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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월안택

浮萍草 2013. 3. 14. 07:00
    왕성하고 간절한 민중 염원
    
    ‘정월안택 시월고사’라는 말이 있다. 
    안택(安宅)이란 말 그대로 집안의 평안을 위해 행하는 의식으로, 정월의 안택굿은 집을 지키는 여러 신들에게 한 해의 안녕을 비는 
    새해맞이 종교의례인 셈이다. 
    <동국세시기>에는 “보름 전날부터 장님을 불러 <안택경>을 읽으며 밤을 새운다. 
    액 막고 복 빌기를 이 달이 다 가도록 계속한다”고 기록하였다.
    이처럼 경문을 낭송하는 방식으로도 널리 행하여 안택굿을 앉은굿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에 특히 독경의식이 성행했는데 사제자는 주로 숙련된 장님이 맡았다. 
    나라에서도 명통시(明通寺)라는 관청을 두고 학식을 갖춘 맹인들을 양성하여 국가기우제에서 활약케 하였다. 
    그러나 반드시 장님이 아니더라도 경을 익혀 독경무로 활동할 수 있었고 지역에 따라 경장이.경객(經客).판수.법사(法師).복사
    (卜師).신객(神客) 등으로 불렸다.
    안택굿.앉은굿은 내륙의 중심에 위치해 바다와 인접하지 않은 충북지역에서 특히 발달했다. 
    앉은굿의 특성은 청중이 참여하는 굿 특유의 떠들썩한 문화가 단절되어 있다는 점이다. 
    수요자의 점잖은 기질로 인해 놀이적 성격이 애초에 배제되었고 연행자 역시 이에 걸맞은 폐쇄적이면서 엄숙한 굿을 선보였을 것
    이기 때문이다. 
    굿에서 읊조리는 무가(巫歌) 역시 한문 투이기에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앉은굿을 양반굿이라고도 부른다.
    
    ㆍ3ㆍ4조 4ㆍ4조 운율 우리말 축원문 읊어
    삼보의 위신력에 기대어 한해 편안 기원
    굿을 할 때면 방과 부엌 등 집안 곳곳에 시루떡과 제물을 차려 놓고 갓을 쓰고 옷을 갖춰 입은 경객이 안택경을 읽게 된다. 오른쪽에 북, 왼쪽에 징을 놓고 두드리면서 독경을 하는데 부처님의 가피를 바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비구들 1250명과 함께 계셨다”는 시작부분이<금강경>의 첫 구절과 같은가하면,불법 으로 각종 신의 장난을 다스리고 일체의 삿된 기운을 모두 소멸시켜줄 것을 빌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안택축원이라 하여 스님을 모셔 독경과 염불을 청하기도 한다. 무속인들이 안택경을〈불설 안택경〉이라 부르기도 하듯이,부처님의 위신력과 그 가르침으로 기도하는 것이라 믿고 있기에 불법승 삼보가 일치된다면 그 힘은 더욱 커지지 않겠는가. 안택굿을 따로 하기보다는 정초에 집집마다 방문해 지신(地神)에게 고사를 올리며 지신밟기를 해주는 풍물패나,탁발승.걸립승의 축원에 의지하는 경우도 많다. 이 때 풍물패가 방문하면 술과 안주 한 상을 차려내야 하지만,스님들의 탁발에는 떡도 필요 없이 간단한 고사반(告祀盤)이면 족했다. 그릇에 쌀을 소복하게 담아 실타래를 감은 숟가락을 꽂아 놓은 뒤 염불을 하는 것이다. 정초염불은 축원덕담으로 가족의 안녕을 비는 것이기에 실타래는 곧 수명장수를 상징한다. 집집을 방문하는 축원염불에서 한문염불을 외면 어울리지 않고 알아들을 수도 없어 이때는 3.4조나 4.4의 운율로 된 우리말 축원문 을 읊게 된다. 대표적인 것으로 회심곡 덕담편을 즐겨 읊었는데,이를테면 “이댁가중 대통할제 대명당에 집을 짓고 수명당에 우물 파고 아들나면 효자 낳고 딸을 나면 열녀로다”와 같은 내용이다. 정월이 다가도록 삼보의 위신력에 기대어 한해의 편안을 기원하는 민중의 염원은 늘 왕성하고 간절한 것이다.
    불교신문 Vol 2891         구미래 불교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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