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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차의 전래

浮萍草 2013. 4. 16. 07:00
    ㆍ남해를 통한 해로전래설과
    중국 경유한 육로설 ‘병립’
    리나라의 차는 바다를 통해 전해온 ‘해로(海路)전래설’과 중국서 대륙을 통해 전한 ‘육로(陸路)전래설’이 있다. 
    해로전래에는 허황옥의 도래와 관련된 주장과 해로의 상교역이나 기타 외교관계로 연관짓는 견해 등 두 가지가 있다. 
    19세기 말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는 “김해 백월산에 죽로차가 있는데 수로왕비 허씨가 인도에서 가지고 온 차종자라고 세상에 
    전한다(金海白月山有竹露茶 世傳首露王妃許氏 自印度持來之茶種云)”라고 적혀 있다.
    또 신라 문무왕이 수로왕릉에 제사를 지낼 때 차를 쓰라고 한 것이나 고대 인도에서 종교행사에 차를 사용한 사실을 미뤄보았을 때 
    허황옥을 통한 해로전래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사료적 증거가 될만한 확정적인 단서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김해 인근에 다전리(茶田里)라는 옛 지명이 현존하고 그 지역이 차의 오래된 산지이며 그 차가 바로 허황옥이 심은 차라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이어오는 것을 보면 고려해볼만 하다. 
    이 지방에 전해오는 민요에도 ‘선동골이 밝기 전에 금당 복수 길어 와서,오가리에 작설 넣고 참숯불로 지피어서…’ 등 차를 소재로 
    하고 있어 눈에 띈다. 
    류건집 원광디지털대 차문화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 “몇 년 전 창원의 백월산 자락을 중심으로 길이 18㎝ 크기의 대엽차종이 몇 
    군데서 계속 발견되는 것은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는 중요한 일”이라며 “대엽차종이 많이 있다는 것은 예로부터 이 지역에 같은 종의 
    차나무가 있었다는 것이고 그 지역이 가야의 옛 땅임을 감안하면 허 왕후의 출신지에 대엽차종이 많다는 것을 연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허 왕후의 도래 외에도 여타의 해로유입설도 있다. 
    백제나 가락, 신라는 지역적 특수성에 따라 해상의 교역이 이른 시기부터 활발했다. 
    따라서 인도나 중국과의 상교역에서 차에 관한 것이 오갔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해로전래설과는 달리 중국에서 육로로 고구려를 거쳐 백제와 신라로 전해졌다고 보는 육로전래설은 전적에 남아 있지 않지만 설득
    력을 얻는다. 
    이는 불교의 전래 과정과도 일치한다. 
    인도나 중국에서 차는 불교와 깊은 관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류 교수의 설명대로“중국이 처음 불교를 수용할 때 무(巫)와 도(道)의 내용들을 더하여 서로 거슬리지 않도록 한데 반해 우리는 
    토속신앙들이 불교와 어우러져 무불습합(巫佛習合)의 상태가 되었다”며“이같은 이념적 혼합주의는 다례(茶禮)에도 적용되어 불교
    의식에 헌다(獻茶)하던 것이 조상제의에도 헌다하게 된 것”이라는 주장과 상통한다.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이나 상인들 특히 많은 유학승들이 몇 년씩 중국의 차생활을 접하고 돌아왔기 때문에 당대의 다풍이나 격식을 
    그대로 옮겨온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적인 음다(飮茶)풍속이 중국문화에 의해 자연스럽게 변화되고 새로운 다속(茶俗)이 자리잡게 됐다. 
    백장회해의 <칙수백장청규>에도 사원의 의식대례의 종류만 70여개나 되고 그 중 상당부분은 일상적인 것이어서 사찰의 모든 의식
    에는 차가 필수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시(茶時), 다고(茶鼓),다당(茶堂)에 관한 기록도 상세하게 실려 있어 불교의식이 있는 곳이면 반드시 차가 등장했다.
    
    불교신문 Vol 2437         하정은 기자 tomato77@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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