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문화가 절정에 달했던 고려시대엔 다도문화를 엿볼 수 있는 다시(茶詩)도 풍성하다.
다도가 고려 지배층 문화로 자리잡아가면서 문인들을 중심으로 훌륭한 다인들이 많이 배출됐고 차를 주제로 한 많은 시작(詩作)을
남긴 것이다.
특히 고려 이후로 스님이나 문인들 사이에 차가 소중한 선물로 자리잡았고,차를 선물받은 이들은 다시로써 화답하는 풍속이 유행
했다.
ㆍ유명 茶人 배출…茶時도 풍성
혜심스님은 ‘선다일여’도달해
대표적인 다시인은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1168~1241)다.
백운거사로 불린 이규보는 차와 자연을 벗하면서 삶을 관조한 다선일치의 경지를 추구했다.
주옥같은 다시를 남겨 다도의 역사를 풍요롭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규보의 지기인 설봉산 노규선사로부터 조아차(早芽茶)를 선물받고 지은 ‘유다시(孺茶詩)’는 유명하다.
노규스님이 조아차를 그에게 선보이면서 유치라 이름붙이고 시를 청해서 지은 것이다.
‘화로에 센 불에 손수 차를 달여 찻잔 빛깔과 차맛이 서로 버기네.
향긋한 맛 입속에 부드럽게 녹으니 내 마음 어머니 젖내 맡는 애기 같도다.
끽다와 음주로 평생을 보내면 오며가는 풍류는 이로부터 시작되리니 적적한 방장엔 한 물건도 없고 숲속에서 들리는 생황소리를
즐기네.
차의 품격과 물을 평하는 것이 기풍일 뿐,어찌 양생하며 천세의 영화를 바라리오.
서생의 굶주림이 장류 흐르듯 해도 입과 배에 곡기만 들어가면 되리니.
만일 내게 보낸 유차가 아주(雅酒)보다 나음을 알면 이는 참으로 우리들에게서 시작된 것이리.’
고려말의 충신 정몽주(1337~1392)는 차를 즐기면서 수많은 다시를 남겼다.
역사적 현실 속에 처한 상심이 차를 통해 승화되는 경지를 엿볼 수 있다.
‘돌솥에 처음 차 끓는 소리. 풍로엔 불꽃이 붉구나.
물과 불이 천지를 움직이니 이 뜻 무궁 현묘하도다.(石鼎煎茶詩 1)’
‘나라 위해 한 일 없는 늙은 서생이 차 마시기 버릇되어 세상 일 잊어버렸네.
눈 내리는 밤 고요한 서재에 홀로 누워 돌솥의 솔바람 소리 즐겨 듣노라.(石鼎煎茶詩 2)’
진각국사 혜심이 보조국사 지눌을 찾아 백운산에 이르렀을 때 저 멀리 암자에서 보조스님이 시자 부르는 소리를 듣고 지은 게송도
전해진다.
‘아이 부르는 소리 송라의 안개 떨어지는데 바람에 실린 차 달이는 향기 돌길에 가득하도다.
백운산 먼길 선사를 찾아 올랐더니 노스님은 벌써 암자에 차를 달여두고 날 기다렸도다.’
류건집 원광대 석좌교수는“혜심은 시의 깊은 예술성과 다심(茶心)을 융화시켜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선(禪)시인”이라고 했다.
특히 시 ‘인월대(隣月臺)’에서 ‘북두로 은하 길어 밤차 달이나.
차 연기 싸늘히 피어 계수나무 가린다네’의 구절은“모든 것이 수직구도로 높이 하늘까지 닿는다.
북두칠성을 국자로 은하수를 다천(茶泉)으로 길어 달이는 다연(茶烟)이 하늘의 계수나무를 가리는 표현은 자신의 의취가 벌써 이
세상의 작은 한 인간이기 보다는 이미 범우주적으로 초탈한 대아임을 노래한 것”이라고 평했다.
고려의 다풍은 이처럼 선과 차, 차와 시, 선과 시과 어우러져 ‘선다일여(禪茶一如)’의 경지에 이르렀던 시기다.
☞ 불교신문 Vol 2461 ☜ ■ 하정은 기자 tomato77@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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