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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통일신라의 차문화 〈中〉

浮萍草 2013. 6. 4. 07:00
    ㆍ김교각스님 중국에 차씨 심어
    일신라 차문화사의 중심엔 한국과 중국을 넘나들며 지장왕보살로 추앙받는 김교각(696~794) 스님이 있다. 
    통일신라 성덕왕의 아들로 태어나 모든 부귀 영화를 버리고 홀홀 단신 중국으로 건너가 구도의 삶을 살다 입적한 교각스님은 지금도
     중국 구화산 육신보전에 등신불로 봉안돼 있다. 
    중국 구화산 불교역사서 ‘송고승전’에 교각스님의 기록이 일부 실려 있다. ‘
    지장스님은 성은 김씨이니, 신라 국왕의 갈래사람이다. 
    겉모양은 험상 궂으나 마음은 자비롭고 크게 깨달았다. 
    7척의 몸에 정수리가 많이 솟고 뼈대가 커서 힘은 남자 열 명을 대적할 만했다.’ 
    교각스님은 구화산서 평생 수행정진에 임하며 차 달여 마시는 일을 빠뜨리지 않았다고 전한다. 
    스님이 중국으로 갈 때 차씨를 가져다가 심었다는 이야기도 교각스님이 차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구화산에 심은 차를 ‘공경차(空梗茶)’라고 했고 맛이 특별했다는 기록이 청나라의 <다사(茶史)>에도 전해진다. 
    ‘구화산에 공경차가 있는데 이는 김지장이 심은 것으로 대체로 안개와 노을이며 구름 속에서 언제나 기운이 다사롭고 부드러우며 
    심은 땅에 따라 맛이 다르다. 
    김지장은 신라의 승려로 당나라 연간에 바다를 건너 구화산에 이르러 이 차를 심었다. 
    나이 99세에 앉은 채 함 속에서 입적하고 3년 후에 열어보니 안색이 살아 있는 듯하고 들어보니 뼈마디가 모두 움직였다.’  
    
    ㆍ구화산 공경차는 다사에 전해 
    지금도 중국 구화산 노호동에 1200여년 된 노다수가 있는데 그 지방 사람들은 그 나무를 교각스님이 심은 차나무로 알고 있다. 스님이 719년 처음 간 곳이 노호동이고 그 때 차씨를 가져다 심었다면 대렴보다 100여년 빠르다. 류건집 원광디지털대 교수는“노호동에서 생산되는 차는 금지차(金地茶)라 하여 지장스님의 호를 딴 것이며<구화산지>에서는 금지 차를 공경차와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며“대렴 이전에 신라에 이미 전해오는 차가 많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했다. 교각스님의 친형이자 성덕왕의 셋째 왕자 출신으로 알려진 무상(684~762)스님도 중국으로 건너가 선다지법(禪茶之法)을 행했다. 신라의 스님이 중국에서 선법을 전하며 유명해진 무상스님은 ‘맑은 물에 새 차 끓이니 산뜻하기도 하여라’라는 시를 짓기도 했다. 지난 2001년 무상스님은 중국 불교의 성자로 추앙받고 있는 오백나한에 등장하는 455번째 인물이 됐고 최근 그의 사상을 조명하는 학술회의도 중국 성도성 대자사에서 열리기도 했다. 대자사는 무상이 당나라 현종의 칙명으로 주지를 지냈던 절이고,그가 열반한 공간이다. 특히 무상스님이 선법을 널린 펼쳤던 중국의 사천은 차의 고장이니 원산지로 추정되고 있어 차와는 인연이 깊은 곳이다. <화양국지>에 차의 명산지로 기록되어 있으며 몽정차가 생산되고 오리진이 기원전 53년 경 차 재배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설총의 <계왕서>에도 ‘고량진미로 배를 채우고 차와 술로서 정신을 맑게 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신라 신문왕의 아들인 보천, 효명스님에 관한 ‘삼국유사’의 기록도 있다.
    불교신문 Vol 2454         하정은 기자 tomato77@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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