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우리 茶 이야기

13 고려의 차문화사 〈中〉

浮萍草 2013. 6. 25. 07:00
    문화가 절정에 달했던 고려시대엔 다도문화를 엿볼 수 있는 다시(茶詩)도 풍성하다. 
    다도가 고려 지배층 문화로 자리잡아가면서 문인들을 중심으로 훌륭한 다인들이 많이 배출됐고 차를 주제로 한 많은 시작(詩作)을 
    남긴 것이다. 
    특히 고려 이후 스님이나 문인들 사이에 차가 소중한 선물로 자리잡았고 차를 선물받은 이들은 다시로써 화답하는 풍속이 유행했다. 
    
    ㆍ유명 茶人 배출…茶時도 풍성
    혜심스님은 ‘선다일여’도달해
    대표적인 다시인은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1168~1241)다. 백운거사로 불린 이규보는 차와 자연을 벗하면서 삶을 관조한 다선일치의 경지를 추구했다. 주옥같은 다시를 남겨 다도의 역사를 풍요롭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규보의 지기인 설봉산 노규선사로부터 조아차(早芽茶)를 선물받고 지은‘유다시(孺茶詩)’는 유명하다. 노규스님이 조아차를 그에게 선보이면서 유치라 이름붙이고 시를 청해서 지은 것이다. ‘화로에 센 불에 손수 차를 달여 찻잔 빛깔과 차맛이 서로 버기네. 향긋한 맛 입속에 부드럽게 녹으니 내 마음 어머니 젖내 맡는 애기 같도다. 끽다와 음주로 평생을 보내면 오며가는 풍류는 이로부터 시작되리니 적적한 방장엔 한 물건도 없고 숲속에서 들리는 생황소리를 즐기네. 차의 품격과 물을 평하는 것이 기풍일 뿐 어찌 양생하며 천세의 영화를 바라리오. 서생의 굶주림이 장류 흐르듯 해도 입과 배에 곡기만 들어가면 되리니. 만일 내게 보낸 유차가 아주(雅酒)보다 나음을 알면 이는 참으로 우리들에게서 시작된 것이리.’ 고려말의 충신 정몽주(1337~1392)는 차를 즐기면서 수많은 다시를 남겼다. 역사적 현실 속에 처한 상심이 차를 통해 승화되는 경지를 엿볼 수 있다. ‘돌솥에 처음 차 끓는 소리. 풍로엔 불꽃이 붉구나. 물과 불이 천지를 움직이니 이 뜻 무궁 현묘하도다.(石鼎煎茶詩 1)’ ‘나라 위해 한 일 없는 늙은 서생이 차 마시기 버릇되어 세상 일 잊어버렸네. 눈 내리는 밤 고요한 서재에 홀로 누워 돌솥의 솔바람 소리 즐겨 듣노라.(石鼎煎茶詩 2)’ 진각국사 혜심이 보조국사 지눌을 찾아 백운산에 이르렀을 때 저 멀리 암자에서 보조스님이 시자 부르는 소리를 듣고 지은 게송도 전해진다. ‘아이 부르는 소리 송라의 안개 떨어지는데,바람에 실린 차 달이는 향기 돌길에 가득하도다. 백운산 먼길 선사를 찾아 올랐더니, 노스님은 벌써 암자에 차를 달여두고 날 기다렸도다.’ 류건집 원광대 석좌교수는 “혜심은 시의 깊은 예술성과 다심(茶心)을 융화시켜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선(禪)시인”이라고 했다. 특히 시 ‘인월대(隣月臺)’에서 ‘북두로 은하 길어 밤차 달이나. 차 연기 싸늘히 피어 계수나무 가린다네’의 구절은 “모든 것이 수직구도로 높이 하늘까지 닿는다. 북두칠성을 국자로 은하수를 다천(茶泉)으로 길어 달이는 다연(茶烟)이 하늘의 계수나무를 가리는 표현은 자신의 의취가 벌써 이 세상의 작은 한 인간이기 보다는 이미 범우주적으로 초탈한 대아임을 노래한 것”이라고 평했다. 고려의 다풍은 이처럼 선과 차, 차와 시, 선과 시과 어우러져 ‘선다일여(禪茶一如)’의 경지에 이르렀던 시기다.
    불교신문 Vol 2461         하정은 기자 tomato77@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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