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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가야의 차문화

浮萍草 2013. 5. 21. 07:00
    ‘삼월이라 삼짇날 다전리에 햇차 따서…김해 그릇 큰사발로 나라 세운 수로왕님 십왕자의 허 왕후님, 가락국가 세운 은혜 이 차 
    한 잔 올립니더…’ 
    옛 가야터 김해지방에서 전해오는 민요의 한 구절이다. 
    가야차의 역사가 들어 있다. 낙동강 하류에 위치한 가야에는 일찍부터 음다풍속이 있었다. 
    비옥한 토지에 중국 남방과 교역이 성해서 철기문화와 벼농사가 들어왔던 가야는 다생활도 일찍 시작됐다. 
    류건집 원광디지털대학 교수는 “5세기 전에 가야에 이미 불교가 있었다고 보고 허 왕후의 동생 장유화상이 칠불암으로 들어가 수도
    했다면 2세기경부터 불교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니 불사에 차가 동반됐다면 가야 차의 역사는 실로 오래되었다고 본다”고 밝혔다. 
    가야의 제사의식(祭儀)은 엄격한 규정을 제대로 잘 지키며 계승되었다. 
    <삼국유사>에는 ‘수로왕의 17대손인 급간갱세가 조정의 뜻을 받들어 그 제전을 관리하여 해마다 술과 단술을 빚고 떡과 밥, 차와 
    과일 등 여러 가지 음식으로 제사 지내기를 그치지 않았다…
    330년 동안 종묘에 제사는 항상 변함이 없었는데 구형왕이 왕위를 잃고 나라를 떠난 뒤부터 사당에 지내는 제사는 간혹 거르기도 
    했다’라고 적혀 있다. 
    이는 나라가 없어지고 간혹 빠뜨리긴 했지만 제일과 제물을 정해서 제의를 그대로 이어왔음을 알 수 있다. 
    ‘허 왕후의 차 도래설’에서 허 왕후가 사천 보주를 통해서 온 것은 알려진 바 있지만 그 때 차씨를 가져왔는지는 모호하다. 
    다만 그가 차와 부처님의 나라인 인도의 귀족으로, 역시 차의 산지인 사천 보주를 거쳐 출가했으니 평소 즐겨마시던 차에 대한 
    준비를 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ㆍ중국 남방과 교역…차 생활 빨라 
    ‘허황후 차 도래설’엔 사천과 교류
    최근 인도나 운남 사천에 생장하는 대엽종의 차나무가 발견된 백월산은 가야시대부터 불지성산으로 칭해왔다. 지리산 낙남정맥이 김해로 뻗기 전에 찬주산과 봉림산으로 내치고 다른 하나는 백월산으로 맥을 잇는다. <삼국유사> 중 ‘백월산양성성도기(白月山兩聖成道記)’에 따르면 이 산이 당나라 황제의 연못에 비친 산으로 ‘백월’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부처님이 된 두 성인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밖에도 가야에는 차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백월산 동남쪽 다호리(茶戶里),상동면의 여다리(余茶里),다시곡(다시곡),다곡(다곡),김해의 금강지(금강지)는 원래 다전리(다전리) 라 불렀다, 백월산 동남쪽의 다호리 고분에서는 1988년 2000여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출토품 중에 다기로 보이는 그릇들이 있다. 류건집 교수에 따르면 허 왕후의 도래가 역사적인 신빙성을 얻음으로써 백월산을 중심으로 한 야생 대엽종들의 발견이 한층 빛을 보게 됐다. 그는 기존의 사서에서 가야 차에 관한 것들과 합해서 미뤄보면 가야의 차문화는 제대로 밝혀질 터를 마련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지금도 경남 김해시가 매년 곡우를 전후로 해서 허 왕후에게 헌공다례를 하고 가야 차문화를 시연하는 차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불교신문 Vol 2450         하정은 기자 tomato77@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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