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우리 茶 이야기

2 한국차의 기원

浮萍草 2013. 4. 9. 07:00
    국인은 언제부터 차를 마셨을까. 
    한국차의 기원설에는 백산차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는 백두산(장백산)의 백산차가 자생차로 언급되고 있다. 
    고조선 시대부터 선조들이 제사에 올리며 뜨거운 물에 녹차처럼 우려 마셨다고 한다. 
    청의 건륭황제 때에는 이 차를 만들어 어용차로 사용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백산차의 원형이 백두산 일대에 자생하는 철쭉과의 어린잎을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차나무의 어린잎으로 만들어진 ‘차’를 
    칭하는지 애매하다. 
    차계에서는 백산차와 같은 대용차를 마시는 것은 차를 마실 전조는 되어도 자체를‘음다(飮茶)’의 시작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그렇다면 대용차가 아닌 차나무에서 차를 채취하여 만든 차를 음다한 시기는 언제부터일까.
    먼저 기록상 차가 처음 수입되었다는 신라의 반신(叛臣) 대렴(大廉) 때보다는 훨씬 이른 시기부터 차를 마셨다는 견해다. 
    또 다른 견해는 차가 없었는데, 828년 대렴이 중국으로부터 차씨를 가져다 심은 것이 처음이라고 하는 주장이다. 
    전자는 자생설, 후자는 전래설로 설명할 수 있다.
    
    ㆍ자생설과 전래설 있으나 
    중국전래설에 무게 실려
    자생설은 엄격히 말하면 중국보다 빠르거나 같은 시기가 아닌 이상 자생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차나무는 다른 식물 종과 마찬가지로 태풍의 영향이나 바다의 조류,지형변화 등으로 중국 동해안에서 우리나라 서남해안으로 유입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의 토양분포는 차나무 생장에 좋은 고생대 화강암 지대이다. 우리나라 안면도의 모감주나무 군락은 중국 내륙에서 자라던 모감주 나무의 종자가 해류를 타고 흘러 전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감주 나무 종자의 유입설은 차나무의 종자 역시 그 표피가 단단하므로 오랜 옛날 해류를 타고 자연스럽게 서해안으로 흘러들어와 우리나라에 자생적으로 분포할 수 있었음을 식물학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좋은 예가 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자생 차나무 북방한계선은 전북 익산의 봉화산 임해사터가 자리하는 북위 36도로 보고 있지만 중국은 북위 37도인 산둥반도,일본은 북위 42도인 아오모리현까지 차나무가 재배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자생 차나무 분포 북방한계선이 더 높아질 여지가 있다. 우리나라 차가 중국에서 전래되었다는 견해는 정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우리 문화의 생성과 발전상에서 외부와의 주된 교류가 중국이고 차의 역사도 기록에 의하면 중국이 훨씬 빠르기 때문에 전래설은 설득력을 갖고 있다. 아울러 현재 전하는 다서(茶書)의 대부분이 중국의 것이고 우리차의 상당부분은 중국 다서에서 그 이론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초의의 ‘다신전(茶神傳)’이 장원의 ‘다록(茶錄)’을 일부분 발췌한 사실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가 행하는 차의 채취에서 전다(煎茶)까지의 전 과정이 중국의 다예(茶藝)와 맥이 통하는 것을 보면 우리차의 뿌리가 중국에 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에 차가 도입되는 유형이 자생이든 전래이든 잘라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도 중국과 교류가 많았던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들이 차를 약용이나 음용으로 쓰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다. 그리고 점차 보편화하여 확산되었을 것이다. 특히 4세기 불교가 전래되면서 수많은 사찰이 생기고 불사가 행해지면서 불전에 헌다하는 의식을 봉행했을 것이다. 이에 따라 4세기경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차를 음미하기 시작한 시기였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불교신문 2435 Vol         하정은 기자 tomato77@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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