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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식당에서 고기 메뉴 다 빼!" 파리 스타 셰프의 실험

浮萍草 2016. 1. 21. 10:38
    육류 위주 식습관, 암과 당뇨 불러… 축산업 확대로 지구 환경 파괴
    파리 최고급 식당 운영 佛 요리사 "음식으로 세상 바꾸겠다"며
    미슐랭 별 셋 식당서 고기 메뉴 빼… 생선·채소·곡물로 요리 선보여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랭 뒤카스(Alain Ducasse)가 혁신적인 아니 혁명적인 실험을 시작했다. 뒤카스는'미식의 나라'프랑스를 대표하는 요리사다. 프랑스와 미국,일본,카타르 등 일곱 나라에 레스토랑 24개를 거느린 '외식 제국(帝國)'을 지배한다. 부유세(wealth tax)를 피하기 위해 2008년 프랑스 국적을 포기하고 모나코 국적을 취득했다. 뒤카스가 이 음식점들을 통해 레스토랑 가이드 미슐랭에서 획득한 별(스타)을 모두 더하면 무려 21개. 이 많은 레스토랑 중에서 가장 빛나는'별'을 꼽으라면 역시 파리 최고급 호텔 플라자 아테네(Plaza Athenee)에 있는'알랭 뒤카스 오 플라자 아테네(au Plaza Athenee·3스타)'일 듯하다. 뒤카스는 호텔 리노베이션에 맞춰 수개월간 문 닫았던 이 레스토랑을 최근 다시 열면서 육류와 가금류 그러니까 소·돼지·양 따위 고기와 닭·오리·비둘기 등 조류를 메뉴에서 완전히 빼버렸다. 그는"생선-채소-곡물 3부작(trilogy)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한 음식을 선보이겠다"면서 이 새로운 시도를 "자연스러운 요리 (Naturalness cuisine)"라고 명명했다. 세계 어떤 나라나 문화건 고기는 식문화의 최상위층을 차지한다. 서양·유럽 문화권에서는 특히 그렇다. 14세기 프랑스 왕실 전속 셰프 기욤 티렐(Tirel)이 쓴'타유방(Taillevent)의 요리서'가 있다. 기욤은 타유방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했다.
    그가 쓴 요리책의 원제목은 '비앙디에(Le Viandier)'이다. 프랑스어로 고기를 뜻하는 비앙드(viande)에서 유래했다고 추측된다. 17세기까지 비앙드는 고기뿐 아니라 음식 전체를 아우르는 단어였다. 한국에서 밥이 식사 전체를 의미하는 것과 같다. 그만큼 고기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양 식문화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왔다.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자신의 책 '신화학'에서 '스테이크는(…) 프랑스인의 정열이다. 포도주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인에게 스테이크는 전혀 어색함이 없는 음식이다. 외국에서 고생할 때 프랑스인은 스테이크에 대한 진한 향수를 느낀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러니 프랑스를 대표하는 요리사가 자신의 대표 식당 메뉴에서 고기를 삭제해버렸다는 건 미식계에서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이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뒤카스는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그는 두 가지 야심 어린 목표를 제시했다. 첫째, 오트 퀴진(haute cuisine)을 재해석해 업데이트할 때가 됐다는 거다. 오트 퀴진이란 가장 섬세하고 정교한 고급 요리를 말한다. 고기로 대표되는 값비싼 식재료에 가려 조연 역할만 맡아온 채소와 곡물이 얼마나 훌륭한지,그리고 저렴한 재료로도 얼마나 섬세한 오트 퀴진을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생선도 참치나 연어 같은 비싼 생선 대신, 꽁치나 정어리처럼 고급 음식점에서 외면해 온 값싼 생선을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둘째, 갈수록 심각해지는 건강·환경 문제에 대해 셰프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이다. 뒤카스는 음식을 통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요리사다. 그는 "자연과 더 조화롭고 건강하며 환경 친화적인 식문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고기를 중심으로 한 육류 생산을 늘리기 위해 지구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 열대우림이 소 방목용 목초지로 개간되고 이는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미국·호주 목장 지대가 급속히 사막화되는 주원인으로 꼽힌다. 곡물 생산은 늘었지만 가축이 먹어 치워 개발도상국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굶주리고 있다. 반면 부유한 나라에서는 육류 과잉 섭취로 심장 발작,암,당뇨 등'풍요의 질병'이 급증했다. '육식의 종말'을 쓴 제러미 리프킨은 '날로 증가하는 소와 소고기 소비 문제가 미래 지구와 인류 행복에 가장 큰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뒤카스가 세계 외식업계에 가진 영향력은 매우 크다. 그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동참할 요리사가 많을 듯하다. 하지만 일반 대중의 식습관에도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수십 수백 년 이어져 온 식생활이 뒤집힐 수 있을까. 역사를 되돌아보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듯하다. 인도는 누구나 다 아는 채식주의 국가다.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높은 성직자 계급인 브라만은 특히나 철저한 채식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원래 브라만은 소를 희생(犧牲)해 신에게 바치고 대중에게 나눠주는 역할을 맡았던 사제로, 그들 자신도 육식을 매우 즐겼다. 고대 인도 인구가 급증하고 자연이 황폐화하면서 농사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소 즉 농가당 밭을 갈 황소 두 마리와,새끼를 낳고 우유를 제공할 암소 한 마리를 제외 하고는 키울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브라만과 지배 계급은 여전히 많은 소고기를 먹었다. 이에 분노한 농민층이 힌두교를 버리고 불교로 개종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브라만과 지배층은 동물 희생에 대한 태도를 완전히 뒤집는다. 소 도살을 금지하는 건 물론이고 소를 신성화했다. 브라만처럼 완벽한 채식주의자로 거듭날 필요야 없겠지만 인류의 미래가 위협당하지 않으려면 육식 위주 식단의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김성윤 조선일보 문화부 음식전문 기자 gourme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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