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서양문화 속 불교코드 읽기

‘수행은 누구나 하는 것’ 승가특수성 불인정

浮萍草 2013. 5. 12. 07:00
    서양으로 간 쑥갓이 ‘데이지’가 됐듯이
    미국의 불교는 ‘無승가 불교’가 되다 
    터 그레고리 선생님 부부는 버몬트의 산골마을에 시골집을 가지고 있다. 작년부터 마기가 마당 한 쪽에 텃밭을 만들어 약초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작은 텃밭이지만 마기는 이 일을 매우 좋아해서 격주 주말 마다 자동차로 네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를 달려가 씨를 뿌리고 밭을 매곤 했다. 작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노스햄턴으로 돌아왔을 때 만난 마기의 그을린 얼굴은 건강하고 아름다웠다. 버몬트의 흙과 태양이 내면의 중심을 확고하게 잡아준 것 같았다. 마기는 올봄부터 중국 약초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세 번씩 강의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니더니 어느 날 내가 준 구기자차와 쑥차의 약효에 대해서 배웠다면서 차 만드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리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시골집에 함께 가보자고 했다. 미국 북동부의 봄은 더디게 왔다. 삼월 중순에도 눈 폭풍이 몰아쳐 그 날 스미스 여대의 모든 수업이 취소되기까지 했다. 사월이 되자 거리에 쌓여 있던 눈이 녹기 시작했다. 마기에게 언제쯤 버몬트에 갈 수 있냐고 물었더니 거긴 아직도 눈이 한 길이나 쌓여 있다고 했다. 오월 중순, 마침내 버몬트의 눈이 녹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스미스 여대는 벌써 여름방학에 들어가 나는 기숙사에서 나와 선생님 집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그 주말, 우리는 버몬트로 떠났다. 철학과에서 불교를 가르치는 제이 가필드 교수의 부인인 브레인도 밭일을 좋아해 우리의 버몬트 행에 합류했다. 마기의 어머니까지 모두 다섯 사람이 소풍가듯 들뜬 기분으로 버몬트의 한적한 시골을 향했다. 차가 시골길로 접어들자 산들 사이로 굽어진 길이 나타났다. 우리나라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한 풍경이었다. 버몬트의 드넓은 대지에서 오랜만에 흙냄새 맡으며 우리는 열심히 일했다. 작은 텃밭이지만 잡초가 무성해서 일이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되었다. 그러던 중 밭 한 귀퉁이에서 쑥갓을 발견했다. 브레인이 잡초라며 뽑으려는 것을 한국에서 식용으로 사용한다며 말렸다. 잎을 먹어보니 향이 강해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영어사전을 찾아 확인해보니 crown daisy라고 하는데 마기가 식물도감을 뒤져서 미국에서 ‘데이지’라고 부르며 식용이 아니라고 확인해주었다. 그래도 꽃을 보기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 밭을 다 맨 뒤 모종을 옮겨 심었는데 그 중 쑥 모종이 있었다. 우리나라 산천에 지천으로 자라는 쑥을 모종으로 옮겨 심는 것이 우스워 마기에게 이야기했더니 놀라워했다. 강남의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모든 것은 환경과 토양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쑥갓이 미국에서 데이지가 되듯 불교도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뒤 미국 풍토에 맞게 변했다. 그 중 하나가 출가승단의 부재이다. 처음 미국 선 센터에 갔을 때 놀란 것 중 하나는 ‘승가Sangha’라는 말이 스님이 아닌 일반불자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는 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시아 출신이나 아시아로 가서 승려가 된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미국 불교지도자들은 출가하지 않고 가정생활을 유지하고 있으며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일부에는 게이 지도자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어떤 미국여성은 처음 만났을 때 숏커트 머리를 하고 있더니 다음 모임에는 삭발을 하고 나타났다. 한참 뒤에 만났을 때는 다시 머리를 기르고 있어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이렇게 자유분방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그들의 수행이 진지하지 못하다거나 계율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속단 해서는 안 된다. 대승불교나 소승불교의 계율과 다르지만 그들 나름의 계율이 있으며 한 번 계를 받으면 우리보다 더 철저하게 지킨다. 다만 그들에게 결여된 것은 세상을 버리고 결연히 출가사문의 길을 걷는다는, 아시아 스님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승려로서의 정체성이다. 거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는데, 무엇보다 미국의 현실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문화를 꼽을 수 있다. 프로테스탄트 정신으로 세워진 이 나라에서 성직자의 특권적 지위와 종교적 수행을 위해 일상적인 삶을 포기한다는 관념은 낯선 것이다. 따라서 일본과 티벳에서 대처승들이 왔을 때 미국적 종교 풍토 속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되었으며 미국불교가 초기에 비트작가들과 히피 공동체를 통해 퍼져나갔던 점 도 출가승단의 부재에 한 몫을 했다. 엄격한 수행보다 특별한 의식체험을 강조하고 공동체적인 삶을 꿈꾸었던 이들의 저항문화적 성격이 세속적 쾌락을 금기시하지 않는 미국불교의 특징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실 미국처럼 풍요롭고 자유분방한 나라에서 세속적 쾌락을 버리고 승가의 엄격한 규율을 지키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 70년대 일부 선 센터에서 발생한 섹스 스캔들과 요즘도 신문지상에 간간히 보이는 목사나 신부들의 성추행은 미국적 환경에서 성직자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이런 현실주의적 태도 때문에 불자가 아니면서 불교수행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또 누구나 수행할 수 있고 누구나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승려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불교에는 재가신도가 스님들에게 보시한다는 개념이 없다. 미국인들은 그들에게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무언가 구체적으로 제공될 때만 보시한다. 그들을 지도하는 스승에게는 아낌없이 기부를 하지만 신참 승려에게는 “아무 기여도 없는데 왜 우리가 그들에게 기부해야 하는가?” 라고 반문한다.

    따라서 생계유지를 위해 출가자들도 직업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만난 미국인 중 전적으로 수행만 하는 이는 매우 적다. 노스햄턴 시내의 작은 선 센터는 그 옆에 카이로프랙틱 시술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내가 방문한 워싱턴 D.C.근교의 티벳 사찰은 미국인 비구니스님이 십년 동안 정부기관에서 일해 번 돈으로 장만한 절이다. 그곳에서 함께 수행하는 미국인 비구스님도 컴퓨터 관련 업종에서 일하고 있는데 퇴근 후 짬을 내어 수행을 하고 있었다. 한번은 출근시간에 나를 시내까지 태워다주면서 투잡족의 고단함을 토로한 적이 있다. 이처럼 직업을 가지면서 수행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재가자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들은 재가자로 돌아가도 불교지도자로서의 지위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제 부양할 가족이 생겼으니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따라서 그들이 운영하는 선 센터의 프로그램 참가비가 비싸진다. 주말 안거나 특별 수행 프로그램은 매우 비싸 중산층 이상이 아니면 참가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불교가 서민계층까지 파고들지 못하며 사찰의 재정적 곤란도 해결되지 못해 결과적으로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 어렵다. 미국에 있으면 한국에서 스님이 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신도들의 시주가 얼마나 감사한지 마음 깊이 느끼게 된다. 그리고 출가승단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쑥갓이 데이지가 되듯 미국에서 불교는 아시아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지 않다. 이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이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할 지 깊이 고민해 볼 일이다.
    명법 스님(미국 스미스칼리지 박사후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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