록 신기루처럼 떠있는 안양루. 옛 시인들은 부석사 안양루를 보고 바람 난간이란 멋진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늘위에 나타난 천상의 누각을 바라보며 걸어간다. 걸어가는 길이 일직선이 아닌 45도 틀어진 길이다. 우리 조상들은 획일성을 싫어한다. 직선으로 쭉 뻗은 길보다는 구불구불 틀어진 길에서 세상사는 재미와 여유를 느꼈으리라. 다가갈수록 다르게 보이는 누각은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기 위하여 일부러 길을 돌렸다. 우리들은 그냥 그 길을 따라 가며 아름다움에 취하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의도적 공간 연출은 획일적이고 배타적인 서양 사상과는 달리 다양성을 존중하는 불교의 사상을 마음껏 발휘한 우리조상님 들의 지혜이다. 조상님의 안목에 세삼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영주 부석사 석등
    <천수경>에 ‘결정코 안양국(극락세계)에 태어나길 원하오며 하루속히 아미타불 만나 뵙길 원합니다’라고 하였다. 극락으로 들어가는 문 안양문에는 대문이 없다. 계단을 오르면 바로 극락의 세계가 펼쳐진다. 더 이상 즐거울 수 없는 극락(極樂). 무량한 수명으로 영원을 사는 곳을 이렇게 쉽게 갈수 있다는 생각만 하여도 기쁨이 넘친다. 무량수전 앞에 펼쳐진 화엄의 바다는 저 멀리 높고 낮은 산들이 파도를 일으키며 부처님을 향해 밀려와 예경한다. 진여의 세계란 이런 곳인가! 진여의 세계에 있는 진리의 등불. 석등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완벽한 비례와 조화를 이룬다. 오직 진리의 말씀을 빛으로 전하는 수순(隨順)한 석등부처님은 중생들의 어두움을 밝히신다. 4명의 공양보살은 어린 아이처럼 미소가 흐르고 간주석은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며 무량수전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삼국유사 의해 제5 의상전교 편을 보면 “오진은 일찍이 하가산 골암사에 살았는데, 매일 밤이면 팔을 뻗쳐 부석사의 석등에 불을 켰다” 하여 이 석등은 백리 밖 안동 학가산에서 의상조사 제자로부터 매일 밤 등 공양을 받았다고 한다. 신라 그 당시에도 오진스님은 가제트 팔을 가지셨는지 참으로 재미있다. 그러나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하였다. 지극 정성이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어 더욱 부처님의 가피를 느끼게 한다. 이뿐만 아니라 선묘와 의상스님의 이루어질 수 없는 러브스토리를 사람 들은 종종 이야기하지만 이는 욕망의 세계에서 본 중생의 편견이다. 부처님 법을 받들고 지키려고 용이 된 당나라 선묘낭자의 구법이야기는 목숨을 던져 부석사를 창건하게 한 숭고한 희생정신에 머리 숙여 감사할 뿐이다. 석용이 된 선묘는 머리는 무량수전 부처님 밑에,꼬리는 석등에 까지 이어 진다. 의상스님의 시주자에 대한 지극한 공경심과 배려가 오히려 인간미 넘친다. 그래서 부석사에서는 무량수전 좌측에 선묘각을 작게 지어 선묘보살의 높은 공덕을 기린다.
    영주 부석사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무량수전이다. 처음 온 사람들은 무량수전에 더러는 실망감을 나타내지만 그것은 정말 건축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에 반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배흘림,귀솟음,안허리곡 등 건축적인 면으로 아름다움을 알기는 그리 쉽지 않다.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을 알려면 석등 앞에 서서 두 팔을 벌려서 무량수전을 가슴 속에 안아보자. 들풀 향기가 느껴지는 무량수전을 안으면 중생인 내가 부처님을 안아준 거룩한 광망(曠茫)이다. 이러한 기쁨으로 전각 안 석가모니 부처님을 참배한다. 진흙으로 만든 커다란 부처님께 이젠 내가 안긴다. 합장하고 바라보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내부 배흘림의 기둥들은 선신(善神)들 인양 길게 줄을 맞추어 부처님을 감싸고 도열해 있다. 단순하고 명쾌한 내부 구조에 연화장 세계의 묘미를 느낀다. 전각 안에는 동쪽으로 향한 항마촉지인의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신다. 전각 현판이 무량수전이면 아미타불이어야 하고 부석사는 화엄종찰이니 비로자나불을 모셔야 되니 고개가 갸우뚱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의상스님은 무량수전에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셔서 세분의 부처님을 한꺼번에 해결하였다. 화엄사상과 공간 배치로 법신(法身)인 비로자나불을 모셨고 무량수전 현판으로 보신(報身)인 아미타불을 모셨으며 실제로 우리 앞에 나타나 보이는 화신(化身)인 석가모니불을 모셔서 삼신불(三身佛)을 다 모신 결과를 가져왔다. 의상조사의 법성게처럼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인 묘한 도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 역시 화엄종찰로서의 면모를 느낀다. 영주 부석사의 공간 연출은 연화장세계를 중생들에게 보여준 마지막 부처님의 선물이다. 중생이 부처님을 안아주고 부처님 또한 중생을 품어 안아주어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을 여실히 보여준 의상조사께 삼배의 예를 올린다.
    불교신문 Vol 2471         권중서 조계종 전문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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