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왕실원당 이야기

29 안성 칠장사

浮萍草 2013. 6. 10. 07:00
    사경<寫經> 수행도 못 말린 ‘여인의 한<恨>’
    인목대비, 고단한 세월 경전 쓰며 견뎌 반정 후 第一聲 “광해군 살점 뜯겠다” 1623년 인조반정이 성공한 직후 인조를 만난 인목대비의 첫마디는 “광해군 부자의 살점을 뜯겠다”였다. 아들을 잃은 여인의 시퍼런 한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더 이상 인목대비는 경운궁에 갇혀 눈물로 세월을 보내던 가련한 여인이 아니었다. 10여년의 유폐 기간은 유약하기 짝이 없던 한 여인을 노회한 정치가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1608년 선조가 죽을 당시 인목대비의 딸 정명공주는 여섯 살,아들 영창대군은 겨우 세 살이었다. 하지만 어린 자식들을 지키기에 스물다섯 살의 왕비는 아무런 힘도, 정국을 주도할 만한 파트너도 없었다. 광해군은 재위한 지 5년이 되던 해에 단순 살인강도사건을 영창대군과 김제남이 연루된 역모사건으로 둔갑시켰다. 대비의 친정아버지 김제남은 역모죄로 사약을 받았고, 친정 형제들도 모조리 사사되었다. 여덟 살 된 영창대군은 강화도로 끌려가 감금되었는데 이듬해 유배지에서 불에 타 죽은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인목대비는 후궁으로 강등되어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에 격리되었고,왕비로서의 모든 권한은 박탈되었다. 경운궁에는 음식조차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고 겨울에는 땔감이 없을 지경이었다. 10년간 경운궁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던 인목대비는 그 죽음 같은 세월을 서예로 소일했다. 명필가였던 선조의 영향을 받아 인목대비 또한 글씨에 조예가 깊었는데 그가 주로 쓴 글씨는 대부분 불경이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는 인목대비가 쓴 <불수멸죄동자다리니경> 추기가 남아있으며 보물로 지정된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백지묵서금광명최승왕경> 등도 대비의 작품이다. 인조반정과 함께 인목대비의 기나긴 유폐생활은 끝이 났다. 쿠데타가 발발한 그날,인목대비는 눈물과 한숨으로 가득한 <계축일기>의 주인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역사서에 재등장한다. 인조는 반정 직후 경운궁으로 사람을 보내 인목대비를 창덕궁으로 모셔오도록 했다. 광해군을 폐모살제(廢母殺弟)의 명분으로 내쫓은 만큼 인목대비의 인가는 인조에게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인목대비는 끝끝내 창덕궁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새벽에 거사가 이루어진 후 저녁까지 창덕궁 대전에서 인목대비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인조는 결국 해질 무렵 직접 경운궁으로 찾아 갔다. 인목대비는 왜 경운궁을 나서지 않았던 것일까. 분명 광해군이 폐위된 것은 기뻐 마땅한 일이었지만 새로운 왕의 임명은 선조의 정비인 자신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무언으로 역설한 것이었다. 이날의 상황을 실록은 “대비가 왕을 폐하여 광해군으로 삼고, 금상을 책명하여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인목대비는 왕이 교체되는 비상사태에 대비로서의 정치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함으로써 새로운 국왕의 정통성을 부여하는 일련의 과정을 주도하였다. 결국 인조는 창덕궁 대신 경운궁에서 즉위식을 거행했고,인목대비는 인조에게 어보를 하사하였다. 인조의 경운궁 즉위는 인목대비의 존재를 조선의 최고 어른으로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조는 재위 내내 인목대비를 왕실의 최고 어른으로 대접했고, 인목대비의 발언권은 조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인목대비는 죽은 아들의 명복을 빌며 남은 세월을 보냈다. 그 중에서도 안성 칠장사는 인목대비가 영창대군과 김제남을 위해 설치한 원당이다. 칠장사에는 인목대비가 남긴 칠언시가 전해진다. “늙은 소가 힘을 쓴지 이미 여러 해 목이 찢기고 가죽 뚫어져 그저 달디 단 잠뿐이로구나 쟁기질과 써레질이 이미 끝나고 봄비 넉넉한데 주인은 어찌 고달프게 또 채찍질인가”
    ‘유일한 낙은 달디 단 잠뿐’이라는 구절에서 인목대비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듯하다.
    불교신문 Vol 2903         탁효정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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