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서양문화 속 불교코드 읽기

명상가 된 21세기 히피들

浮萍草 2013. 4. 14. 07:00
    비트, 禪, 신비주의에 열광하던
    그 많던 히피는 어디로 갔나 
    벤은 노스햄턴에서 작은 아키펑쳐 샵을 운영하고 있는 침술사이다. 그를 만난 것은 지난 봄 몬테규 선센터에서 피터 그레고리 선생님이 <유마경>을 강의할 때였다. 첫눈에도 사람 좋아 보이는 그는 하얀 구레나룻을 멋있게 기르고 있어 마치 인도의 요기 같았다. 강의가 시작되기 전,그는 나에게 다가와 인도에서 12년간 스승 밑에서 공부했노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최근 LG세탁기를 샀는데 성능이 정말 좋더라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그 후 우리는 매달 유마경 강의시간에 만났다. 그는 때로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하고 질문도 하면서 열심히 강의에 참여했다. 멀리 뉴욕과 뉴저지에서 오는 참가자들의 편의를 위해 강의는 일요일 오전 오후 연속으로 진행되었는데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잠깐 쉬는 시간에 그레고리 선생님이 70년대에 이곳 서부 매사추세츠 지역이 히피들의 낙원이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유학을 결정할 때 이 고장이나 스미스여대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아무 생각 없이 피터 그레고리 선생님만 보고 선택했는데, 이곳에 도착한 다음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뉴잉글랜드 지역에 위치한 노스햄턴은 평화롭고 안정된 환경과 사계절이 뚜렷한 날씨,강과 호수와 산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풍광 에 문화시설과 대학도서관이 잘 갖추어져 있어 조용히 공부하고 사색하며 지내기 좋은 아주 작은 도시이다. 근처에 명상센터와 불교관련 시설이 50여 곳이 넘게 있어 내 연구를 위해서도 안성맞춤이었다. 거리에 나서면 눈만 마주쳐도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네 오고 더러 스님임을 알아보고 합장하는 미국인도 만날 수 있다. 이 지역의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분위기 덕분에 인근에 캄보디아와 티베트 난민보호소 뿐 아니라 학점이 없는 실험적인 대학과, 서부의 샌프란시스코 다음으로 가장 큰 레즈비언 공동체가 있다. 해마다 게이·레즈비언 축제가 행해지며 올해부터는 성전환자 축제도 벌어졌다. 그래서 이 지역이 미국에서도 상당히 특별한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히피 동네였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제야 명상센터가 그렇게 많은 것도 길거리에서 빈티지 차림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걸인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도 모두 이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히피에 대해 궁금했던지라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 많던 히피가 다 어디로 갔나요?” 그레고리 선생님은 웃으면서 옆에 서 있던 루벤을 가리켰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비약적인 경제 번영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희생한 결과여서 각 개인은 자본주의 체제가 요구하는 대로 생산과 소비를 반복하는 기계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다. 1960년대가 되자 그들은 무언가 잃어버렸다는 것을 느꼈다. 경쟁사회에 갇혀 외로운 군중이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했다. 한편 베이비 붐 세대의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의 공허한 삶을 거부하고 대학이나 히피 공동체로 ‘자기를 찾아서’ 떠나갔다. 그들은 기성의 가치에 반항하고 영혼의 충족과 자발적 표현을 추구했다. ‘의식 전환’은 시대의 슬로건이 되었다. 일부는 마약에서 일부는 명상에서 그리고 일부는 신좌파운동에서 그것을 찾았다. 에릭 프롬, 알렌 와트, 그리고 스즈끼의 책은 그들에게 복음서가 되었다. 히피들에게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고 실현하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은 50년대의 비트(Beat)였다. 비트는 진정제와 마약도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는 수단이라고 보았다. 정신적 방황과 절망을 겪었던 비트세대의 예술가들에게 불교 특히 선은 새로운 돌파구이며 도피처였다. 그들은 선의 비논리성, 자유로움, 깨달음의 신비 등에 매료되었다. 특히 스즈끼의 선불교 소개는 도그마적인 엄격성으로부터의 자유와 자발성, 새로운 의식의 차원과 역설적이고 비논리적인 선의 가르침, 놀랍도록 쉬운 깨달음에 대한 강조 때문에 그들이 찾던 처방에 딱 들어맞았다. 