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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조선 후기 차문화사 〈4〉

浮萍草 2013. 8. 20. 07:00
    초의스님과 추사선생 만남은
    당대 차문화사에 큰 획 그어
    의스님과 추사 김정희의 만남은 당대 차문화사에 큰 획을 그었다. 
    추사는 서른살 무렵에 다산의 아들의 소개로 동갑인 초의스님을 만났다. 
    이들 만남을 두고 쌍계사 조실 고산스님은<다도의범>에서“당대 명필 추사와 남도의 선승 초의의 만남은 조선조 말의 꽃이요,차를 
    중심으로 한 이들의 교류는 한국 차문화사의 백미를 이루는 것”이라고 평했다. 
    당시 땅끝마을 해남에서 서울까지 빠른 걸음으로도 보름은 족히 걸리던 시절,해마다 초의스님은 대흥사 일지암에서 정성스레 만든 
    차를 추사에게 보내줬다. 
    차를 받은 추사는 염주와 향,부채,책 등과 주옥같은 글씨를 초의스님에게 답례로 보냈다. 
    추사가 9년간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초의스님은 매년 차를 선물했다고 한다. 
    추사가 초의스님에게 써보낸 ‘명선(茗禪)’은 다도계의 명필로 전해져 온다. 
    명선은 다선일미(茶禪一味)의 정신을 함축하고 있다. 
    당대 두 거장의 교유에 이렇듯 차의 존재는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 
    위트와 정이 넘쳤던 추사는 차가 떨어질 듯하면 초의스님을 닦달해서 차 얻어먹기를 즐겨했다. 
    두 사람은 서신을 주고받는 가운데 차를 둘러싸고 허물없이 농을 하고 을러대는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차를 빨리 보내라고 어린아이처럼 보채는가하면 때로는 남의 차를 가로채기도 한다. 
    <다도의범>에 실린 ‘차를 청하며’란 제목으로 추사가 초의스님에게 보낸 서신내용이다. 
    “편지를 보냈지만 한번도 답은 보지 못하니 아마도 산중에는 필히 바쁜 일이 없을 줄 상상되는데 혹시나 세체(世諦)와는 어울리고 
    싶지 않아 나처럼 간절한 처지인데도 먼저 금강(金剛)을 내려주는 게요. 
    다만 생각하면 늙어 백발나이에 갑자기 이같이 하니 우스운 일이요,달갑게 둘러 갈라진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오. 
    이것이 과연 선(禪)에 맞는 일이란 말이오. 
    나는 그대를 보고 싶지 않고 또한 그대 편지도 보고싶지 않으나 다만 차의 인연만은 차마 끊지도 부수지도 못하여 또 차를 재촉하니, 
    편지도 보낼 필요 없고 다만 두 해의 쌓인 빚을 한꺼번에 챙겨 보내되 다시 지체하거나 빗나감이 없도록 하는게 좋을 거요. 
    그렇지 않으면 마조의 할(喝)과 덕산의 방(棒)을 받을 것이니 이 한 할과 이 한 방은 수백천의 겁이라도 피할 길이 없을 거외다. 
    더 이상 말하지 않겠소.” 
    차를 바라는 간절함을 담고 농담체로 협박조까지 담긴 이같은 편지는 두 거장이 허물없는 유쾌한 관계임을 엿볼 수 있다. 
    초의스님으로부터 차를 받고 쓴 답장에도 위트가 넘친다. 
    “인편에 느닷없이 편지와 차를 받아보니 차 향기에 문득 눈이 열림을 깨닫겠구려. 
    편지를 동봉했는지는 본래 관심밖이었다오.” 
    초의스님이 추사에게 차를 보내면서 백파스님에게도 한 봉지 전해줄 것을 부탁한 적도 있었다. 
    차 욕심이 남달랐던 추사는 좋은 차를 보자 그것을 백파스님에게 전해주지 않고 가로채면서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나누어 주라고 보낸 차, 백파에게 주기가 너무 아깝네. 
    그 큰 싹, 고아한 향기와 맛이 너무도 뛰어나구려. 한 포만 더 보내줄 수 없겠소? 
    병중에 쓰는 글이라 양해하시오.” 
    도대체 초의스님이 만든 차맛이 얼마나 좋기에 추사는 이토록 차를 극찬하고 그도 모자라 남의 차를 가로채기까지 하는 것일까. 
    차 한봉지를 얻기 위해 익살을 떨고 애교를 부리는 가하면 병을 핑계삼아 동정심까지 유발한 추사.초의스님의 차이야기가 새삼 궁금
    하다.
    
    불교신문 Vol 2475         하정은 기자 tomato77@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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