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불교미술의 해학

28. 선학을 통해 본 '삶의 여유'

浮萍草 2013. 11. 5. 07:00
    여름 휴가철이 되면 도로가 막혀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 이쯤 되면 내가 탄 승용차가 날아다녀 어디라도 쉽게 갈수 있었으면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한다. 승용차가 학이 되고 내가 신선이 되어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조급함을 달래어 본다. 휴가철 많은 사람들이 사찰을 찾는 이유 중의 하나는 깊은 산속으로 떠나 호젓하게 느껴보는 나만의 시간을 갖고 그 시간 속에 내면속의 나와 대화하고 그동안 잊어버리고 산 나의 모습을 부처님 전에 조용히 비추어 봄으로써 잃어버린 나를 찾고 나와 내 가족의 평안을 빌어보기 위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사찰전각 내부공간이 눈 속에 들어온다. 격조 높고 엄숙하고 화려하게 장식된 조각,단청,불화 등이 각양각색의 형태와 모양 또는 채색으로 장엄된다.
    선 고운 춤사위 속 ‘극락세계’와 만나다
    여유.기품 상징…선비들의 이상향과 닮아 있어 용주사 벽화 속 날갯짓…‘무소유’깨우침 전해져 신선과 천상서 노니는 모습, ‘삶의 행복’ 느껴져
    화성 용주사 대웅전 내목도리
    부분 우리들은 불전의 불보살님이나 신중님 등 예경 대상에 대하여 관심을 표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불전 내부 공간에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예배자의 기원을 담은 장엄물 들이 그려져 있다. 벽화나 천정 등에 그려진 그림을 잘 관찰하여 보면,보는 내가 그림 속의 신선이 되어서 스스로를 감동시킨다. 장엄된 불국토가 바로 이곳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지니고 사는 것이 많고 물질이 풍요로운 세상일수록 세상이 어렵다 거나,말세라 거나 하며 세상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옛날 우리 조상들은 가진 것은 적고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도 항상 넉넉 하고 여유로워 그 이상만은 높은 곳에 두어서 희망적인 정신세계를 향유한 것 같다.
    이러한 정신적 세계를 사유하는 공간이 바로 사찰 전각에 그려진 그림이다. 갖가지 내용과 표현으로 보는 우리들을 순수하게 만들고 새로운 이상향의 세계를 그리게 하는 여유를 주고 있다. 약간 어두운 실내이지만 천정도 한 번쯤 쳐다보고 공포 사이에도 무슨 그림이 있는지 살펴보자. 우리 조상들은 학과 신선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학(鶴)은 십장생(十長生:해.산.물.돌.구름.소나무.불로초.거북.학.사슴) 중 하나로 기품과 장수를 상징하는 품격이 높은 길상.장수의 대표적인 존재로 인식하여 왔다. 뿐만 아니라 학은 자태가 청초하고 고귀하여 신선이 부리며 신선이 사는 마당에 노닐고 있다고 여겨져 왔다.
    화성 용주사 대웅전 대목도리 벽
    그래서 학은 선비들이 가장 가까이 두고 싶어 했던 동물로 이덕무의 청장관 전서에 보면 학을 길들이는 방법에 “텅 빈 방에 구르는 나무토막 한 개를 두고 학을 방안에 가두고 방이 뜨겁도록 불을 넣는다. 학이 발이 뜨거워 둥근 나무토막에 올라서면 나무토막은 구르면서 섰다 미끄 러졌다 한다. 학은 두 날개를 오므리고 펴기를 수없이 한다. 그때 창밖에서 피리를 불고 거문고를 타면 학은 날개를 치고 목을 세워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춘다”고 했다. 인간이 얼마나 신선이 되고 싶으면 이리하였을까? 고구려 고분벽화 5회분4호 묘에 학을 탄 신선이 처음 등장 한 이래 고려청자 속 비상하는 학의 모습과 조선시대 학문을 숭상하는 사람을 학에 비유하여 선비가 입는 옷을 학창의(鶴衣)라 하여 학의 형태를 본떠 흰색에다 소매의 단이나 옷깃에 검은 선을 대어서 학처럼 고결한 인품임을 자랑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문관(文官) 관복 흉배에 학의 문양을 넣어 선비로서 갖추어야할 인품이나 성격을 상징하게 되었다. 또한 풍수 지리적으로 학이 있는 곳은 명당 또는 신선이 사는 곳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신선(神仙)은 사람이 도를 닦아 욕심을 버리면 도인(道人)이 되고 도인이 생사(生死)를 뛰어 넘으면 신선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신선은 늙지 않는다’ 하여 학발동안(鶴髮童顔)이란 말이 생겨나기도 하였으며 우리 조상들은 학과 신선을 이상적인 인간상 으로 마음에 두고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학과 함께 하고자한 조상들의 마음을 나타낸 곳이 화성 용주사 대웅전 서쪽 내목도리윗벽에 그려진 선동학군무도 (仙童鶴群舞圖)와 비학선동취적도(飛鶴仙童吹笛圖)이다.
