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우리 茶 이야기

6 백제의 차문화 (下)

浮萍草 2013. 5. 7. 07:00
    제는 4세기 후반 불교의 전래에 의해 왕실과 귀족사회가 강화되고 화려한 불교문화가 융성하자 사원과 귀족층에서 음다(飮茶) 
    풍속이 성행했다. 
    일본 동대사요록(東大寺要錄)에 백제의 귀화승 행기(行基, 668~748)스님이 중생을 위해 동대사에 차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류건집 원광디지털대학 차문화학교 석좌교수는 “동대사는 백제의 건축양식에 가까운 사찰로 왕인의 후예가 차를 심었다는 것은 의미
    심장하다”고 했다. 
    류 교수는 또“일본 상야공원에 있는 ‘박사왕인비문(博士王仁碑文)’에도 이를 뒷받침할만할 행기승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백제
    에서부터 오래전부터 차를 마셨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밝혔다. 
    당시 일본의 문화는 매우 후진적이었다. 
    일본과 가까웠던 백제의 스님들이 그 문화를 전파한 흔적들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이같은 사실을 잘 말해준다. 
    백제는 해양을 접한 나려여서 해외교류가 많았다. 
    불교는 물론 유교 도교까지 모두 유입됐으니 당시 차문화도 함게 들어와 백제의 차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은 자명하다. 
    미륵사지에서 연질도기잔이 출토된 사실이나 무령왕릉에서 연질도기잔과 동탁은잔이 발굴된 사실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또한 백제는 차 재배지가 가장 광활한 곳인 만큼 당연히 차문화가 성행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ㆍ4C말 불교전래로 음다풍속 성행 
    “왕인 후예 차 심었다”는 기록도
    차와 그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차의 원류는 ‘초암차’다. 초암차에 일본다도의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다. 그것을 일본다인들은 ‘와비’로 부른다. ‘와비’는 우리말로 자득(自得),한적한 정취,소박하고 차분한 멋,혹은 한거(閑居)로 설명할 수 있다. ‘와비’는 부유한 귀족층이 많은 돈을 들여 호사를 자랑하며 물질적인 향락을 추구했던 것과는 반대로 가난함, 진지함,청순함 속에서 화려함을 멀리한 정신세계를 추구했다. 당시 차인들은 한적한 곳에 소박하고 검소한 다실을 세우고 검박하고 자연스러운 조화를 추구했다. 이것이 바로 일본다도의 핵심인 ‘와비’의 정신이다 일본은 세계적으로 차의 나라로 불린다.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차외교를 했기 때문이다. 일본을 방문한 미국의 지도자들을 상대로 한 일본 지도자들의 차외교는 세계적으로 일본의 정신문화가 매우 높은 경지에 있음을 선전 하는 장이 되기도 했다. 일본차와 한국차의 관계는 매우 긴밀하다. 이밖에도 백제의 차생활은 일본 문헌을 통해 전해지는데,‘일본서기’에는 메이천황 13년 백제의 성왕이 담혜화상 등 16명의 스님에게 불구와 차를 일본에 보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최근 풍납토성 경당지구 발굴책임자를 지낸 한신대 국사학과 권오영 교수는 백제가 한성에 도읍하던 3~4세기에 이미 차를 즐겼다는 주장을 제기해서 차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권 교수는 “지금까지 백제유적에서 발굴된 중국제 수입 도자기는 100점 이상을 헤아린다”면서 “이 중 일부는 다기가 분명하며 그런 다기용 도자기는 이미 3~4세기 단계의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이 무렵에 차문화가 도입돼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풍납토성 출토유물 중에서도 중국 서진(西晉, 256~316) 시대 계수호와 완이 출토되고 있어 백제가 차문화를 접한 것은 3세기 대로 올라갈 수 있다”며“이 무렵에 이미 백제지배층을 중심으로 차를 애호하는 흐름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불교신문 Vol 2443         하정은 기자 tomato77@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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