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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임제 의현 스님의 보은

浮萍草 2013. 5. 21. 07:00
    한 대 맞는 그 순간 깨달아 방편 마다 않은 스승 봉양 
    황벽회상서 세 번 맞고 물러나
    대우 몽둥이에 부처경계 들어  
    “뼈 부숴도 은혜 갚을 길 없어”
    스승 입적 후 황벽 선사 시봉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나라 때 일이다. 조주 남화 출신에 의현(義玄)이란 법명을 가진 스님이 한분 계셨다. 의현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남달랐으며 계율에 뜻을 두어 수십 년 율장을 탐구하며 칼날처럼 계행을 수지하였다. 또한 여러 경전과 논서를 두루 탐구하였으며 특히 유식(唯識)에 조예가 깊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산더미 같은 전적들이 약방문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처방전만으로 병을 치료할 수 없음을 안 의현은 선지식을 찾아 제방을 편력하였다. 그가 찾아간 곳은 황벽산(黃檗山) 희운(希運)선사 회상이었다. 황벽 회상에서 수좌로 있던 진존숙(陳尊宿)은 순일한 그의 행업에 ‘후배지만 보통사람과 다르구나!’ 하며 감탄하였다. 의현의 그릇을 알아차린 진존숙이 어느 날 의현을 은근히 부추겼다. “자네 여기 얼마나 있었지?” “3년째입니다.”“조실스님께 도(道)를 여쭤본 적은 있는가?” “없습니다.”“왜 여쭤보지 않았는가?” 의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사실 뭘 물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수좌는 짐짓 비밀처럼 속삭였다. “조실스님께 찾아가 ‘불법의 분명한 대의가 무엇입니까?’하고 여쭤봐.” 의현은 곧장 방장으로 올라가 수좌의 지시대로 물었다. “ 스님 불법의 분명한 대의가 무엇입니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황벽 스님의 몽둥이가 날아왔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선방으로 돌아온 의현을 보고 수좌가 물었다. “뭐라 하시던가?” “말도 끝나기 전에 저를 때렸습니다.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수좌는 터지는 웃음을 억지로 감추고 짐짓 목청을 높였다. “사내대장부가 쉽게 물러나서야 되나. 다시 가서 여쭤봐.” 수좌의 격려에 용기를 낸 의현은 재차 삼차 방장으로 올라갔지만 두 번 세 번 얻어터지고 방장에서 쫓겨났다. 의현은 짐을 싸고 풀죽은 목소리로 수좌에게 이별을 고했다. “스님의 자상하신 배려로 조실스님을 찾아뵈었지만 세 번을 묻고 세 번 다 두들겨 맞기만 하였습니다. 저는 그만 떠나겠습니다.” 수좌가 의현을 타일렀다. “이 사람아 가더라도 인사는 해야지. 내일 어른께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고 떠나게.” 그 밤에 수좌가 방장으로 올라갔다. “스님 그 후배가 매우 여법합니다. 작별 인사를 드리러 오거든 방편으로 잘 이끌어 주십시오. 뒷날 한 그루 큰 나무가 되어 천하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드리울 것입니다.” 다음날 인사를 드리러 오자 황벽 스님이 의현에게 말씀하셨다. “옛날 대적(大寂)스님 아래서 함께 공부한 도반 중에 대우(大愚)라는 분이 계신다. 지금 고안현(高安縣)에 계시는데 무리지어 살기를 좋아하지 않아 초막에서 홀로 살고 계신다. 법안이 매우 밝은 분이니, 너의 질문에 분명히 답해줄 것이다. 가려거든 그곳으로 가거라.” 다시 용기를 낸 의현은 곧장 고안 여울가로 향했다. 