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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다선일여(茶禪一如)

浮萍草 2013. 9. 10. 07:00
    종의 차나무 기원설에 따르면 초조 달마대사가 6세기에 중국으로 건너가서 중국 스님들에게 참선을 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스님들이 졸음을 참지 못하자 달마대사가 자신의 눈썹을 베어 땅에 묻었고 그곳에서 차나무가 자라났다고 전해진다. 
    이에 스님들에게 그 나무의 잎을 달여 마시게 했는데 그때부터 스님들은 돌음에서 벗어나 참선을 잘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차가 지닌 성분이 정신을 맑게 하고 소화를 촉진시킴으로써 수도자에게 매우 적합한 음료로 불교와 차가 처음 
    관계를 맺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쌍계사 조실 고산스님은 저서‘다도의범’에서 밝히기를,이러한 물리적 효용성에서 점차 발전되어 음다(飮茶) 행위가 곧 수행을 통해 
    마음을 닦는 선(禪)의 경지와 다르지 않게 된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깨우침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들었던 차를 선다(禪茶)라 일컫는다. 
    차를 선의 경지로 끌어올린 이는 조주선사이다. 
    일찍이 조주선사는 끽다(喫茶)가 곧 선종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기도 하다는 다선일여사상을 통해,끽다법을 화두공안으로 삼은 바 
    있다. 
    그는 법을 구하며 찾아오는 이들에게 ‘차나 마시게(喫茶去)’라는 말로 응대함으로써‘조주다’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차 생활과 선수행은 ‘不二’ 
    실천다도의 평상심 일컬어
    
    잘 알려진 일화이나 다시 한번 들어보자. “그대는 전에 여기 온 일이 있는가?” “없습니다.” “차나 마시게(喫茶去).” 선사는 또 객승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예, 저는 예전에 이 곳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차나 마시게(喫茶去).” 곁에 있던 원주가 의심스러워하며 선사에게 여쭈었다. “큰스님께서 전에 온 적이 없다는 스님에게 차나 마시라 하신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전에 온 적이 있다고 하는 스님에게도 어찌 차나 마시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원주?” “예.” “차나 마시게(喫茶去).” 오묘한 진리를 묻는 자리에서 조주선사는 일상적인 차생활을 말하고 있다. 끽다거는 차생활과 선수행이 둘이 아닌 다선불이(茶禪不二),곧 선종에서 지향하는 실천다도로서 평상심을 일컫는 것이다. 이처럼 선사들은 단지 차를 좋아하고 즐겨 마시는 것 뿐만아니라 차를 통해 깨우침을 주고 차를 마시는 행위가 곧 선수행과 다르지 않은 다선일여(茶禪一如)의 경지까지 나아간 것이나 다름없다. 고산스님은 이같은 차와 선의 경지를 ‘다도의범’에서 설명하기를,“차의 성품이 삿됨이 없어서 어떠한 욕심에도 사로잡히지 않으며, 때묻지 않은 본래의 원천과도 같은 것이라 하여 ‘무착바라밀(無着波羅蜜)’”이라고 명명했다. 또한“차를 마시는 일이 현묘한 경지에 놓이기 위해서는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수행의 자세와 다르지 않은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고 강조했다. “차를 통해서 법희선열을 맛보아야 한다(法喜禪悅食)”는 초의선사의‘다선일미(茶禪一味)’사상과 다르지 않다.
    불교신문 Vol         하정은 기자 tomato77@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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