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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지도학생이 된 무용가 바네사

浮萍草 2013. 4. 21. 07:00
    禪의 영향을 받은 서구 무용
    동양 선승의 눈엔 도통 이해가⋯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바드 교수가 찾아왔다. 불교와 현대무용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는 대학원생이 논문지도를 부탁한다면서 함께 만나보자고 했다. 현대무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사양했지만 그래도 예술에 대해서는 자기보다 나을 거고 내 연구에도 도움이 될 거라면서 거듭 청하는 바람에 함께 만나기로 했다. 바네사를 처음 만난 날, 나는 어떻게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왜 불교와 현대무용을 접목시키려고 하는지 등등 그동안 궁금 했던 것을 물어보았고 바네사 역시 내 연구에 관심이 많아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바네사의 불교에 대한 열의는 대단해서 명상을 위해 인도에도 다녀왔다고 했다. 스미스여대에 오게 된 사정을 물었더니 뜻밖에도 뉴욕에서 지낼 때 무용만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워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겹게 지내다가 스미스여대에서 조교 장학금을 받게 되어 대학원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순수예술을 하는 사람이 배고픈 건 미국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석사논문 주제로 바네사는 뉴욕무용단 시절의 실험적인 무용과 불교를 접목시킨 춤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그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아 다시 물어보았더니 그는 얼마 뒤 있을 공연을 보면 이해될 거라면서 우리를 공연에 초대했다. 그렇게 해서 거의 20년 만에 무용 공연을,그것도 현대무용을 보게 되었다. 후바드 교수는 부부 동반으로 왔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소란스러운 가운데 가벼운 긴장이 흐르는, 예전에 익숙했던 분위기가 새삼스레 느껴져 혼자 미소 짓고 있는데 옆에 있던 후바드 교수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그런데, 무용을 보는 건 계율에 위배되지 않나요?” 본인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지금 와서 계율 걱정을 하다니! 미국 사람들이 한 번 계율을 받으면 철저하게 지킨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웃으면서 연구를 위해 온 것이니 괜찮다고 대답하면서 한편으로 적어도 이곳에선 계율을 지키면서 곤란한 경우는 없으리라는 생각 이 들어 그들의 순수함이 무척 고맙게 느껴졌다. 공연이 끝난 뒤,후바드 교수와 나는 우리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른 공연은 그런대로 이해되었지만 바네사가 안무한 춤이 무엇을 표현하는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음날 바네사에게 메일을 썼다. 공연은 즐겁게 보았지만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바네사로부터 한 달 뒤 자신이 직접 춤을 추는 공연이 있으니 그때 다시 오라는 답장을 받았다. 이번엔 후바드 교수가 다른 사정이 있어 나 혼자 보았는데 그렇게 해서 얼떨결에 내가 논문심사위원이 되었다. 오월 초에 바네사가 논문 초고를 보내주었고 봄 학기가 끝날 무렵 논문심사에 참가했다.

    현대무용은 잘 알려진 것처럼 고전발레의 극단적인 기교를 거부하며 발레슈즈를 벗어던지고 맨발로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춤을 춘 이사도라 던컨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까지 무용은 어떤 것에 ‘대한’ 표현이었으며 ‘어떻게 그 생각을 몸의 움직임으로 표현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과 같은 고전발레 뿐 아니라 마샤 그래험의 현대무용 역시 어떤 극적 사건이나 관념을 표현하는 일종의 무언극이기 때문에 무용수는 춤을 추기 전 그것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것은 바네사가 비판하는 것처럼 의식의 선행을 요구하기 때문에 몸과 정신을 분리하는 이원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네사가 그의 춤, <무 그리고 가능성의 카오스>에서 추구한 것은 선행하는 관념이나 의도가 없는 춤이었다. 다시 말해 춤을 어떤 특수한 문화적 미적 활동으로 제한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나의 몸으로 감응하는 바에 대한 기록으로 삼고자 했다. 이 관점은 한편으로 바네사가 자신의 참선 체험에서 영감 받은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존 케이지의 미학과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존 케이지의‘우연’과 ‘비결정성’의 미학은 50년대 이후 현대무용,특히 머스 커닝험의 무용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는데 어떤 전제나 생각을 배제하고 순수한 몸의 감각에 반응하는 바네사의 춤 역시 동일한 미학에 근거한다.
    커닝험의 무용

    1950년대 컬럼비아 대학에서 행해진 D. T. 스즈키의 선불교 강의는 케이지의 음악에 전환점을 마련해주었다. 부단한 변화와 다양성의 세계가 그대로 진여이며 절대적 진리라는 사실을 확신하면서 자아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진여를 드러내기 위해 그는 예술창작을 무엇을 변조하거나 만들려는 의도 없이, 어떤 것도 미리 결정하지 않는 우연에 맡겼다. <4분 33초>는 소리를 통제하려는 모든 의도를 배제하는 극단적인 시도인데 연주자가 피아노 뚜껑을 열고 팔을 들었다고 놓은 후 정 해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피아노 뚜껑을 닫는 것으로 연주가 끝난다. 이 작품은 침묵 가운데 들리는 피아노 뚜껑을 여닫는 소리, 관객의 웅성거림,지나가는 기차소리 등 모든 소리가 음악이라는 케이지 미학의 극점이다.

    무의도성은 머스 커닝험과 바네사의 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들은 무용수들에게 미리 춤에 대한 어떤 지침도 주지 않았다. 케이지가 세상의 소리를 아무 가공 없이 드러내고자 한 것처럼 바네사는 몸의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 차이는 케이지가 즉흥성을 강조했다면 바네사는 내적 감각에 집중한다는 점뿐이다. 하지만 의도의 개입 없이 몸을 움직여 춤을 추는 것이 가능할까? 실제적으로 인간의 활동에서 의식을 배제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의도의 부재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정한 준비 또는 조건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주어진 장소와 시간에 그저 노출되는 의식은 의도가 없는 의식 상태가 아니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온갖 의도와 번뇌 에 얽힌 것이기 때문이다.

    참선을 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알듯이 번뇌를 끊기 위해 얼마나 고된 노력이 필요한가! 그 노력도 일종의 의도이니까 결국 의도가 없는 무의도는 불가능한 셈이다. 따라서 사전에 춤에 대한 지시가 주어지지 않으면 몸이 순수하게 반응한다는 바네사의 생각은 납득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나는 논문 심사 때 바네사에게 ‘느낀 것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어떤 준비를 시켰느냐’고 물어보았다. 바네사가 내 말의 의미를 알아들은 것 같지 않았지만 그의 지도교수는 내 질문이 적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의도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춤과 춤이 아닌 것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케이지는 그것을 삶과 예술의 일치라고 주장하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예술의 종언을 의미한다. 이 현상은 현대미술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기 때문에 나중에 팝아트를 살펴볼 때 상세히 거론하겠다. 선불교는 현대예술에 풍부한 영감을 제공했으며 예술의 관심을 내면으로 전환시켰다. 내면화와 주관화는 새로운 미적 가치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이지만 다른 한편 관객과의 소통을 차단했다. 춤은 점점 어려워져서 후바드 교수나 나 같은 문외한이 좀처럼 접근할 수 없는 암호가 되어버렸고 예술은 고급예술과 대중예술로 양분되었다. 이것은 바네사의 궁핍과 관련된 현실적인 문제이다. 이 모든 문제가 주관화의 방향과 연관되기 때문에 현대예술의 미적 관점이 선불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기초하고 있는지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명법 스님(미국 스미스칼리지 박사후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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