    봉화 축서사 보광전
    한 마리 단정학(丹頂鶴)이 피리와 장구소리에 맞추어 다리를 벌리고 날개를 퍼덕 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발가락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힘을 들이며 길잡이를 하니 뒤 따르는 아이 둘이 소매를 휘저으며 흥이나 신나게 춤을 춘다. 학을 따르는 아이는 학을 따라 춤을 추는 듯 다리를 벌리고 고개를 땅으로 향하여 학과 한 마음인 것을 느낀다. 둘째아이는 몸을 돌려 큰 춤사위를 그리며 춤의 삼매에 빠진 듯 유연하다. 피리를 부는 아이의 뺨은 부풀어 있고 장구를 치는 아이는 가락을 맞추려는 듯 조심스럽다. 한바탕 노랫가락과 신나는 춤사위가 이어지니 보는 사람의 어깨춤도 덩달아 들썩 인다. 인간이 욕심 없이 이 그림처럼만 살아준다면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노래 소리에 귀 기울인다면 이곳이 바로 신선의 세계이고 극락의 세계가 아닐까? 신명나는 춤사위에 용주사 대웅전 세 분의 부처님도 일어나 춤이라도 추실 것 같은 기쁨이 느껴진다. 또한 빠르게 하강하는 큰 학의 날개 위에 앉아 천의를 휘날리며 대금을 불고 있는 하늘아이의 가락에 화답이라도 하듯 단정학은 긴 목을 빼고 부리를 벌려 장단을 맞춘다. 빠른 노랫가락일까? 길게 뺀 두 다리는 천의와 함께 빠른 속도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천상의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 사찰에서 무더위를 식히며 삶의 기쁨을 만끽하여 봄직도 하다. 다음은 봉화 축서사 보광전 천정 반자의 문양으로 조선후기 승학탄금신선도(乘鶴 彈琴神仙圖)를 살펴보자. 학을 탄 신선이 거문고를 타고 있는 모습 하나하나가 보광전 천정 전체를 덮고 있어 장관이다.
    신선과 학,구름과 거문고를 하나의 판 안에 함께 담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 금빛 학 날개위에 거문고를 펼치고 선정에 든 신선이 정지되고 느리게 거문고 줄을 튕긴다. 한 음률에도 세상의 이치를 다 담은 듯 여운이 길다. 신선의 세계를 다 아는 듯 거문고 가락의 음률을 느끼고 있는 여유로운 학의 모습이 신비롭다. 주변의 구름도 정지된 듯 뭉게뭉게 피어올라 풍요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정지된 신선의 세계를 인간이 마음껏 담아가도록 포즈를 취해 준 것일까? <상학경(相鶴經)>에는 학이 1600년을 살면 신선들을 태우고 하늘을 오르내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아마 태백산 신선이 거문고를 타니 단정학이 나타나 춤을 추고 신선은 선학(仙鶴)의 등을 타고 하늘을 나니 거문고 가락은 상서로운 구름 속에 흩날리는 듯 신선의 경지를 유감없이 나타내어 인간에게 여유로운 삶의 행복을 보여주고 있다.
    불교신문 Vol 2447         권중서 조계종 전문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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