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불교미술의 해학

29. 변화무쌍한 지옥도

浮萍草 2013. 11. 12. 07:00
    사찰은 생각할 것이 많은 곳이다. 바라보는 형상마다 깊은 생각을 자아낸다. 사찰의 조형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특히 나의 사후(死後)세계를 경험하고자 한다면 사찰의 지장전 혹은 명부전이 제격이다. 그곳에 있는 지장보살과 10분의 지옥의 왕과 지옥을 그린 불화를 바라보면 내가 살아온 현재의 모습을 통해 미래의 나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일 것이다. 또한 지장보살 앞에 마련된 업경대를 바라보면 확연히 나의 과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나의 마음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지장보살 원력으로 지옥에도 웃음 있게 해
    망자 심판하는 무서운 고통 단계별로 표현 끌려온 죄인들 한바탕 웃는 파격적 모습도 시각각 변하는 나의 마음을 잡아매고 나의 잘못을 뉘우칠 곳이 명부전이다. 사찰에서 불공을 드릴 때 축원 전에 먼저 하는 것이 참회이다. 나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부처님께 청해야만 나의 소원이 이루어 지기 때문에‘원멸 사생육도’부터 시작하여‘세세상행 보살도’로 끝나는 참회하는 마음은 경건하다. “원컨대 육도(六道)에서 사생(四生)의 중생으로 살면서 오랫동안 지어온 모든 죄업을 멸하게 하여 주소서. 제가 이제 부처님의 발에 머리 숙여 참회하오니 원컨대 모든 죄와 장애가 남김없이 사라지고 제거되어 앞으로 오는 모든 세상에서 보살도를 행하게 하여 지이다.” 하여 참회와 발원이 함께 이루어진다.
    파주 보광사 명부전 지옥도
    참회로 인한 업장소멸을 담당하는 지장보살은 원래 인도의 땅신(地母神)에서 유래한 보살이다. 땅은 만물을 생장(生長)시킨다. 만물을 키워 뭇 중생에게 이익 되게 하는 위대한 힘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이 지장보살도 모든 중생을 구제하여 이고득락(離苦得樂)하게하는 큰 원력을 지닌 보살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아귀,축생,인간,수라,천상 등 육도(六道)의 윤회에서 영원히 고통 받고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고 특히 지옥에 떨어 지는 인간들을 인도하여 안락한 정토나 해탈의 길로 이끌어 주는 분으로 지옥의 고통을 없애주는 보살이다. 따라서 지장보살은 명부의 구세주로 등장하게 되었고 명부전의 주존으로 신앙하게 되었다. 인간에게는 죽음이라는 고통이 가장 심각한 문제인데 죽은 사람의 죄와 고통을 구제하여 득락을 즐기게 해주는 지장보살이야말로 인간의 숭배의 대상이 되어 추앙 받게 된 것이다. 그러면 지장보살이 구하고자 하는 지옥의 세계를 들어다 보자.
    서울 개운사 명부전 지옥도
    지옥 세계는 예수시왕생칠경과 지장보살본원경에 보면 제1 진광대왕은 사람이 죽은 지 7일째 되는 날에 망자(亡者)를 심판하는 왕으로 무섭게 생긴 옥졸이 죽은 사람을 관에서 꺼내는 장면,죄인들을 밧줄로 묶어 끌고 가는 장면, 손이 묶인채 목에 칼을 쓴 죄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장면,판관이 두루마리 를 펼쳐들고 죄인의 생전의 죄상을 읽고 있는 장면,지장보살과 동자가 합장을 하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장면 등이 그려져 있고,제2 초강대왕은 14일 뒤에 망자를 기둥 위에 묶고 놓고 죄인의 배꼽에서 창자를 끄집어내는 장면,제3 송제 대왕은 21일 뒤에 죄인의 혀를 빼내어 그 위에 소를 몰아 쟁기로 밭을 가는 장면 인 경설지옥(耕舌地獄)을 나타낸다. 제4 오관대왕은 28일 뒤 가마솥의 끓는 물에 죄인을 삶는 확탕지옥(湯地獄)을, 제5 염라대왕은 35일 뒤에 옥졸이 죄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업경대를 들어다 보게 한다. 업의 거울 속에는 죄인이 생전에 몽둥이로 소를 때려죽이는 장면과 방아로 죄인을 찧는 장면인 중합지옥(衆合地獄)이 나타난다. 제6 변성대왕은 42일 뒤에 날카로운 칼 숲 속에 갇혀서 고통을 당하는 도산지옥 (刀山地獄),검수지옥(劍樹地獄)을 제7 태산대왕은 49일 뒤에 나무에 죄인을 묶고 톱으로 써는 거해지옥(鋸解地獄)을, 제8평등대왕은 49재 뒤에도 그래도 죄가 남아있는 자에게 100일 뒤에 벌을 주고 제9 도시대왕은 1년 뒤에 죄인을 압사시키는 장면 등이 제10 오도전륜대왕은 죽은 지 3년 만에 아직도 죄가 남아 있는 죄인을 심판하여 옥졸이 업의 수레바퀴를 굴려 육도윤회의 기운이 위로 뻗혀 다음 생에 태어날 곳으로 윤회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
