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U/닥터 조홍근의 알기 쉬운 건강이야기

당뇨병으로 가는 두 가지 유산과 네 가지 습관 (1) 인생 중후반 질병은 어렸을 때 영양 나름

浮萍草 2016. 2. 28. 10:03
    ㆍ당뇨병은 한 번에 생기지 않는다
    뇨병과 같은 생활습관병은 여러 가지 자그마한 원인이 긴 세월을 두고 누적되다가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서면 마치 이제 막 온 것처럼 자신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금속에 보이지 않는 피로골절이 마침내 균열로 나타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건물이나 구조물이 붕괴되기 한참 전에 어떤 경고 신호를 주듯이 당뇨병 또한 오랜 세월 동안 경고를 줍니다. 다만 몸 주인이 그 경고를 무시했거나 아니면 그 경고가 너무 미미해서 느끼지 못했을 따름입니다. 저는 환자나 의사들에게 강의할 때 당뇨병은 두 가지의 유산과 네 가지의 습관에 의해서 온다는 이야기를 즐겨합니다. 한 번 살펴볼까요. ㆍ당뇨병은 부모님의 유산이다
    모든 병과 성격이 전적으로 유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굉장히 단순하고 무지한 발상입니다. 그런데 모든 병과 성격이 유전적인 것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방향이 반대이지만 단순무지한 것은 같습니다. 당뇨병은 분명히 유전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부모가 전혀 당뇨병이 없는 사람에 비해 양친 가운데 한 명에게 당뇨병이 있을 경우 그 사람은 일생 동안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약 25% 증가합니다. 부모님 양쪽에 당뇨병이 있다면 그 위험도는 더 높아집니다. 숫자는 연구에 따라 다르지만 여하튼 집안에 당뇨병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당뇨병이 발생할 위험이 높습니다. 쉽게 비만해지는 경향, 같은 음식을 먹어도 당이 더 많이 올라가는 경향,허벅지 근육이 별로 없는 체형,당을 처리하는 근육의 양이 적은 체형 등은 유전적인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가능성이기 때문에 혹시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 가운데 부모님이 다 당뇨병이라고 본인도 틀림없이 걸리겠구나 하는 생각은 안 하셔도 됩니다.
    임신부가 심한 영양실조에 걸리면 태아는 태어나 성장하면서 임신부가 기아에 노출된 시기에 따라 당뇨병과 같은 질병에 잘 걸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뇨병은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기회를 엿보는 셈이다.사진은 서울 한 구청 보건소가 운영하는 출산준비교실에 참가한 임신부들이 강사의 지도에 따라 산전체조를
    하고 있는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ㆍ당뇨병은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기회를 엿본다
    옛날에는 성격이나 체질이나 질병이 선천적(nature)이냐 후천적(nurture)이냐를 가지고 싸웠습니다. 지금은 잘 타협해서 두 가지에 다 영향을 받는다라고 화해했지만 이제는 거기에 더해 아주 중요한 제3의 인자가 개입합니다. 바로 어머니의 뱃속(intra-uterine condition)입니다. 태교를 중요하게 여기고 세상에 태어나면 1살 나이를 먼저 먹이는 우리의 관습이 사실 더 과학적입니다. 태아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그냥 먹을 것만 받고 잠만 자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임신 기간 중에 어머니와 태아는 서로 부단히 교류하는데 이때 어머니의 영양이나 심리 상태가 태아에게 평생을 거쳐 각인될 정도로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영향을 줍니다. 이런 사실은 하필이면 전쟁 때문에 알게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절정에 다다를 때,영국군 총사령관 몽고메리의 무리한 고집으로 영미 연합군 공수부대가 네덜란드의 아덴 지방을 공격합니다. 그러나 독일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교두보도 확보하지 못한 채 거의 괴멸당하다시피 퇴각합니다. 이 전투는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영화로도 나왔는데 <돌아 오지 않는 다리(원제는 operation market garden)>입니다. 당시 그 지역 기관사들은 독일 군수물자 열차에 대한 파업을 했지만 연합군이 맥없이 패퇴하는 바람에 그만둡니다. 이에 독일군은 까칠한 뒤끝을 보여 줍니다. 