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8 정업원 (下)

浮萍草 2013. 6. 8. 07:00
    이름값 못한 개똥이, 광해 망치다
    
    쿠데타 징조 파악 못해 광해군 몰락 초래
    생불 추앙받던 예순 비구니 설득에 넘어가
    
    “상궁 김개똥(金介屎)을 베었다. 
    개똥이 정업원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다가 사변이 일어난 것을 듣고 민가에 숨어 있었는데 군인이 찾아내어 베었다.”
    (광해군일기, 15년 3월13일)
    실록에 나오는 이 짤막한 기사는 조선불교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들을 담고 있다. 
    이 기사를 통해 임진왜란 이후에도 정업원이 존재하고 있었고 광해군대 정업원이 창덕궁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권력의 핵심이었던 개똥이가 매우 독실한 불교신자였음을 알려준다.
    원래 광해군의 세자시절 동궁방의 나인이었던 개똥이는 이후 선조의 지밀나인이 되었다. 
    개똥이는 선조를 지척에서 모시면서 온갖 정보들을 입수했고 광해군이 왕으로 오르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개똥이는 광해군의 연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설에는 연인이 아니라 정치적 수족일 뿐이었다고도 한다. 
    어쨌든 광해군에게 있어서 개똥이는 일종의 장자방이었다. 
    역대 장자방들의 공통점은 날렵하고, 생각이 민첩하며 머리가 매우 좋고, 상황판단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이다. 
    또한 이들은 주군 대신 온갖 더럽고 험한 일들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의 낮은 도덕성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이성계에게는 정도전이라는 천재가, 세조에게는 한명회라는 지략가가 문정왕후에게는 정난정이라는 조력자가 있었다. 
    권력에 대한 본능이 누구보다 강했던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주군은 최고의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개똥이라는 여인은 장자방이라고 하기에는 좀 미흡한 구석이 많았다. 
    인목대비의 <계축일기>에는 개똥이를 통해 온갖 계략이 다 나왔고 개똥이 때문에 자신이 서궁에 유폐되고 영창대군이 죽게 된 것
    으로 묘사돼 있다. 
    이는 개똥이가 광해군 대신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했음을 짐작케 한다. 
    하지만 반란세력을 찾아내는 후각에 있어서 개똥이는 자격미달이었다. 
    특히 반대파에 대한 응징이나 보복 부분에 있어서 그랬다.
    결과적으로 볼 때, 광해군이 왕위에서 쫓겨난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개똥이에게 있었다. 
    광해군은 이미 인조반정을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다. 
    그래서 쿠데타 세력을 잡아 족치려는 찰나,개똥이가 여기에 개입했다. 
    예순이라는 비구니의 말을 전해들은 개똥이는 결코 그런 음모가 있지 않다고 주장했고 광해군은 반정세력의 국청을 잠시 뒤로 
    미루었다.
    예순 비구니는 평산부사 이귀의 딸이었다. 
    그의 아비 이귀와 시동생 김자첨 등은 인조반정의 핵심 인물이었다. 
    반정이 탄로날 지경이 되자 이들은 예순으로 하여금 개똥이를 설득하도록 요청했다. 
    예순은 광해군 부인 유씨로부터 생불로 추앙되고 개똥이와는 ‘모녀의 의’를 맺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다.
    예순은 개똥이에게 편지를 보내 아비의 억울함을 호소했고 이귀로 하여금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는 심경을 노래가사로 지어 올려 
    보내도록 했다. 
    이에 개똥이는 광해군에게 그 글귀를 읽어 보이면서“이렇게 충성심이 가득한 신하를 형벌로 다스리면 장차 어찌 하실 것입니까” 
    하니 광해군이 이들을 풀어주도록 하였다. 
    하지만 바로 그날 밤 반정은 현실화됐다. 
    결국 그의 주군은 반정군 앞에 머리를 조아렸고, 개똥이는 처형당했다.
    그동안 개똥이는 장녹수,장희빈과 더불어 조선 3대 악녀로 꼽혀왔다. 
    장녹수가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어리석은 궁녀의 대표주자로 꼽혔다면,개똥이는 도덕성이 결여된 궁녀의 표본으로 지칭돼왔다. 
    그러나 개똥이의 진짜 문제점은 주군을 위협하는 반란의 낌새를 찾아내지 못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이름값을 못한 것이 개똥이의 가장 큰 결함이었던 것이다.
    
    불교신문 Vol 2901         탁효정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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