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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월당 스님의 기다림

浮萍草 2013. 4. 23. 07:00
    여름 한낮 오이에 물 주듯 성급한 가르침 경계
    월당 스님에 실망한 수행자들 모두 떠나고 선방 텅 비자 이유 물으며 따지는 사제에게 ‘기다림의 의미’ 가르침 내려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나라 때 월당 도창(月堂道昌) 스님이란 분이 계셨다. 스님은 여섯 살 어린나이에 출가하여 열세 살에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는 교학의 바다를 두루 편력하고 제방의 종장(宗匠)들을 참방한 후 운문종 제5세 묘담 사혜(妙湛思慧) 스님의 법을 이었다. 사혜 스님이 열반하신 후, 월당 스님은 정자원(淨慈院)으로 처소를 옮겨 발우와 석장을 풀었다. 그러자 청정한 계의 향기와 명철한 안목을 흠모한 학인들이 사방에서 구름 처럼 몰려들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 많던 학인들이 다시 구름처럼 흩어졌다. 까닭이 있었다. 월당 스님은 운문종의 정맥을 계승한 분이었다. 그 명성을 좇아 찾아온 납자들은 너나없이 명안종사의 신출귀몰한 솜씨를 기대하였다. 하지만 납자가 찾아오면 그저 차 한 잔 권하며 먼 길의 수고로움을 위로 하고는 곧바로 지객(知客)을 불러 대중처소로 안내하라 명할 뿐이었다. 천릿길을 걸으며 질문의 창끝을 벼리고 대답의 방패를 다지는 일에만 오로지 매진했던 납자들에게 “먼 길 오느라 수고했습니다”는 한 마디는 싱겁기 그지없는 거량이었다. 해서 개중에는 어서 일어서라는 지객의 눈짓을 모른 체하고, 선사들의 기연이나 경전의 문구를 들며 그 뜻을 여쭙는 이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늘 월당 스님은 눈빛을 낮추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대부분 실망한 눈빛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래도 뭔가 있겠지 싶어 대중 방에 바랑을 풀었던 자들도 한철을 넘기는 이가 드물었다. 스님의 일상이 평상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간간이 산을 뿌리째 뽑을 기상으로 직접 방장실로 쳐들어가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허탈한 표정으로 방장을 나서긴 마찬가지였다. 깨달은 바를 아뢰어도 가만히 눈을 감고 듣기만 할뿐 이렇다 저렇다 말씀이 없고, 평생의 살림살이를 게송으로 엮어 올려도 읽어보지도 않은 채 그 손에 되돌려주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채 3년도 지나지 않아 시장통처럼 북적거리던 정자원 뜰에는 새소리만 가득하게 되었다. 텅 빈 선방에 몇몇이 듬성듬성 앉아 참선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수좌(首座)로 있던 사제가 다리를 풀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다 한 사람도 남지 않겠습니다.” 월당 스님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사제는 아예 스님 쪽으로 돌아앉았다. “이러다가는 우리 문중이 쇠퇴하고 말 겁니다.” 그래도 말이 없자 사제가 큰소리로 따졌다. “돌아가신 스승께서는 사형에게 종문(宗門)의 운명을 맡기셨습니다. 불조의 혜명이 끊어지지 않게 하라 하신 스승의 당부를 잊으셨습니까?” 가만히 고개를 든 월당 스님이 조용히 말씀하셨다. “단 하루도 스승의 당부를 잊은 적이 없네.” “그런데 왜 법문도 하지 않고, 거량도 하지 않고, 감변도 하지 않는 겁니까?” “스승의 뜻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이고, 불법문중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라네.” “거 무슨 궤변이십니까. 부처님 법과 스승의 뜻을 소중히 여긴다면 제자들을 열심히 가르쳐 역량과 재능을 개발해 주어야지, 왜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까?” 월당 스님도 다리를 풀고 사제 쪽으로 돌아앉으셨다. “자네, 이런 이야기 들어보았나? 옛날에 오이를 심어놓고 무척이나 아끼던 사람이 있었데. 그런데 어느 여름 한낮에 오이를 보러 나갔다가 저게 땡볕에 얼마나 목마를까 싶어 물을 잔뜩 주었다네. 그러자 발꿈치를 돌리는 순간 폭삭 시들어버리더래. 무엇 때문일까? 오이를 아끼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신경을 덜 써서 그런 것도 아니지. 때를 몰랐던 거야. 자기 딴에는 오이를 위한답시고 애를 썼지만 결국 시들게 하기에 딱 알맞은 짓이었지.” “……” 사형의 깊은 속내를 미처 헤아리지 못한 부끄러움에 사제는 고개를 숙였다. 바로 앉아 다시 가부좌를 튼 월당 스님이 말씀을 이어가셨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현하려면 화려한 언변보다 소박하고 진실한 마음을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겠는가. 조사의 등불을 이으려면 뛰어난 재능보다 절개를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기다리고 있는 거라네. 저들이 입을 벽에다 걸고,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고, 까닭 없는 마음의 갈증을 툴툴 털어버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라네.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경론의 언구와 조사의 기연도 일신의 영달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네. 거기에다 내 말까지 보탠다면 종기 위에다 쑥뜸 뜨는 짓밖에 더 되겠나. 그건 그 사람을 망치고, 불조의 뜻까지 훼손하는 짓이지. 불법을 소중히 여기고 스승의 뜻을 소중히 여긴다면 내 어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는가?” 월당 스님은 고개를 숙이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제방의 노숙들이 납자를 지도하는 것을 보면 무척이나 걱정스럽다네. 학인들의 도업이 안으로 얼마나 성숙했는지, 재능이 어느 정도이고 뜻은 얼마나 원대한지 세밀히 관찰하지도 않고 그저 성급하게 가르치려고만 들지. 그릇의 크기를 따지지 않고 물을 들이붓고, 환자를 살피지 않고 약을 쓴다면 어찌 탈이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중생을 위하는 노파심이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 성급함을 탓하지 않을 수 없네. 그래서인지 요즘 납자들을 보면 기본적인 도덕도 지킬 줄 모르고, 언행도 도리에 어긋나며, 공명정대함이란 찾아볼 수 없고, 아첨 떨고 술수 부리는 일에만 능숙하더군. 이게 다 아끼는 마음이 저들의 분수에 넘쳐서 생긴 일 아니겠는가? 그래서 기다리는 거라네. 나까지 한낮에 오이에다 물을 주는 격이라는 비웃음을 사서야 되겠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절을 올린 수좌는 평생 월당 스님 곁을 떠나지 않았다.
    Beopbo Vol 1185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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