파업 협조 지역에 식량 배급량을 확 줄여 버린 것입니다. 그해 겨울 동안 하루 1000칼로리에 미치지 못하는 거의 기아 수준의 양만 배급합니다. 그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죽을 고생을 겪었습니다. 이 사건을 ‘Hungry Dutch winter’라고 합니다. 수십 년이 흐른 후, 네덜란드의 건강 통계에 이상한 경향이 포착되었습니다. 심장병, 당뇨병, 우울증 등의 질환이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밀한 역학분석 결과 이 질환에 걸린 많은 사람들이 특정 지역 출신이며 생일 또한 특정 연도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식량 봉쇄를 당했던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그 겨울에 임신되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임신 1기, 2기, 3기에 모체가 심한 영양실조에 걸리면 뱃속의 아이는 태어나 성장하면서 모체가 기아에 노출된 시기에 따라 당뇨병,고혈압,고지혈증,우울증 등의 질병에 잘 걸린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이때부터 어머니의 자궁 내 환경이 선천과 후천에 더해 새로운 질병의 원인으로 부각됩니다. 유전자는 같아도 잉태된 후 태아 때의 상태에 따라 유전자가 선택적으로 발현되어 그 결과인 단백질이 달라지면 인체대사가 전면적으로 다른 상태가 됩니다. 성격과 질병과 체질이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생물은 유전자라는 청사진에 의해 자동적으로 카피되는 그런 유전자의 노예가 아닙니다. DNA 정보를 CD에 든 이진법 음악정보로 비유하자면 그걸 읽는 레이저 픽업의 정밀도와 DAC의 성능과 아날로그 출력단의 품질에 따라 재생되는 음질이 하늘과 땅인 것과 같습니다. 유전자 결정론은 18세기 유물론만큼 성급합니다. 그런데 비슷한 상황에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증례가 옛 소련에서 보고되었습니다. 독일군은 파죽지세로 소련을 침공했는데 당시 레닌그라드를 872일간 완전히 봉쇄해서 많은 사람을 죽게 하고 기아상태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것도 유명한 사건이라 레닌드라드 포위(Leningrad Seige)라고 합니다. 이때도 역시 당시에 임신이 되어 태어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성년이 되고 중년이 된 후에도 네덜란드와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ㆍ일벌과 여왕벌의 유전자는 같다
    초라하게 생긴 일벌과 덩치가 큰 여왕벌은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나 일벌과 여왕벌의 유전자, 즉 DNA는 동일합니다. 무엇이 이들을 다르게 만들었을까요? 부화되어 나온 후 로열젤리를 집중적으로 먹은 벌은 여왕벌이 됩니다. 유전자는 동일하지만 태어난 후 접한 영양과 환경에 따라 유전자에 내장된 특정 프로그램은 억제되고 특정 프로그램은 활성화되면서 서로 다른 단백질이 나옵니다. 그 결과 전혀 다른 발생과 발육을 하게 되어 일벌과 여왕벌로 나뉘는 것입니다. 이렇게 DNA로 대표되는 유전자 지도는 변화가 없지만,영양 등의 외부 요인으로 인한 단백질 발현의 차이에 따른 생리학적 변화나 질병 발현을 연구하는 학문을 Nutriepigenomics라고 합니다. 기성품처럼 모든 것이 유전자에 새겨져 태어나고 그 이후는 자기 생활방식에 따라 질병이 발생한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이 이론은 암과 성인병 발생 기전을 설명 하는 데 중요합니다. 당뇨병과 대사질환이 여기에 아주 잘 부합합니다. 태교도 중요하지만 태어난 아이가 어렸을 때 섭취한 영양,가정환경,사회적 환경이 미래의 질병을 결정한다는 사실도 계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로열젤리를 먹으면 여왕벌이 되지만 허접하게 먹으면 일벌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렸을 때 잘 먹어야 합니다. 인생 초반의 영양과 환경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여 반영구적 변화를 일으켜 질병을 유발합니다. 이 현상을 ‘Early life programming’이라고 합니다. 동일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도 어렸을 때의 섭생에 따라 인생 중후반의 질병이 결정되기 쉽습니다. 이런 사항들을 보면 나의 건강은 부모님이 열심히 노력하신 결과임을 느낍니다. 부모님께 감사하고 아이에게 아무거나 먹이지 마세요.
    Vol 1164       조홍근 연세조홍근내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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