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스승과 제자

9. 혜가스님의 왼팔

浮萍草 2013. 4. 30. 07:00
    스스로 팔 자르는 ‘위법망구’ 정신으로 간절함 드러내
    혜가, 달마대사 스승 삼으려 발심하고 결연한 의지 보여 안심법문에 깨닫고 정진해 “내 골수 얻었다” 인정 받아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위(北魏) 효명제(孝明帝) 정광(正光) 원년(520)의 일이다. 낙양(洛陽) 땅에 신광(神光)이라는 박식한 스님이 한분 있었다. 얼마나 책을 많이 봤는지 고금에 모르는 일이 없고 입만 열었다 하면 현묘한 이치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해서 주위에서 다들 그 명민함을 부러워하고 경외하였지만 정작 본인은 늘 탄식하였다. “공자와 노자의 가르침은 예절[禮]과 술수[術]와 풍류[風]와 법규[規]뿐이요, 장자와 주역도 오묘한 이치를 완전히 밝히진 못했구나.” 이 책 저 책 뒤져보아도 세상과 삶에 대한 의문은 속 시원히 풀어 지지 않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답답함은 어느새 가슴팍 한구석에 돌덩어리 처럼 응어리졌다. 그러던 어느 날 거리를 거닐다 떠도는 소문을 하나 들었다. “신비한 외국스님 한분이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 오셨대.” “뭐가 신비한데.” “하루 종일 말도 없이 벽만 바라보고 앉아있는데,풍기는 기운이 범상치 않다는구먼.” 바람처럼 스친 한마디에 신광은 귀가 번쩍 뜨였다. “그래 그분이 나의 의문을 풀어줄 수 있을지도 몰라. 성인이 멀지 않은 곳에 계시는데 마땅히 찾아뵈어야지 않겠는가.” 그 자리에서 발길을 돌린 신광은 곧장‘벽만 바라보고 앉은 바라문 [壁觀婆羅門]’이 머문다는 그 굴로 찾아갔다. 과연 소문대로였다. 달마(達摩)라는 이름을 가진 그 스님은 기침으로 기척을 알려도 꿈쩍도 않고 큰 소리로 이름을 밝히고 공손히 예를 올려도 돌아 보지도 않았다. 자신도 벽을 마주한 듯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신광은 물러서지 않았다. 굴 앞에 무릎을 꿇고 얼마를 기다렸을까? 소림사에서 점심공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그러자 돌덩이처럼 꿈쩍도 않던 그가 가볍게 몸을 털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커다란 가사에 발우를 들고 굴을 나선 달마는 무릎을 꿇고 기다린 신광에게 가볍게 눈인사만 건네고 곁을 스쳐지나갔다. 시커먼 낯빛에 툭 불거진 코와 눈, 결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외모였다. 하지만 푸른 눈빛이 가을하늘처럼 맑고 깊었으며,잔잔한 미소가 배인 낯빛이 대지의 속살처럼 포근하고,천천히 옮기는 발걸음이 들판을 가로지는 강물처럼 부드러웠다. 신광은 온몸에 흐르는 전율에 소스라쳤다. “이분이 나의 스승이시다.” 소림사에 여장을 푼 신광은 그날부터 제자의 예로 달마를 모셨다. 해가 뜨면 굴로 올라가 문안을 여쭙고 굴 주위를 깨끗이 청소하고 때맞춰 따뜻한 물을 올리고 공양시간이면 그림자처럼 뒤를 따라 소림사를 왕래하고 해가 지면 인사를 드리고 다시 소림사로 내려왔다. 하지만 그렇게 정성을 다했지만 열흘이 지나도록 달마대사는 벽만 바라볼 뿐 한마디 가르침이 없었다. 신광은 생각했다. “옛사람들은 도를 구하려고 뼈를 부숴 골수를 뽑고,피를 뽑아 굶주린 자들을 구제하고 성인이 지나는 길에 머리카락을 펼쳐 진흙땅 을 덮고 벼랑에서 몸을 던져 호랑이밥으로 줬다는데,나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그해 12월 9일 자신의 정성이 부족했음을 탓한 신광은 해가 지고도 소림사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 밤에 큰 눈이 내렸다. 하지만 신광은 굴 앞에 서서 꿈쩍도 않았다. 여명이 밝아오자 쌓인 눈이 무릎을 덮었다. 달마대사가 드디어 돌아앉았다. 그리고 연민의 눈빛으로 한참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오래 눈밭에 서있는 것입니까?” 신광의 두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화상이시여, 부디 자비로 감로(甘露)의 문을 열어 만 중생을 제도해 주소서.” 그러자 달마대사가 말씀하셨다. “부처님들의 위없는 오묘한 도는 오랜 세월 부지런히 정진하면서 실천하기 힘든 일을 능히 실천하고 참기 힘든 일을 능히 참아내야 만 합니다. 어찌 공덕도 쌓지 않고 작은 지혜와 경솔한 마음과 교만한 마음으로 참된 가르침[眞乘]을 바라십니까? 괜한 헛수고일 뿐입니다.” 달마대사의 훈계를 들은 신광은 몰래 가져왔던 칼을 꺼내 자신의 왼쪽 팔을 잘랐다. 그리고 그 팔을 달마대사 앞에 놓았다. 달마대사가 놀란 눈빛으로 신광을 바라보다가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도 처음에 도를 구할 때는 법을 위해 몸을 잊었답니다. 그대가 이제 내 앞에서 팔을 자르는 걸 보니 법을 구할 만하군요.” 달마대사는 마침내 신광을 허락하고 그의 이름을 혜가(慧可)로 바꿔주었다. 그렇게 제자가 되어 밤낮없이 곁을 떠나지 않았지만 달마대사는 여전히 벽만 바라볼 뿐 도무지 말씀이 없었다. 그 그림자를 따라 앉고 걸으며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혜가가 합장하고 정중히 여쭈었다. “모든 부처님들의 법인(法印)을 제가 들을 수 있겠습니까?” 달마대사가 미소로 대답했다. “모든 부처님의 법인은 다른 사람에게서 얻는 것이 아니란다.” 고개를 숙인 채 망설이다 혜가가 속내를 꺼냈다. “제 마음이 아직 편안하질 못합니다. 스님께서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달마대사가 가만히 손을 내밀며 말씀하셨다. “마음을 가져 오너라. 그럼 편안하게 해주리라.” 한참을 침묵하다가 혜가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아무리 마음을 찾아보아도 끝내 찾을 수가 없습니다.” 손을 거둔 달마 역시 깊은 눈빛으로 한참을 바라보다 조용히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다시 9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천축으로 돌아가려고 마음먹은 달마대사가 문인(門人)들을 모으고 말씀하셨다. “때가 되었다. 너희들은 각자 터득한 바를 말해 보거라?” 그러자 제자인 도부(道副), 총지(總持)비구니 도육(道育)이 차례로 깨달은 바를 말씀드렸다. 마지막으로 혜가만 말이 없자 달마대사가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얻었는가?” 혜가는 조용히 앞으로 나와 달마대사에게 절을 올린 뒤 제자리로 돌아가 가만히 서있기만 하였다. 그러자 달마대사가 흐뭇한 웃음을 보이며 말씀하셨다. “그대가 나의 골수를 얻었구나.”
    Beopbo Vol 1186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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