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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조선 후기 차문화사 〈6〉

浮萍草 2013. 9. 3. 07:00
    여류차인 사상.정서 엿보여 
    숙선옹주 다량의 시문 남겨 
    
    ‘이별한 이는 그 소리 듣지 말지니, 공연히 별한(別恨)이 깊어질 뿐이라네. 
    차 달이며 하릴없이 잠 못 이루면 외로운 대평소 소리에 벌써 새벽이라네.’ 
    조선후기 관찰사 서형수의 딸인 영수합 서씨(1753~1823)가 읊은 ‘다시’다. 
    다시를 합쳐 총 190여편의 시를 남겨 왕성한 창작욕을 과시한 이 여성은 위트와 함께 차문화의 정서를 고스란히 시에 담았다. 
    ‘작은 차 화로에 불 지킨 것은 그 몇 년인가. 
    신기한 공력이 조금은 있을 것이라네. 
    차 마시고 거문고 퉁기니 그 소리 맑아 밝은 달 떠오르는데 누구를 부를까. 
    봄 쟁반 푸른 잔에 이슬구슬 가득하고 오랜 벽에 연기 얽혀 그림을 그렸다네. 
    찬에 찬 것이 어찌 술이어야 하리. 답청 가는 내일에는 찻병 가져가야지.’ 
    류건집 원광대 교수는 그의 저서 ‘한국차문화사’에서 서씨의 다시에 대한 해설을 통해 조선후기 여류차인들의 사상과 정서를 짐작케 
    했다. 
    류 교수의 해설이다. 
    “긴 세월 차를 달였으니 그에 대한 자부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이 찻자리에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는 숙제다. 
    맑은 거문고 소리와 휘영청 밝은 달빛이 있고 거기에 차가 있으니,여기 어울리는 사람은 누구일까. 
    찻잔에 가득한 유화는 구슬처럼 뜨고, 벽에 비친 그림자는 한 폭의 그림이다. 
    이때 차를 마신다. 그리고 내일의 답청 놀이엔 차를 달일 것이다.” 
    정조와 수빈 박씨 사이에서 태어난 순조의 여동생 숙선옹주의 생전에 차를 즐겨 마셨고 다량의 시문을 남긴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매옥에서 늦도록 차마시고 나오니 난간 위 오동나무에 깃든 새 우네(‘卽事’ 중에서)”
    “개울가 푸른 이끼에 앉아 솔잎 태워 차를 달인다네. 
    차 마시고 또 시 읊으니 꽃 사이 나비들이 춤을 춘다네(‘偶吟’ 전문)” 등이다. 
    특히 시 ‘우음’에서 집밖에서 차를 달여 마시는 장면은 이미 당시 여인네들의 보편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류건집 교수는 “개울가에서 솔잎으로 달인 차 마시며 시를 연창하며 읊어본다. 
    그러면 그 읊는 소리에 맞추어 나비들이 춤을 추는 한 폭의 선화(仙畵)가 연출된다”며“섬세한 여인의 필력을 엿볼 수 있다”고 호평
    했다. 
    이외에도 차는 혼례와 관련해서도 예물로 사용됐다. 
    혼인이 결정된 후 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봉채함을 보낼 때 차와 차씨 등을 넣어 보냈다. 
    차나무는 세한풍에도 푸른잎을 꼿꼿이 지니고 있을 뿐만아니라 곧게 뻗어내리는 직근성은 다른 곳으로 옮겨 심을 경우 살기 어려운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차를 함에 넣어 보내는 뜻은 새롭게 맞아들이는 며느리의 절개를 바랐던 것이다. 
    쌍계사 조실 고산스님은 저서 <다도의범>에서 이같이 차를 혼례의 예물로 보내는 전통은 중국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고산스님은 “조선 효종 때 김육이 지은 <유원총보>에는 황차가 등장하는데 황차는 중국의 자전한어에 신랑이 신부집에 보내는 
    예물이라고 적고 있다”고 밝혔다. 
    인용하면“옛 풍습에 다례가 있었는데 약혼 때 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찻잎을 선물하는 예를 말한다…
    신부 집에 보내는 차를 황차(黃茶)라 하는데,황차란 차병(茶餠) 또는 벽돌차라 하여 찻잎을 벽돌모양으로 굳혀 만든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불교신문 Vol 2479         하정은 기자 tomato77@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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