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4 토당사

浮萍草 2013. 5. 27. 07:00
    조선판 마녀사냥, 왕실 여인의 스캔들
    록에는 왕실 여인들을 둘러싼 갖가지 스캔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자주 등장하는 사건은 승려와 왕실 며느리 간의 스캔들이다.
    스토리는 대개 이렇다. 
    왕의 사촌 제수가 절에 자주 들락거리는데 이는 필시 그 절의 주지와 내통하기 때문이라던가,왕의 며느리가 어느 절에 크게 불사를 
    했는데 이는 분명 그 절 승려와 연애 중이기 때문이라는 것 따위이다. 
    한마디로 절에만 갔다 하면 도매금으로 싸잡아 바람난 여인네 취급을 한 것이다.
    <경국대전>에‘부녀자로서 절에 올라가는 자는 장 100대에 처한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었지만 경국대전이 반포된 이후에도 여인의 
    사찰출입은 이어졌다. 
    그런데 이 법을 쉽게 어기는 여인들에게는 대부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왕실과 친인척 관계라던가, 남편이나 친정 부모의 권력이 대단한 여인네들이 주로 그러했는데,이들은 대전에 뭐라 적혀있든 아랑곳
    하지 않고 사찰을 들락거리며 불사를 벌였다.
    조선전기 왕실여인들은 국가 이데올로기가 숭유억불로 바뀌든 말든,친정에서 배운 그대로, 시어머니가 하던 그대로,자신들의 불교
    신앙을 이어나갔다. 
    석가탄신일이 되면 절에 올라가 기도를 올렸고,집안에 큰 일이 생겨도 절에 올라갔으며,남편이 먼저 죽으면 아예 절을 새로 지어 
    명복을 빌었다.
    
    ㆍ절에만 올라가면 바람난 여인네 취급
    사찰 왕래 막으려 온갖 추문 지어내
    조선초의 여자들은 남편 말을 고분고분 듣는 순종적인 아내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예속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중기 이후 딸의 재산상속권이 박탈되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아들에게만 재산이 상속되면서 여자들의 경제권은 크게 약화되었고 여자들의 발언권 또한 작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사림의 성장과 함께 유교문화가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기 시작하면서 칠거지악이나 삼종지도 같은 ‘여성 통제’ 시스템도 본격적 으로 가동되었다. 하지만 이는 16~17세기 이후의 일이었고,여전히 고려적 라이프스타일이 통용되던 조선전기까지는 여자들의 발언권이 매우 컸다. 특히 친정이나 시댁의 후광이 든든한 여자들은 국법에 아랑곳없이 자유롭게 사찰을 오갔다. 사실 일반 민간의 여성이나 사대부 집안 여성의 경우 의금부에 하옥시켜 장 100대를 때린다고 하면 다시는 절에 가지 않겠다고 진저리를 치겠지만,왕실 여인들은 사정이 달랐다. 어떤 간 큰 위인이 있어 감히 왕의 며느리 옷을 벗겨 놓고 곤장을 칠 수 있겠는가. 이 기세등등한 여자들에게 족쇄를 채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승려와 스캔들이 났다고 뒤집어씌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치사한 것이 스캔들의 주인공 가운데 남편 있는 여자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그 대상은 주로 남편이 죽고 난 후에 불사를 벌이는 청상과부들이었다. 1451년(문종 1) 수양대군 부인(후일 정희왕후)과 광평대군 부인이 사찰에 간 것이 조정에서 논란이 되었다. 조정대신들은 “수양대군 부인은 남편과 함께 용문사에 갔다가 절 아래 농가에서 잤는데 광평대군 부인은 절에서 잤다”며 수양대군 부인은 제켜놓고 오로지 광평대군 부인만 대놓고 욕을 했다. 그러나 멀리 양평 용문사까지 가서 대대적인 불사를 벌인 수양대군이나, 절에 갔다가 내려와서 잔 수양대군 부인이나,집 근처에 있는 토당사를 찾아다닌 광평대군 부인이나, 사실 ‘오십보백보’ 아닌가. 조정대신들은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양대군의 부인은 차마 못 건드리겠고,청상이 된 광평대군 부인만을 문제 삼았던 것이다. 조정대신들은 광평대군 부인과 그 절 주지의 관계가 의심스럽다는 말까지 살포시 얹었고,승지는 이것을 그대로 받아 실록에 기록 했다. 관료들의 공격이 거듭될수록 점차 여성들은 사찰출입을 조심하기 시작했다. 조선중기 이후 왕실여인들은 자신이 직접 사찰에 가는 대신 상궁이나 나인 등 하인들을 보내거나 불사에만 동참하는 등 출입을 자제해 나갔다.
    탁효정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불교신문 Vol 2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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