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 맛 세상

'진짜 맛집'은 레시피를 숨기지 않는다

浮萍草 2015. 10. 29. 09:49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한민국을 대표하는 식당은 어디인지 알아보려고 '코릿(KorEat) 서베이'를 시작했다. 요리사와 식당 주인,레스토랑 컨설턴트 특급호텔 식음기획자,요리 연구가,음식 칼럼니스트 등 음식·외식업계에서 활동 중인 전문가 100명에게 최고의 식당을 추천받아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외식업소 50곳을 공개했다.〈본지 9월 17일자 기사 참조〉 50개 쟁쟁한 식당 중에서도 톱10에 선정된 가장 오래된 곳은 평양냉면 명가 우래옥(又來屋)이다. 1946년 개업했으니 대한민국보다도 두 살 더 많다. 우래옥에는 가게 역사만큼 오래된 지배인이 있다. 김지억 전무다. 올해 여든셋이지만 매일 오전 11시 30분이면 1층 카운터 앞을 바위처럼 굳건하게 지키며 손님을 맞는다. 김 전무는"조달청에서 일하다가 박정희 대통령이 화폐개혁을 실시한 1962년 우래옥에 입사했다"니까 올해로 53년째 근무 중이다.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씨는"53년째 월급을 받고 있는 김 전무는 국내 최장(最長) 납세자일 것"이라며"국세청에서 표창장을 줘야 한다" 고 종종 농담한다. 우래옥을 취재하기 위해 만난 김 전무는 어떤 질문에도 거침없이 답했다. 다른 식당이라면"며느리도 모른다""영업 비밀"이라며 숨길만 한 내용도 대수롭잖다는 듯 알려줬다. 이런 식이다. "냉면 면발의 메밀과 전분 비율이 어떻게 되나요?"
    "7대3이야!" "육수는 뭐로 끓이나요?" "소고기 딱 하나야. 전에는 돼지고기도 넣었어. 이북에선 돼지고기도 많이 넣었다고. 그런데 어느 날 손님이'냉면 값은 제일 비싸게 받으면서 싸구려 돼지고기를 넣느냐'고 욕하기에 그날로 빼버렸어." "이렇게 다 알려줘도 괜찮으냐?"고 물었더니 그는"비법은 없다"고 했다. "냉면이 그저 육수와 면의 조합 아니오. 숨길 게 있나. 좋은 고기 잘 삶고 좋은 메밀로 면 내리면 되지 뭐."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곰탕 명가 하동관(河東館)도 톱50에 선정됐다. 1939년 문 열었으니 올해로 76주년을 맞은 또 다른 노포(老鋪)다. 하동관을 이어받은 4대 장승연(38)씨는 패션모델 뺨치게 키 크고 세련된 여성이다. 장씨와 그의 어머니 김희영(77·3대)씨도 인터뷰에서 감추는 게 없었다. 들은 대로 따라 하면 문외한도 최고의 곰탕을 끓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온갖 노하우를,물어봐 줘서 고맙다는 듯 신이 나서 설명했다. 하동관 모녀는"이렇게 다 알려줘도 괜찮으냐?"는 질문에 "알려줘도 그대로 하는 사람이 없다"고 답했다. "곰탕에 들어가는 고기는 손으로 썰어야 해요. 고기마다 육질이 다르고, 한 고깃덩이조차 부분마다 결이 달라요. 고기의 육질에 맞게 칼질을 해야 씹을 때 고기가 쫄깃해요. 힘과 시간이 여간 드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대부분 곰탕집이 기계로 썰죠. 기계로 썬 고기는 푸석하고 국물에 들어가면 바스러져요. 우리가 손 칼질을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다들 믿지 않기에 강남점 오픈할 때 주방에 창을 내 칼질하는 거 보여줬어요." 맛집은 남들이 모르는 엄청난 비법을 숨겨놓고 있는 게 아니라,음식 만드는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는 데 있는 것 같았다. 누구나 알지만 힘들다고, 이윤이 적다고, 비효율적이라고 꺼리는 정도(正道)를 묵묵히 걷는 이들이 바로 유서 깊은 맛집의 계승자들 아닐까. 세계 미식(美食) 트렌드를 선도하는 외국 식당들도 마찬가지다. 현재 가장 영향력이 크다는 덴마크 노마(Noma)는 요리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한다.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면 바로 업데이트해 볼 수 있게 한다. 요리책도 주기적으로 펴낸다. 노마뿐 아니라 해외 이름난 식당은 대부분 자신의 대표 요리 레시피를 공개한다. 프랑스 파리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라스트랑스(L'Astrance)의 오너셰프 파스칼 바르보가 몇 년 전 한국에 왔을 때 그를 한 불교 사찰에 데려가 사찰 음식을 맛보게 했다. 사찰로 가는 차 안에서 그에게 물었다. "왜 요리법을 다 공개하는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감추려 해도 어차피 다 밝혀지게 돼 있어요. 모든 요리사는 다른 요리사의 음식을 맛보고 거기서 영향을 받아요. 그대로 따라 하면 '카피'지만,자신만의 요리로 새롭게 탄생시킨다면 '창작'이죠. 끊임없이 새로운 맛을 창조하고 영감을 주고 영향을 주는 것, 그게 최고 요리사의 역할 같아요." 옛 맛을 고집스레 지키는 유서 깊은 식당이건 새로운 맛과 음식을 끊임없이 창조해내는 첨단 레스토랑이건, 정상에 선 이들에겐 노력이 있을 뿐 비밀은 없는 듯하다.
    Chosun ☜       김성윤 조선일보 문화부 음식전문 기자 gourmet@chosun.com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