하지만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의현의 눈엔 다 쓰러져가는 단칸 초막에 사는 허름한 늙은이일 뿐이었다. 의현은 스스로 다독였다. ‘천하의 황벽이 그리 칭찬할 정도면 보통사람이 아닐 거야.’ 어색한 침묵 속에서 깊어가는 어둠을 참다못해 의현이 말을 꺼냈다. ‘유가론(瑜伽論)’을 인용해 유식(唯識)을 논하며 나름 깨달은 바를 주섬주섬 풀어놓고 이것저것 궁금한 점들을 질문하였다. 하지만 대우 스님은 초연히 앉아 묵은 종이처럼 퍼석한 낯빛으로 물끄러미 바라볼 뿐 통 말씀이 없었다. 그렇게 꼬박 밤을 새우고 의현이 혼잣말에 지칠 때쯤 날이 훤히 밝았다. 대우 스님은 방문을 열어젖히며 고함을 쳤다. “멀리서 온 걸 생각해 하룻밤 묵어가도록 허락했는데 어쩌자고 자네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밤새도록 내 앞에다 똥을 퍼질러 놓는가!” 그리고는 냅다 지팡이로 후려치며 밀어내고 문을 닫아버렸다. 영문을 알 수 없던 의현은 다시 황벽 스님에게 돌아와 이 일을 말씀드렸다. 이야기를 들은 황벽 스님은 고안현을 향해 절을 올리며 감탄하였다. “선지식은 역시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과 같구나!” 그리고는 의현을 돌아보며 말했다. “기쁘구나. 네가 드디어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왜 돌아왔냐?” 깜짝 놀란 의현은 다시 대우 스님을 찾아갔다. 그러나 문으로 들어서자마자 고함소리가 터졌다. “저번엔 부끄러운 줄도 모르더니,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찾아왔어!” 미처 입도 떼기 전에 몽둥이가 날아왔다. 또 얻어터지고 쫓겨난 의현은 다시 황벽산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황벽 스님이 꾸짖었다. “이 놈이 일 없이 왔다 갔다 하는구나.” “이번엔 그냥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어떤데?” 의현은 정중히 말씀드렸다. “한대 맞는 순간 부처님의 경계에 들었습니다. 설사 백겁동안 뼈를 갈고 몸을 부순다 해도,그분을 머리로 받들고서 한량없이 수미산을 돈다 해도,깊은 은혜는 갚을 길이 없습니다.” 평상시와 다른 의현의 태도에 황벽 스님은 매우 기뻐하였다. “네가 이제 쉴 줄을 알았으니, 또 저절로 해탈할 날이 있을 것이다.” 열흘 후 의현은 황벽 스님께 하직인사를 올리고 다시 대우 스님께 찾아갔다. 대우 스님은 의현을 보자마자 몽둥이로 후려치려하였다. 의현은 얼른 몽둥이를 받아 쥐고는 곧바로 대우 스님을 쓰러뜨리고 등짝으로 돌아 주먹으로 몇 번 쳤다. 그러자 대우 스님이 마침내 고개를 연신 끄덕이면서 말했다. “내가 혼자 초막에 살면서 일생을 헛되이 보낸다고 여겼더니, 뜻밖에 오늘 아들 하나를 얻었구나.” 의현 스님은 이날부터 임종하는 날까지 십여 년 세월동안 한결같이 대우 스님 곁을 지켰다. 그리고 ‘황벽을 잊지 말라’는 유언을 받들어 다시 황벽 스님을 모셨다. 다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전법의 뜻을 세운 의현이 황벽 스님께 작별인사를 올렸다. 황벽 스님은 시자를 불러 백장선사(百丈禪師)의 선판과 궤안을 갖고 오라 하였다. 그러자 의현이 말했다. “시자야, 불도 가져 오너라.” 황벽 스님은 껄껄 웃으며 의현을 다독였다. “그래도 일단 가져가게. 훗날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하지 못하게 말이야.” 이후 하북(河北)으로 걸음을 옮겨 진부 정정현의 호타강 인근 임제원(臨濟院)에서 널리 교화를 펼친 의현 스님은 널리 대중을 교화 하며 항상 대우 스님과 황벽 스님을 기렸다.
    Beopbo Vol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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