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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법연스님의 연하 스승

浮萍草 2013. 4. 9. 07:00
    방앗간 찾아 화두처럼 일러준 스승 말 끝에 ‘방하착’ 깨달아
    한 살 어린 스승 찾아간 법연 방앗간 일 시켜도 지극정성 자상한 가르침에 화두 타파 훗날 개당해서도 스승 찬탄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나라 때 일이다. 35세의 늦은 나이에 출가한 법연(法演)이 성도(成都)의 어느 강당에서 ‘유식백법론(唯識百法論)’ 강의를 듣고 있었다. “보살이 견도(見道)에 들어가면 그 순간 지혜와 이치, 경계와 정신이 그윽이 계합해 증득하는 주체와 증득하는 대상을 분별할 수 없게 됩니다.” 입문이 늦었던 만큼 법연의 학구열은 치열했다. “증득하는 주체와 대상을 분별할 수 없다면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증득’이라 한단 말입니까?” 말마디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질문에도 나이 지긋한 강백은 느긋했다. “옛날 어느 외도가 자네처럼 따져 물었던 기록이 논서에도 실려 있지. 이 질문에 대해 삼장법사 현장께서는 ‘사람이 물을 마셔보면 따뜻한지 차가운지 저절로 알게 되는 것과 같다’고 대답하셨네.” 강백의 친절한 눈빛과 다정한 어투에도 법연은 의심의 눈초리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물이 차가운지 따뜻한지는 마셔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불법의 이치를 저절로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법연의 눈빛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강백이 책장을 덮고 조용히 말했다. “자네는 참선을 하는 게 좋겠네. 이 이치를 밝히고 싶다면 저 남쪽지방에서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는 분들을 찾아뵙게나.” 법연은 곧바로 산마루를 넘어 남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다년간 제방을 편력하며 선정의 희열에 젖는 사이 예전에 품었던 의문은 봄날 눈 녹듯 사라졌다. 그러나 얼음 풀리면 잡초가 돋는 법이다. 기쁨에 젖어 조사들의 법문을 열람하던 법연의 마음속에 새로운 의문들이 싹텄다. 법연은 곧바로 원조 본(圓照本)선사를 찾아뵙고 물었다. “고금의 기연들을 살펴보니 웬만한 것들은 다 알겠습니다. ‘내가 어제 마을의 재에 참석하러 가던 길에 한바탕 돌풍과 폭우를 만났는데 옛 사당에 들어가 지나갈 때까지 피할 수 있었다.’ 하신 흥화 존장(興化存)선사의 말씀만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도와주십시오.” 본선사는 정중히 거절하였다. “흥화 존장선사는 임제문하의 자손이네. 이 화두는 그 집안사람이라야 알 수 있지. 부산 법원(浮山法遠)선사를 찾아뵙게나.” 법연은 곧바로 법원선사를 찾아가 똑같이 질문하고 도움을 청하였다. 그러자 법원선사가 코웃음을 쳤다. “내 너 같은 놈을 두고 쓰는 비유가 있다. 너야 말로 한 서너 집 사는 산골마을의 나무꾼 같은 놈이다. 나뭇단을 한 짐 짊어졌으면 저 사거리로 가서 오가는 사람들 붙들고 흥정해야지, 뭣 하러 선비들이 글 읽는 서당에 찾아와 값을 따지냐.” 조사들의 마음자리를 짐작했다 여긴 자신감이 한순간 무너졌다. 고개를 숙인 법연은 원선사를 하늘처럼 받들며 그 곁에서 조사의 뜻을 처음부터 다시 참구하였다. 입을 닫고, 눈빛을 아래로 거두고, 부드러운 몸짓으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그런 법연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던 법원선사가 말을 꺼냈다. “자네를 지도하기에 난 이미 늙었네. 내 곁에서 허송세월할까 염려스럽구나. 이제 백운산에 머무는 수단(守端)을 찾아가 의지하게나. 그 자가 비록 후배이고, 만나보지도 못했지만 그가 쓴 게송만 보아도 보통사람이 아니라네. 그에게 참문하면 반드시 자네의 대사를 끝낼 수 있을 것이야.” 법연은 조용히 절하고 물러나 곧바로 백운산으로 찾아갔다. 법랍이 앞선다지만 수단선사는 세속 나이로 자신보다 한 살 아래였다. 허나 하늘같은 스승이 그리 지시했을 때에는 분명 까닭이 있으리라 여기고 연하의 수단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공손히 질문하였다. “마니주(摩尼珠)가 무엇인지 물은 사조(師祖)스님에게 남전 스님은 왜 ‘가라, 너는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하셨습니까?” 그러자 수단선사가 혀를 차며 질책하였다. “제가 설명한다고 알아듣겠습니까!” 법연은 이 한 마디에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게송을 지어 바쳤다. 산비탈 한조각 묵정밭을 어찌 해야 하오리까 합장하고서 입이 닿도록 조사께 물었더니 몇 차례나 팔아치웠다 다시 사들인 까닭은 솔밭 대밭이 끌어오는 맑은 바람이 좋아서라나. 게송을 읽은 수단선사는 빙그레 웃으며 스님에게 방앗간 일을 맡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쑥 방앗간으로 찾아왔다. “일이 고되지는 않습니까?” “노새도 건강하고 연자도 잘 구릅니다.” 수단선사가 싱긋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성재헌
    “오늘 여산에서 선객 몇 사람이 찾아왔었답니다. 그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다들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설명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근거가 분명하고, 옛 선사들의 기연도 훤히 꿰뚫고 묻는 족족 척척 대답 하더군요. 하지만 아직은 아니지요.” 법연 스님은 다시 큰 의문에 휩싸였다. “이미 깨달아 이치도 훤하고 설명도 잘하는데 왜 도리어 미진하다 하는 걸까?” 이렇게 며칠을 참구하다가 화들짝 깨닫고 이제껏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하던 것들을 한순간에 놓아버렸다. 그러자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난 뒤 바람을 마주한 것처럼 상쾌했다. 곧장 수단선사에게 달려가 사실을 아뢰자 수단 스님은 기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리고 자기 대신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도록 명하였다. 훗날 개당하는 자리에서 법연 스님은 부처님 전에 향을 올리며 대중에게 선언하였다. “이 한 자루 향을 스승이신 백운 수단선사께 올립니다.”
    “스승을 존경하고 법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이 정도니 극문 스님은 뒷날 반드시 큰 그릇을 이루리라.”
    Beopbo Vol 1183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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