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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인종 스님의 제자

浮萍草 2013. 5. 7. 07:00
    인종, 깨달은 제자에게 스스로 절하며 법을 구하다 
    깃발·바람 다투는 제자들에게 ‘마음 움직인 것’이르는 말 듣고 선지식 알아채 출가할 것 권유 혜능이라 이름 주고 그 제자돼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봉(儀鳳) 원년(676),새해를 맞아 남해(南海) 법성사(法性寺)에서 인종(印宗) 법사가 보름간 ‘열반경(涅槃經)’을 강의하였다. 발보다 빠른 소문은 곧 원근에 널리 퍼졌고,사부대중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몰려든 인파로 낮이면 절 마당이 사람들로 빼곡했고,밤이면 행랑채가 야시장 처럼 북적되었다. 그 틈에 산발한 머리가 어깨까지 늘어진 처사도 한 명이 끼어있었다. 1월8일 밤이었다. 벽에 붙어 새우잠을 자야할 만큼 사람이 많았던 까닭에 방안에는 퀘퀘한 훈기가 가득했다. 구석에서 좌선하던 스님 두 분이 조용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섰다. 상큼한 바람이 훅하고 방안으로 밀려들었다. 그러자 갑갑함을 억지로 견디며 누웠던 더벅머리 처사도 따라 일어나 툇마루에 앉았다. 찰간에 매달린 깃발이 팽팽할 만큼 제법 바람이 거셌다. 두 스님은 섬돌 아래로 내려가 달빛 가득한 마당을 함께 거닐었다. 하지만 그 다정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 스님이 무료함을 지울 요량으로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발단이었다. “깃발이 펄럭이는군요.” 함께 거닐던 스님은 고개도 들지 않고 중얼거렸다. “바람이 부는 거지요.” 말을 꺼냈던 스님이 발끈했다. “당신 눈에는 펄럭이는 깃발이 보이지 않습니까?” 중얼거린 스님도 만만치 않았다. 걸음을 멈추고 삿대질까지 했다. “깃발에 발이 달렸답니까,손이 달렸답니까? 깃발이 움직이는 주체라면 바람 없이도 움직일 수 있어야지요. 바람 없이 움직이지 못한다면 깃발이 주체가 아니라 바람이 주체지요. 스님의 안목은 한 치를 벗어나지 못하는군요.” “뭐요?
    그럼 깃발을 움직인 주체인 바람을 나에게 가져와 보구려. 바람이란 것이 실체가 있다면 스님의 말을 인정하겠지만 바람이란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고 또 특정한 모양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소. 결국 깃발이 펄럭이는 현상을 통해서만 바람의 존재가 증명되는 것이오. 따라서 깃발이 펄럭이는 현상을 부정하고 따로 바람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스님의 말은 옳지 않소.” 두 스님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한밤의 정적이 깨지고 잠들었던 나그네들이 하나둘 일어나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스님.” 툇마루에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던 처사가 나직한 목소리로 두 스님을 불렀다. “점잖은 토론에 속인이 한마디 끼어들어도 괜찮겠습니까?” 편들어줄 사람이 아쉬웠던 두 스님이 동시에 말했다. “당신이 말해 보시오. 깃발이 움직입니까, 바람이 움직입니까?” 그러자 처사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두 분 스님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일 뿐입니다.” 한밤의 소란에 놀라 행랑채로 들어서던 인종법사는 문간에서 이 말을 듣고 모골이 오싹하였다. 객들의 단잠을 방해하던 실랑이는 처사의 꾸지람으로 다행히 그쯤에서 멈췄다. 이튿날 아침, 공양을 마친 인종법사가 행랑채의 처사를 불렀다. 처사가 공손히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앉자 인종법사가 정중히 물었다. “어제 행랑채를 지나다 ‘깃발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고 마음이 움직인 것’이라 한 말을 들었습니다. 왜 마음이 움직인다고 했는지, 설명해 보겠습니까?” “우리가 마주하는 대상이란 실제 고정된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無相]. 대부분 이 사실을 모르고 대상에 고정관념[念]을 일으켜 고유한 특성을 가진 뭔가가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헛된 관념들을 이리저리 엮어 온갖 주장을 펼칩니다. 그건 번뇌를 늘리는 짓일 뿐입니다.” 다그치듯 인종법사가 되물었다. “두 스님의 논쟁이 바로 그 생각의 허구를 탐구하는 과정이 아닐까요?” 답변이 메아리처럼 돌아왔다. “‘바람’과 ‘깃발’을 두고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논쟁한다면 정말 어리석은 짓이지요. 승부의 마음을 끊지 못하고서 다툰다면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불법은 각자 스스로 깨닫고 수행해야 하는 것이지, 입으로 논쟁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인종법사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당신이 말하는 깨달음과 수행이란 무엇입니까? 마음이 요동치면 번뇌 망상이 일어나니, 마음을 고요히 하여 번뇌 망상을 깨끗이 없애야 한다는 것입니까?” 그러자 처사가 웃었다. “마음은 원래 허망한 것입니다. 허깨비처럼 실체가 없는데 깨끗이 하고 말고가 어디 있습니까? 굳이 ‘깨달음’을 말한다면 그 허망함을 깨닫는 것이고, 굳이 ‘청정함’을 말한다면 번뇌 망상의 성품이 본래 청정합니다. 욕망의 대상에 대한 집착만 망상(妄想)이 아닙니다. 청정함에 대한 집착 역시 망상에 속박된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거나 한술 더 떠 ‘깨끗한 마음을 얻었다’고 한다면 정말 땅을 치고 웃을 노릇이지요.” 인종법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벌떡 일어섰다. “당신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더벅머리 처사는 한참을 침묵하다 사실대로 말했다. “저의 성은 노(盧)씨이고 이곳 남해가 고향입니다. 동산(東山)의 홍인대사께서는 행자로 있던 저에게 달마대사의 가사를 전하고,시기 질투하는 무리를 피해 남방으로 떠나라 명 하셨습니다. 스승의 훈계에 따라 3년간 사냥꾼들 틈에서 지내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인종법사가 다시 자리에 앉아 말했다. “출가하여 오조대사의 법을 널리 홍포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당신의 은사(恩師)가 되겠습니다.” “불법에 남과 북이 어디 있고, 출가 재가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 구분이 곧 세간의 망념입니다.” 인종법사가 재차 따뜻한 어조로 권유하였다. “그렇긴 하지만 불법 역시 세간을 위한 것 아닙니까. 세간이 없다면 굳이 출세간법을 세울 것도 없겠지요. 부처님과 조사의 깊으신 은혜에 보답하자면 세간의 이목에 맞춰 그 교화의 폭을 넓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1월15일, ‘열반경’ 강의가 끝나는 날,인종법사는 여러 대덕과 사부대중 앞에서 노씨 성을 가진 처사의 더벅머리를 깎아주었고, 절을 올리는 제자에게 혜능(慧能)이란 법명을 내렸다. 그리고 2월8일, 혜능은 법성사에 차려진 계단(戒壇)에서 지광(智光)율사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그날 인종법사는 비구 혜능에게 절을 올리며 말하였다. “오늘부터 저는 당신의 제자입니다.”
    Beopbo Vol 1187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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