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스승과 제자

5. 극문 스님의 기도

浮萍草 2013. 4. 2. 07:00
    손가락 심지삼아 온몸 태우는 심정으로 스승 쾌유 기도
    불보살에 스승 회복 빌던 극문 스승 차도없자 손가락 불붙여 약왕보살전에 빌고 또 빌어 소식들은 스승 차츰 기력회복
    나라 때 일이다. 귀종사(歸宗寺) 당우(堂宇)가 화재로 소실되자 관에서는 주지인 황룡 혜남 (黃龍慧南,1002~ 1069) 스님에게 책임을 물어 옥사에 감금하였다. 명망 있던 승가의 대덕들과 재가자들의 탄원으로 방면되긴 하였지만 스님은 당신의 죄를 스스로 물으셨다. 혜남 스님은 주지 직을 사임하고는 문하의 대중을 모두 흩어버리고 홀로 황벽산(黃檗山) 적취암(積翠庵)에 스스로를 유폐시켰다. 그러나 어미젖이 간절한 어린 송아지들의 발길은 쉬이 어미를 놓아주지 않았다. 지팡이를 휘두르며 뿌리쳤지만 극문(克文)을 비롯한 몇몇 제자는 끝내 스승 의 발자국을 놓치지 않고 적취암 문턱을 넘었다. 대중은 무너진 벽에 발우를 걸고 낡은 서까래 아래에 방석을 폈다. 새들의 날갯짓조차 드문 적취암에서는 끼니조차 해결이 쉽지 않았다. 혜남 스님은 산나물과 풀뿌리로 연명하고 나뭇가지와 흙덩어리로 추위와 더위를 면하면서도 일상이 평온하고 한 치 흐트러짐이 없었다. 제자들은 그런 스승의 기개를 흠모하면서도 한편 근심과 슬픔이 속으로 깊어만 갔다. 나날이 생기를 잃어가는 제자들의 낯빛에 혜남 스님이 추궁하셨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이냐?” 인천의 사표로 존중받으며 만인의 공양도 넘친다할 수 없는 지혜와 덕을 갖춘 스승이었다. 그런 분이 명성과 위엄을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혹독한 고난처에 스스로 유폐된 처지가 안타까워 제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혜남 스님은 제자들의 눈물에 위로하기는커녕 크게 호통을 치셨다. “서산에 해 지면 동산에 달이 뜨고,서산에 달 지면 동산에 해가 뜨면서 하루가 이루어지는 법이다. 추위가 가면 더위가 찾아오고 더위가 가면 추위가 찾아오면서 또 한 해가 이루어지는 법이다. 하루가 원래 그렇게 변화하고, 한해가 원래 그렇게 변화한다는 것이니, 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자네들 모두가 잘 알고 있고 모두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온 것들이다. 끝도 없고 한계도 없이 펼쳐지는 이것이 바로 비로자나부처님의 참 몸이고,매일매일 천차만별로 인연 따라 자유로운 이것이 바로 비로자나부처님의 참 모습인데,자네들은 무엇 때문에 이것을 보지 못하는가? 아마도 마음에 헤아림이 남아 있고 견해가 인과에 머물러서 성인이라는 생각을 넘지 못하고 모든 자취를 초월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당장 한 생각이 바로 인연 따라 일어난 것이고 인연 따라 일어난 것은 일어나도 일어난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리라. 이를 깨닫는다면 해와 달이 온 누리를 비추듯 하고, 하늘과 땅이 만물을 덮어주고 실어주듯 하리라. 하지만 이를 깨닫지 못한다면 지옥의 귀신이 발칵 성을 내어 그대들의 머리를 일격에 부숴놓으리라.” 혜남 스님의 기상은 매서운 눈보라에도 꺾이지 않는 잣나무처럼 푸르렀지만 노년에 접어든 스님의 육신은 혹독한 한서(寒暑)와 기갈(飢渴)을 견뎌내지 못했다. 결국 깊은 병이 들어 낮에도 이부자리를 걷지 못하게 되었다. 제자들이 백방으로 약을 구해 탕약을 올리고 밤낮으로 간호를 하며 정성을 다했지만 스님은 석 달이나 문밖출입조차 못하셨다. 사람의 힘으로는 스승의 병을 치유할 수 없다 여긴 극문(克文)은 불보살의 가피력에 한 가닥 희망을 품었다. “관세음보살님,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이가 있으면 당신은 어디든 달려가겠노라 맹세하셨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이가 있으면 당신은 어떤 액난에서든 구제하겠노라 맹세하셨습니다.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 제가 이제 당신의 명호를 부릅니다. 지금 저에게로 찾아와 스승님의 병고를 구제하소서.” 밤낮을 잊은 극문의 기도는 간절하였다. 허나 사흘을 넘기고 이레를 넘기고 또 보름을 넘기고도 스승의 병은 전혀 차도가 없었다. 자신의 정성이 부족한 탓이라 여긴 극문은 캄캄한 한밤중에 몰래 기름병을 들고 부처님 앞에 엎드렸다. 천 조각으로 손가락을 감싸고는 기름에 흠뻑 적시고 다시 천 조각으로 감싸기를 아홉 차례나 반복했다. 그리고 그 손가락에 불을 붙였다. 극문은 손가락을 심지 삼아 온 몸을 태우는 심정으로 기도하였다. “약왕보살이시여 당신은 온 몸을 태워 부처님께 공양하고는 일체 중생의 병고를 자유자재로 치료하는 신통을 얻었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정성이오나 살펴주소서 저희 스승님의 병을 치유해 주소서.” 피부와 살을 태우고 너덜거리는 뼈마디가 드러나고서야 그 불은 꺼졌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경련을 일으키는 손목을 두 무릎으로 붙들고 극문은 두 번째 손가락에 다시 천을 감았다. 그리고 기름을 적셔 불을 붙이려던 순간 살이 타는 냄새를 맡고 달려온 도반들이 그를 제지하였다. 한밤의 소동은 곧 스승의 귀에 전해졌다. 혜남 스님이 극문을 불렀다. 응급처치를 마친 극문이 도반들의 염려어린 시선에 감싸여 스승의 방문을 들어섰다. “이 미련한 놈아!” 수저조차 들 수 없어 누워서 미음을 받던 스님이었다. 그런 스님이 놀랍게도 벌떡 일어나 호랑이 같은 눈빛으로 쏘아보았고 노발대발하는 음성은 골짜기를 쩌렁쩌렁 울렸다. “살고 죽는 것은 원래 내 분수다. 너는 그토록 오래 불법을 참구하고도 이토록 무지하단 말인가.” 그 발아래 엎드려 온화한 낯빛으로 말씀드렸다. “불법이 무너져가는 이 시대에 총림을 바로 세울 분은 스님뿐입니다. 불교집안에 저는 없어도 상관없지만 스님께서는 없어서는 안 됩니다.” 극문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혜남 스님은 그날 이후로 차츰 기력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극문을 칭찬하였다. “스승을 존경하고 법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이 정도니 극문 스님은 뒷날 반드시 큰 그릇을 이루리라.”
    Beopbo Vol 1182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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