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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끝>. 처응과 수단 스님의 무

浮萍草 2013. 5. 25. 07:00
    지고지순 무 공양에 감화, 인내로 깨달음 견인 
    아둔하기 그지없는 처응 스님 구운 무로 스승 심신고통 해소 제자의 진심 알아본 스승 수단 법연도 두려워할 법기 만들어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여 준마를 울타리에 가두는 건 아닐까 옛 스승들은 늘 염려하였다. 나의 장점으로 타인 단점과 겨루고 있는 건 아닐까,옛 스승들은 스스로를 점검하였다. 그래서일까? 품안에서 키우던 제자에게 훌륭한 자질이 보인다 싶으면 종종 믿을만한 벗에게 단련(鍛鍊)을 맡기곤 하였다. 보령 인용(保寧仁傭) 스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부터 거두던 제자들 가운데 처청(處淸)과 처응(處凝)이라는 두 제자가 눈에 쏙 들어오자 인용 스님은 곧장 둘을 백운수단(白雲守端) 선사에게로 보냈다. “그 옛날 양기 방회(楊岐方會)선사 회상에 동참하여 함께 절차탁마했던 분 가운데 수단 스님이라는 분이 계신다. 연륜이야 내가 양보치 않겠지만 확철한 안목 만큼은 그에게 양보하지 않을 수 없구나. 이제 그분을 찾아가거라.” 옛 제자들은 견해가 스승을 능가해야 스승의 은혜를 갚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스승의 견처(見處)가 손바닥에 놓인 구슬처럼 훤히 들여다보이지 않으면 몽둥이를 휘두르고 뺨을 후려치고 허드레 잡일에 온갖 핀잔을 퍼붓더라도 자신을 독려하며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처응(處凝) 스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문 형제인 처청 스님은 용상(龍象)의 무리 가운데서 일찌감치 두각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처응 스님의 심인(心印)은 도무지 열릴 줄을 몰랐다. 처응 스님은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시자를 자청하고 강주 (江州)의 승천선원(承天禪院)과 원통숭승선원(圓通崇勝禪院)으로, 서주 (舒州) 법화산(法華山) 증도선원(證道禪院)으로 스님을 따라다녔다. 그렇게 곁을 지키면서 스님의 법어와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기록하며 의심스러운 바를 끊임없이 여쭈었다. 하지만 착실한 처응에게 돌아오는 메아리는 한결같았다. “으이그, 이 미련한 놈아!” 그칠 줄 모르는 수단 스님의 통박에도 처응의 정성은 변함없었다.
    수단 스님은 심장병을 앓으셨다. 백약이 무효이고,통증 또한 예고 없이 찾아온 탓에 스님의 병환은 대중의 근심거리였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처응은 응급처방으로 구운 무가 좋다는 것을 알았다. 처응은 그날로 시자실에 화로를 들여다 놓고,무를 구워 재구덩이 속에 항상 준비해두었다. 그리고 수단 스님의 마른기침 소리가 들리면 쏜살같이 구운 무를 대령하였다. 새파란 입술로 식은땀을 흘리던 수단 스님도 구운 무를 먹고 따뜻한 물로 입을 가시다보면 가슴을 쥐어뜯던 통증이 거짓말처럼 가시곤 하였다. 그날 이후 시자실의 화롯불은 여름이고 겨울이고 한 번도 꺼지지 않았고, 재구덩이엔 항상 따끈따끈한 무가 감춰져 있었다. 시자의 정성에 감동했던 것일까? 평소 말이 짧고, 두 번 거론하는 법이 없던 매서운 스승이었다. 하지만 처응에게 만큼은 구구한 설명도 마다하지 않는 넉넉한 노인네가 되어갔다. 메마른 가을바람에 기침이 잦던 어느 밤이었다. 따끈한 차에 곁들여 무를 잡수신 수단 스님이 길게 한숨 돌리고 처응을 돌아보았다. “옛날이야기 하나 해줄까?” “예, 스님.” “양(梁)나라 무제(武帝) 때 지공대사(誌公大士)라는 분이 계셨어. 무제는 지공 스님이 대중을 현옥시킨다며 감옥에 가두었는데 이 스님이 분신을 나타내 성읍을 돌아다니면서 대중을 교화하였데. 무제가 그의 신통력을 알고는 그날부터 그를 지극히 추앙하고 존중하였다네. 그러던 어느 날, 무제가 지공 스님을 초청해 ‘금강경’을 강의해 달라고 청하였지. 그러자 지공 스님이 무제에게 말했데. ‘빈도(貧道)는 강의를 못합니다. 부대사(傅大士)라는 분이 있는데 그가 이 경을 강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제가 조서를 내려 그를 대궐로 불러들였는데,그 사람이 금릉성(金陵城) 생선 장수였데. 영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자기가 신봉하는 지공대사의 추천이니 그냥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야. 그래서 문무백관을 모으고 황제가 몸소 예의를 갖춰 법좌에 오르도록 청하였데. 그러자 시장에서 비린내 풍기며 생선이나 팔던 이 사람이 당당하게 법좌에 오르더래. 그리고는 ‘법을 설해주십시오’ 하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대뜸 경상(經床)을 한 번 후려치고는 바로 자리에서 내려와 버리더래.’ 무제가 깜짝 놀라자 곁에 있던 지공이 나지막이 속삭였데. ‘폐하, 아시겠습니까?’ 무제가 휘둥그레 한 눈으로 말했데. ‘모르겠군요.’ 그러자 지공 스님이 무제에게 말했데. ‘부대사께서 ‘금강경’ 강의를 마쳤습니다.’ 처응아, 무슨 뜻인지 알겠냐?” 처응은 고개를 숙였다. “모르겠습니다, 스님.” 수단 스님은 따뜻한 눈빛으로 처응을 바라보다 지필묵을 가져오게 하셨다. 그리고 게송을 한 수 쓰셨다. 부대사가 경전 강의하는 법을 배운 적 있겠냐 지공대사 방편을 써 또 서로의 뜻 이루었네 한 차례 경상을 후려쳐 둘 다 취함이 없었으니 양무제의 눈알이 휘둥그레 할만도 하지. 그리고 다시 물으셨다. “알겠냐?” 처응은 또 고개를 숙였다. “모르겠습니다.” 수단 스님은 마지막 구절을 짚으며 물었다. “뭣 때문에 휘둥그레 했을까?” 손자의 허물을 탓하지 않는 노인네의 이 한 마디로 처응 스님은 비로소 심지(心地)를 환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 후 처응 스님은 서주 천주산(天柱山)의 주지가 되었고 처청 스님은 용서 태평흥국선원(太平興國禪院)의 주지가 되었다. 처응 스님은 기변(機辯)이 뛰어나 수단선사의 상수제자 오조 법연마저 그를 두려워하였지만 처청은“사제의 선은 노스님에게 무를 구워준 대가로 얻은 것이라”며 폄하하였다. 하지만 훗날 백운 수단선사가 입적하신 후 그의 어록을 편찬함에 있어 주축이 되었던 분은 정작 처응 스님이었다.
    Beopbo Vol 1190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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