그러나 수행에 대한 구체적 지침이 없었기 때문에 심리적 해방과 쾌락을 추구하는 비트와 히피들에 의해 선은 낭만화 되었다. 명상 상태가 마약도취 상태와 유사하다고 알려졌고 마약과 알코올, 성적 방종도 깨달음에 이르는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히피세대는 게리 스나이더,알렌 긴스버그,잭 케루악 등 비트작가들이 열어놓은 선불교의 문을 통해 동양의 비의를 찾아 캘리포니아 의 선센터로 인도와 일본으로 떠났다. 루벤도 그런 젊은이 중 한 사람이었다. 비트와 히피가 이탈자들이었듯이 그들의 명상 역시 현실 이탈적인 성격이 강하다. 거기에는 스즈끼의 불교 해석의 문제 뿐 아니라 당시 서양에서 활동한 동양 승려들의 책임도 없지 않다. 일부는 스승의 권위나 수행을 빙자하여 음주와 성적 방종에 빠지기도 했다. 아시아에서 온 스승들은 젊은 영혼의 갈증을 해소해줄 새로운 정신성을 소개했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들 역시 전후 서양사회의 가치 관의 혼란에 빠져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 후 아나키스트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이며 반현대적인 히피와 공동체 운동은 쇠락하고 그 저항문화적 성격도 대부분 잃어버렸다. 명상과 대체의학, 요가, 기공, 트랜스퍼스널 심리학 등은 웰빙의 수단으로서,경영자들에게는 경제적 효율과 창조성을 증대시키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통합된 현상으로 전환되었다. 루벤은 얼마 전 만난 젊은 아내와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그는 아내의 자식들을 돌보며 자의반 타의반 방기했던 아버지 역할을 뒤늦게 하게 되었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자식들이 느꼈을 상 실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또한 침술사로서, 치유를 경험했던 자로서 치유가 필요한 사람을 돕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회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처럼 비트와 히피운동은 20세기에 첨예해진 서양사회의 문제와 결핍에 대한 반작용이지만, 좌파 문화비평의 관점에서는 비합리적 사고로의 후퇴와 책임의 방기라고 비판받는다. 그들이 추구한 제한 없는 자유와 이상적 공동체는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연기의 법칙에 따르면 조건이 없는 것은 없으니까. 그럼에도 이들의 치기와 어설픔을 탓하기보다 그들의 절망에 깊은 연민을 느끼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언젠가 루벤이 아직도 자신이 세상과 어머니에게서 이해받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한 적이 있다. 히피운동은 근본적으로 소외에 대한 각성이다. 이 소외는 사회적 관계에서 야기된 것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삶 자체의 허무에 대한 자각에서 발생한 것이다. 인륜의 기초로서 문명은 인간의 삶을 야만과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건립되었지만,푸코가 보여주었듯이 문명 그 자체가 폭력 적이다. 우리가 애써 쌓아올렸던 문명이 허울임이 드러날 때,우리를 안전하게 지켜 주리라 믿었던 제도들이 신기루처럼 소리 없이 쓰러질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삶이 벌거숭이의 진실을 드러낼 때 우리는 더 이상 도망가거나 거짓의 위로를 구할 수 없다. 여기에 비트와 히피들의 절망이 있었다.

    ‘일체가 고통이다’는 부처님의 첫 번째 가르침은 그 평범함 때문에, 그러나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을 자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심각함은 종종 외면된다. 임제가 말한 ‘붉은 살덩어리의 무위진인’은 우리를 둘러싼 가상들을 떨쳐버리고 삶의 진실 앞에 벌거숭이로 서는 것이다. 이 점에서 비트는 선의 정신에 공명했다. 그들은 ‘삶이 고’라는 사실을 자각했으며 제도의 한계점을 돌파하려고 했다. 이들의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절망과 반항은 예민한 정신이 언제나 마주치는 지점이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어떤 보편성이 있다. 종교 역시 현실적 바탕을 필요로 한다. 그 바탕에 근거를 둘 때 종교적 실천이 바르게 행해질 수 있다. 그러나 제도로서의 종교는 많은 긍정적인 힘과 더불어 제약도 갖는다. 돈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고 결혼이 사랑을 보장해주지 않듯이 종교 역시 인간의 구원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지금, 세상의 모든 종교에 몸담고 있는 자들에게 묻는다. 그대들은 진정으로 구원되었는가? 그대들은 얼마나 개선되었는가?
    명법 스님(미국 스미스칼리지 박사후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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