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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열 스님의 벙어리 냉가슴

浮萍草 2013. 5. 14. 07:00
    양식 구하고 숯 얻으러 다니며 아상을 버리다
    매일 심부름만 하던 문열스님 ‘도대체 왜’ 냉가슴만 앓다가 시렁위 물통 깨지는 소리에 깜짝놀라 일어서다 깨달아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나라 때 문열(文悅) 스님이란 분이 계셨다. 일곱 살 어린나이에 용흥사(龍興寺)에서 출가한 스님은 작은 키에 예쁘장 하게 생겼고 성품이 순직하였다. 경론(經論)을 두루 섭렵하며 세월을 보내던 문열은 열아홉 한창 나이에 책을 덮었다. “장부가 세속을 등진 까닭은 오직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기 위해서이다. 어찌 서생(書生)노릇에 그치겠는가.” 지팡이 하나 달랑 지고 산문을 나선 문열은 천하 선지식을 찾아 강회 (江淮)로 유람을 나섰다. 처음 찾아간 곳은 균주(筠州) 대우산(大愚山)의 수지(守芝)선사였다. 용쟁호투의 선불장에서 주장자 하나로 미망의 안개를 단숨에 걷어버리는 종장(宗匠)을 상상하면서 흥교원(興敎院)으로 들어선 문열은 크게 실망 하였다. 퇴락한 건물에 늙수그레한 스님 몇 명만 오락가락하였고,방장인 수지 스님 역시 낮이면 장거리로 화주나 다니고 밤이면 코를 골며 잠이나 잘 뿐이었다.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려도 싸늘한 눈빛으로 본체만체하고,상당법문도 소참 법문도 일절 없었다. 밤낮없이 참선하며 며칠을 보내던 문열은 주섬주섬 짐을 꾸렸다. 그 밤에 비가 내렸다. 갑자기 닥친 빗발은 다음날 아침공양시간까지 좀체 가늘어질 줄을 몰랐다. 대중 틈에 끼어 고사리가 설렁설렁한 죽 그릇을 비우면서 문열은 생각했다. ‘저 비만 그치면 당장 이곳을 떠나리라.’ 그때였다. 어간에 앉은 수지 스님이 모처럼 말씀을 꺼냈다. “여러분.” 대중의 이목이 쏠린 스님의 손에는 고사리 한 줄기가 들려있었다. “이것을 ‘고사리’라 부르면 쏜살같이 지옥에 떨어집니다.” 문열은 깜짝 놀랐다. ‘고사리라 하지 않는다면 무엇이라 한단 말인가?’ 문열은 꾸렸던 짐을 다시 풀었다. 그리고 그날 밤 방장실로 찾아갔다. “스님, 문열입니다.” “뭣 하러 왔어?”
    찢어진 눈매에 쌀쌀맞기 그지없는 말투였다. “불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예의바른 젊은이에게 수지 스님은 피식거리는 냉소를 감추지 않았다. “기운이 있어야 법을 설해 주지. 나는 배가 고파 자네에게 법을 가르쳐줄 기운이 없네.” 공연한 통박이라 여긴 문열은 재차 정중히 여쭈었다. “스님, 왜 ‘고사리’라고 하면 쏜살같이 지옥에 떨어집니까. 부디 마음자리를 밝혀주소서.” “젊은 놈이 귀가 어둡나. 법의 수레바퀴보다 배꼽시계가 먼저 구른다 이놈아. 기운이 펄펄한 놈이 밤낮 쭈그리고 앉아 뭐하는 짓이냐. 가서 대중들 먹게 양식이나 구걸해 와.” 문열은 무척이나 순박한 사람이었다. “스님, 양식을 구해오면 법을 설해 주시겠습니까?” “오냐, 많이 구해오면 많이 해주고 조금 구해오면 조금만 해줄 거다.” 문열은 그길로 곧장 마을로 내려갔다. 그리고 열흘 동안 화주를 해 양식을 잔뜩 짊어지고 흥교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수지 스님은 이미 서산(西山)의 취암(翠岩)으로 옮겨가신 뒤였다. 문열은 구걸한 양식을 흥교원에 모두 보시하고 서산의 취암으로 찾아갔다. “스님, 문열입니다.” “뭣 하러 또 왔어?” “불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수지 스님은 또 피식거리는 냉소를 면전에 퍼부었다. “설렁설렁 눈발이 날리는데 헐어 무너진 담벼락이 보이지도 않냐? 이렇게 추워서야 어디 너에게 불법을 가르쳐줄 수 있겠냐? 추위에 떠는 대중들을 위해 숯이나 구해 와.” “숯을 구해오면 법을 설해 주실 겁니까?” “오냐, 많이 구해오면 많이 해주고 조금 구해오면 조금만 해줄 거다.” 문열은 또 마을로 내려가 보름동안 화주를 하였다. 그리고 숯을 잔뜩 짊어지고 취암으로 올라갔다. “스님, 숯을 구해왔습니다. 이제 불법을 말씀해주십시오.” 수지 스님은 또 피식거렸다. “불법이 썩어문드러질까 걱정이냐? 도리어 이 절에 유나(維那) 자리가 빈 것이 더 걱정이다. 불법은 차차 가르쳐줄테니 우선 대중들을 위해 소임부터 살아라.” 유나는 방장스님을 대신해 사원의 기강을 바로잡는 자리였다. 정성을 다해도 가르침을 베풀지 않는 수지선사가 야속하기도 했지만 분수에 맞지 않는 과중한 소임이 더 난감했다. “스님, 그건…” 입도 제대로 떼기 전에 호통이 떨어졌다. “왜, 구걸은 해도 어른노릇은 못하겠다 이거야? 유나 노릇도 못하는 놈이 무슨 부처노릇을 하고 조사노릇을 하겠다고.” 문열은 아무 말도 못하고 방을 나왔다. 다음날 수지 스님은 종을 울려 대중을 모으고 문열을 유나로 추대하였다. 하기 싫은 것만 골라서 시키는 수지 스님의 속내를 문열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 곁을 떠날 수도 없었다. 왠지 수지 스님이면 자신의 마음자리를 단박에 밝혀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새파랗게 젊은 유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대중들의 눈을 피하기에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문열이 승당 뒤편의 시렁에 홀로 앉아 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저러실까?’ 그때 시렁에 얹혀져있던 물통의 테가 갑자기 터지면서 와장창하고 떨어졌다. 이 소리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서던 문열이 홀연히 깨달았다. 그리고 수지 스님의 마음씀씀이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문열은 곧장 가사를 챙겨들고 방장으로 달려가 방문을 열어젖혔다. “스님!” 미처 문턱도 넘기 전에 수지 스님이 깔깔거리며 손뼉을 쳤다. “유나야 기뻐해라. 대사(大事)를 끝냈구나.”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문열은 겨우 두 번의 절만 올리고, 또 한 마디도 못한 채 그 방을 나와야 했다. 그리고 수지 스님이 열반하시는 그날까지 다시 8년 동안 벙어리처럼 묵묵히 그 곁을 지켰다.
    Beopbo Vol 1188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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