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7 봉인사

浮萍草 2013. 6. 5. 07:00
    서출의 ‘恨’, 비주류의 ‘限’
    영화 ‘광해’ 한편으로 300년 만에 재평가 고독한 말년…마지막 기댈 곳은 ‘엄마 곁’
    근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장 존경하는 왕’을 설문조사 한 결과 세종대왕을 제치고 광해군이 1위를 차지했다. 영화 ‘광해’의 위력을 절감케 하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광해군의 오명을 벗기기 위해 역사학자들이 수십 년간 애를 써도 이루지 못한 일을 영화 한 편이 단방에 끝낸 것이다. 광해군은 비록 폐주가 되었지만 결코 무능하지는 않았던 왕이다. 아니 조선시대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능했던 왕 중의 한 명이었다. 선조가 압록강을 바라보며 명(明)으로 넘어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당시 전국의 유생들을 설득해 의병을 모집하고 국난을 타개했던 주역이 바로 광해군이었다. 임금이 된 이후에는 후금(이후 淸)과 명 사이의 줄타기 외교에 성공해 후금과의 전쟁을 막은 이도 광해군이었다. 대동법을 최초로 실시해 백성들의 부담을 대폭 감소시킨 것도 광해군이었다. 또한 행행(行幸)을 가서는 백성들과 함께 어울리며 가면극이나 외줄타기를 구경하던 ‘민초들의 친구’이기도 했다. 영화‘광해’에서 가짜 이병헌의 정책과 진짜 이병헌의 모습을 합치면 진짜 광해군의 모습이 만들어진다. 그토록 탁월했던 군주 광해군에게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바로 후궁의 아들이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그냥 후궁의 아들이 아니라 왕비가 낳은 동생까지 둔 서자였다는 점이 광해군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었다. 선조 또한 방계 출신이었지만 선조에게는 왕위를 다투어야 할 경쟁자가 없었던 반면 광해군에게는 영창대군이 있었다. 영창대군이 살아있는 한 광해군은 가짜 임금일 수밖에 없었다. 영창대군을 죽인 후에도 광해군은 항상 반란세력을 찾아내 이들을 처단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친형 임해군도, 배다른 동생의 아들 능창군(인조의 동생)도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 후궁의 배에서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숙명이었다. 광해군은 즉위 직후 생모 공빈김씨를 왕비로 추존하고 공빈의 위패를 종묘에 배향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추존은 추존일 뿐, 배다른 동생을 죽이고 새어머니를 유폐시켰다는 꼬리표는 항상 광해군을 따라다녔다. 게다가 외척세력이 없어서 정보력이 약했던 점도 광해군의 커다란 약점이었다. 결국 광해군은 ‘폐모살제(廢母殺弟)’라는 죄명을 뒤집어쓴 채 왕위에서 쫓겨났다. 현재 광해군의 묘는 어머니 공빈김씨, 친형 임해군의 묘와 함께 남양주 봉인사 인근에 위치해 있다. 어떤 경로를 통해 강화도에서 죽은 광해군이 공빈묘 인근에 묻혔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광해군이 죽기 직전 어미의 곁에 묻어 달라 청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할 따름이다. 봉인사는 광해군이 직접 왕세자의 원당으로 지정한 사찰이다. 봉인사 부도암 사리탑에 봉안돼있던 사리함에는 ‘왕세자가 오래 살며 복이 끝이 없기를 성군의 자손이 창손하기를 빈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그 왕세자는 강화도 유배 도중 땅굴을 파고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혔고, 결국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결을 했다. 왕세자가 죽자 폐세자비 또한 뒤따라 자결을 했다. 자식들의 죽음을 목도한 부인 유씨는 아들의 방에 들어가 목을 매고 말았다. 유씨 부인은 살아생전 부처님께 “다음 생에는 결코 왕실여인으로 태어나지 않게 해달라고”고 빌었다고 한다. 광해군은 이들의 죽음 이후에도 10년을 더 살았다. 세 살 때 엄마를 여의고 아비의 온갖 구박을 받으며 천신만고 끝에 왕위에 올랐지만 재위 14년만에 왕위에서 쫓겨난 그의 말년은 너무도 고독하고 쓸쓸했다. 그리고 이후 300년간, 역사는 그의 이름을 폭군의 대명사로 기억해왔다.
    불교신문 Vol 2899         탁효정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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