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 맛 세상

먹기 전에 주는 팁은 뇌물이다

浮萍草 2016. 3. 3. 09:16
    프랑스나 영국, 일본 등 한국과 마찬가지로 봉사료가 음식값에 포함돼
    준다면 순수하게 '훌륭한 대접 받았다'는 감사 표시여야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명하긴 한데 고기 품질이 들쭉날쭉한 서울의 한 정육식당이 있다. 그런데 유독 그와 같이 가면 마블링 잘된 맛있는 꽃등심이 나왔다. 풍채 좋고 인물 훤한 중년 남성이라 서빙하는 아주머니들이 반해서 그런가 했는데,그는"절대 아니다"며 씩 웃기만 했다. 어느 날 함께 간 그 고깃집에서 그가"좋은 고기 받는 비법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는 주문하면서 종업원 손을 슬쩍 잡았다. 손 안에는 초록색 지폐가 작게 접혀 있었다. 그가 최상급 등심을 확보하는 비법은 풍채도 인물도 아니고 자주 가는 단골이기 때문도 아닌 팁(tip)이었던 것이다. 이 일을 유난히 선명하게 기억하는 건 한국에선 팁 주는 손님이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한국은 팁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의 서비스 문화가 발전하려면 팁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외식 사업가들이 꽤 많다. 음식이 화제가 되고 쿡방·먹방이 뜨면서 연예인 뺨치는 부와 명예를 거머쥔 요리사들이 생겨났다. 덕분에 요리사에 대한 인식이 크게 개선됐고, 인기 직업으로 부상했다. 우수한 주방 인력 확보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하지만 홀 쪽은 사정이 다르다. 손님 서비스는 전문직이 아니라 아르바이트라는 인식이 여전하다. 괜찮은 홀 서비스 직원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서비스에 따라 팁을 주고받는 문화가 생겨난다면 좋은 인력을 구하기도 쉬워지고 서비스도 개선되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미국은 팁 문화가 확고하게 정착된 나라다. 팁이 의무에 가깝다. 사람의 손을 거치는 일이면 거의 무조건 팁을 줘야 한다. 뉴욕에서'곳간(Goggan)'이라는 한식 비스트로를 운영하는 박진배 FIT(패션기술대학) 교수는"뉴욕 식당에서 팁은 15~20%를 줘야 하는데 요즘 많이 올라서 15% 면 짠 거고 평균 18%,많이 주는 손님은 20% 준다"고 했다. "웨이터·웨이트리스 등 접객 직원은 주방 요리사보다 임금을 적게 받지만 팁까지 합친 총임금은 훨씬 높아요. 그래서 CIA처럼 좋은 요리학교를 졸업하고도 주방이 아닌 홀에서 일하겠다는 이들도 많아요." 한국과는 정반대 상황인 셈이다. 그런 뉴욕에서 팁을 없앤 '대사건'이 일어났다. 그래머시 태번(Gramercy Tavern), 더 모던(The Modern) 등 유명 식당 여럿을 운영하는 외식 사업가 대니 마이어(Meyer)가 지난해 11월부터 자신의 외식그룹 소속 레스토랑에서 손님에게 팁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팁을 없애기로 결정한 첫 번째 이유는'주방과 홀의 임금 차이가 너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가 외식업을 시작한 1985년 이후 30년 동안 임금 증가를 조사해보니, 요리사 임금은 22% 오른 반면 홀 직원의 임금은 400%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그는 팁을 받지 않는 대신 음식값을 20% 올렸다. 뉴욕에서 식사하면 어차피 팁을 20%쯤 내야 하니까 손님 입장에서는 마찬가지다. 늘어난 식대로 종업원 임금을 올리되 주방 요리사들의 임금을 더 많이 올려 홀 쪽의 웨이터들과 비슷하게 맞췄다. 동시에 주방으로 우수한 인력을 끌어들이겠다는 계획이다.
    이철원 기자

    마이어가 팁을 받지 않기로 결정한 두 번째 이유는 '팁이 손님에 대한 서비스를 나쁘게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의사가 수술 잘했다고 환자에게 팁을 받느냐?"고 되물었다. 박 교수는 크게 공감했다. "식당을 해보니까 진짜 그래요. 직원들이 손님에게 잘 봉사해야겠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팁을 더 많이 받아낼 수 있을까만 궁리해요. " 마이어가 팁을 없앤 마지막 이유는'종업원 임금의 일부를 손님에게 짐 지우는 건 옳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팁은 임금으로 인정돼 세금도 낸다. 뉴욕 식당에서 밥 먹고 한국에서 주지 않던 팁까지 나름 후하게 놓고 나왔는데 '팁이 적다'며 웨이터가 쫓아 나왔다면 이런 사정이 있어서다. 마이어의 대담한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그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성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팁을 없애는 것이 맞지만 오랫동안 뉴욕, 그리고 미국의 문화로 자리 잡은 팁을 완전히 없애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지난 1~2월 홀 직원 공고를 냈더니 예전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 이력서를 보내왔다"며"팁을 없애 임금이 확 줄어든 고급 레스토랑 출신이 많더라" 고 했다. 프랑스나 영국 일본 등 다른 선진국에선 한국과 마찬가지로 봉사료가 음식값에 포함돼 있어 반드시 팁을 줄 필요가 없다. 준다면 순수하게 '정말 훌륭한 대접을 받았다'는 감사 표시이다. 이런 정도의 팁 문화가 한국에 자리 잡으면 좋겠다. 그렇다 해도 주문하면서 팁을 쥐여주는 건 아니지 싶다. 서비스받기도 전에 주는 돈은 팁이 아니라 뇌물에 가깝지 않을까. 손님으로서 너무 '비굴한' 태도 같다.
          김성윤 조선일보 문화부 음식전문 기자 gourme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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