    이러하듯 무서운 지옥의 고통 속에서도 한줄기 희망의 빛과 여유가 있으니 이것은 지장보살의 큰 원력이 지옥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도록 하는 해학적인 모습을 담고 있어 파격적이다. 먼저 파주 보광사 명부전 지옥도를 보자. 우측의 지장보살이 동자와 함께 갑자기 지옥에 나타나자 지옥은 발칵 뒤집혀 버린다. 재판을 하다만 면류관을 쓴 염라대왕은 앉은 채로 합장을 하며 지장보살을 맞이하지만 입을 꼭 다문 얼굴빛은 못내 못마땅한 눈치 이다. 재판에 영향을 끼칠까봐 판관은 머리를 손으로 감싸고 어쩔 줄 몰라 전전긍긍이다. 일산을 치켜든 옥졸들은 물끄러미 지장보살을 쳐다본다. 모두 다 달갑지 않다는 표정이다. 이러한 광경을 본 죄인들은 오히려 희희낙락이다. 서울 개운사 명부전 지옥도를 보자. 열심히 지장보살을 불렀더니 이제는 살았다! 칼을 쓴 자나 묶인 자나 끌려온 죄인들 모두 한바탕 웃으며 즐거워한다. 어이가 없는 듯 지옥 옥졸인 말과 소는 칼을 내리고 대책을 논의 하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심각한 표정이다. 지옥에서도 믿고 의지한 구세주 지장보살이 있어 즐거워하는 지옥 죄인들을 보면 지옥에서도 다 사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해학적이다.
    보성 대원사 지옥도
    또한 보성 대원사 지옥도를 보면 뜨거운 가마솥 끓는 물에서도 지장보살을 일심으로 부르니 어느 사이에 육환장을 든 지장보살이 동자를 앞세워 지옥에 나타나셨다. 놀란 판관과 옥졸은 죄목을 읽다 말고 힐끗 지장보살을 쳐다본다. 합장한 지장보살은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무언의 압력을 행사한다. 이제 벌주는 일은 스톱! 고통스럽고 숨 막히는 지옥에서도 지장보살의 출현으로 경직된 분위기를 반전 시키는 여유! 바라보는 것이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더욱 겁이 나는 벌을 받을 칼을 쓴 대기자의 표정이 재미있다. 확탕지옥의 벌을 받고난 죄인이 쓴 칼을 벗어버리고 홀가분한 표정으로 담뱃대를 팔에 끼고 합장하며 지장보살을 맞이하는 죄인의 여유가 지옥도 살만한 곳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질 것 같은 우회적인 표현이 너무나 여유롭고 해학적이다. 그렇다고 지옥이 호락호락 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옥도가 해인사 명부전의 경설지옥도이다. 죄인의 혀를 뽑아 소가 쟁기로 밭을 간다. 길게 뽑은 혀가 죄인의 입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단단히 땅에 묶었지만 쟁기를 끄는 소는 자기보다 큰 혀에 놀란 듯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 그 뒤는 옥졸의 칼에 입과 이마를 관통하는 아픔을 겪고 있으나 눈이 3개인 옥졸은 무지막지하게 날카로운 꼬챙이로 눈을 찌를 태세 이다.
    합천 해인사 명부전의 경설지옥도.

    상상속의 지옥을 현실에서 보여주는 사찰의 명부전은 나의 영혼을 더욱 맑게 하는 스승으로서 지장보살의 크신 원력에 나도 이와 같이 지옥중생을 건져주는 서원을 세워보자. 현실에서도 고통을 받으면 지옥이 따로 없다고 한다.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해 노력한다면 내가 바로 지장보살인 것을 느껴보자. 불교는 다른 종교와는 달리 극락과 지옥을 스스로 찾아간다. 다른 종교에서는 절대자 권능에 의하여 심판이라는 극단적 믿음의 행위에 의하여 지옥과 천국행이 결정되지만 불교에서는 극락과 지옥을 믿음이라는 행위로 부처님이 결정하지 않는다. 오직 자기 자신이 행한 업이라는 결과에 의하여 극락과 지옥 등 육도 윤회를 스스로 결정하고 그 곳에 태어난다. 다만 죽은 후에도 주변의 조력(助力)에 의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잘못을 뉘우치면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혹시나 이제까지의 잘못을 참회하여 지옥을 모면한다면 이보다 즐거운 일이 또 어디 있으랴? 사찰의 명부전을 보면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지옥이더라.
    불교신문 Vol 2450         권중서 조계종 전문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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