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H/新줌마병법

'마녀의 부엌'에서 배운 한 수

浮萍草 2016. 1. 17. 12:16
    식탁 하나에 메뉴판 없는 밥집,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 식당에 
    단골손님 끊이지 않는 이유는 어머니 지어주시던 그 밥맛
    "사람은 먹는 대로 삽니더… 밥이 곧 그 사람 미래라예"
    김윤덕 문화부 차장
    회동 159번지가 '마녀의 부엌'이 된 건 순전히 주인 여자 탓이다. 여자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라야 부스스한 머리를 털모자에 구겨 넣은 채 골목에 나타났다. 어둑해진 가게에 들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촛불 켜기였다. 다섯 평 남짓한 가게를 절반 이상 차지하는 식탁에 여자는 천지신령께 소원을 비는 무당 표정이 되어 조심조심 불을 밝혔다. 항간엔 그 무거운 마호가니 식탁을 벤처기업 임원이었던 여자가 퇴직금을 털어 샀다는 소문이 돌았다. 망한 커피집을 인수해 차린 밥집인데, 여자는 돈 벌 생각이 별로 없는 듯했다. 식탁이 하나뿐이니 손님도 끼니에 한 팀밖에 받지 못했다. 어쩌다 두 팀이 되면 어색한 눈인사를 나눈 뒤 식탁 이 끝 저 끝에 나누어 앉았다. 메뉴판은 없었다. 매일 아침 서촌으로,노량진으로 장 보러 가는 여자가 그날 발견한 신선한 재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그날 밥상이 달라졌다. 어느 날은 가리비찜이 나오고, 어느 날은 은대구탕이 나왔다. 어느 날은 생굴을 감자 가루에 묻혀 지진 굴전이 나왔고 어느 날은 돼지 수육이 나왔다. 생면부지 사람들이 밥을 먹고 나면,서로 명함을 주고받으며'다음에 또 보자'손 흔들며 헤어졌다. 여자는 "내가 지은 밥 묵고 가슴에 봄바람 안 분 사람 세상에 없지예" 하며 기차 화통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 부산 망미동에서 나서 기장에서 자랐다고 했다. 앞뒷집에서 저녁 찬으로 뭘 해먹는지 눈 감고도 안다는 '응팔' 골목이었다. 알루미늄 상에 둘러앉아 치열하게 밥 전쟁 벌이던 여덟 식구 틈바구니에서 미각(味覺)을 길렀다. 눈 뜨면 포구에 멸치잡이 배들이 앞다퉈 들어오는 항구 마을이었다. 상품이 될 만한 멸치를 털어내고 나면 그물에 멸치 부스러기들이 남아 아침 햇살에 은빛으로 빛났다. 알뜰한 할머니는 그걸 몽땅 털어 와 된장 한 숟가락 넣고 시래깃국을 지졌다. 바다향 물씬 풍기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서울로 대학 가고, 취직해 하루 네 시간만 자고 일하느라 부엌을 잊었다. 과장이 되고, 부장이 되고, 임원이 됐지만 출세할수록 밥 먹을 시간이 없었다. 새벽 조찬부터 저녁 회식까지 밥상은 늘 차려져 있었으나 맛과 온기는 없고 비즈니스와 거래만 남았다. 암으로 갑상선 두 쪽을 떼낸 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살아야겠다 싶었다. 딸아이와 남편을 위해서라도 그 옛날 할머니가 지어주셨던 집밥이 절실했다. 다행히 부엌은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었다. 밥 짓고 반찬 만들 때 자신이 제일로 착해진다는 걸 알았다. 마흔여덟, 회사를 접었다. 발에 불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번 돈으로 마당 있는 집을 샀다. 김치를 담그려면 마당이 필요했다. 친구들에게 '집밥' 먹이는 보시를 하다, '이참에~' 가회동 골목에 밥집을 열었다. 친구들은 "한 달도 못 가 망한다"며 말렸지만 이미 그 비싼 마호가니 식탁을 들여놓은 뒤였다. # '원 테이블'의 기적이 일어났다. 주인 맘대로 차려주는 밥상인데 단골이 생겼다. 1년 중 3분의 2를 해외 출장 다닌다는 50대 남자는 막 지은 콩밥에 조개젓갈 얹은 배추쌈을 밥상에 올렸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먹었다. 유방암 진단을 받고 찾아온 여인에겐 옥수수밥을 지어 주었다. 부산에서 막 올라온 물미역에,잘 익은 김장김치 쭉쭉 찢어 밥 위에 얹어주었더니 정물화처럼 앉았던 여인 얼굴에 등불 같은 미소가 번졌다. 단골 중엔 마녀 '이바구'에 중독된 사람도 많았다.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수선을 피우는 통에 처음엔 정신이 없더니,한 달만 지나면 그 걸쭉한 입담이 그리워졌다. 명퇴를 권고받고 여자의 부엌을 찾아온 남자는 이런 잔소리를 들었다. "걱정도 팔잡니더. 학력고사 점수가 정해준 인생 전반전은 어여 끝내시고 내가 좋아하는 일 시작하는 게 남는 장사지예. 손해 좀 보면 또 우떻십니꺼?" 분식집인 줄 알고 들어온 청년들에겐 라면을 끓여주며 또 참견을 했다. "꿈이 뭔지 모른다꼬? 오늘 하루 중 가장 많이 생각한 거,입꼬리가 씨익 하고 올라가는 거 그거 아이가?" 눈만 뜨면 남편 걱정, 자식 걱정하는 여인네들에게도 훈수를 두었다. "서로 적당히 떨어져가 응원해주는 기 사랑이라예. 바가지 긁는다고 안 바뀝니더. 사내하고, 얼라하고,개는 저얼~대 안 바뀝니더. 부부 금실 좋아지는 비법 알려드릴까예. 어디 가는지 묻지 마라, 언제 오는지 묻지 마라,돈을 얼마나 썼는지 묻지 마라." # 여자는, 가난했으나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삶의 원천이라고 했다. 내일 먹을 쌀이 없는데도"많이 무라" 하시고,내일이 시험인데도 "고마 자라" 하시던 그 단순함과 낙천성.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이소. 생각하면 계산하고, 계산하면 아무 일도 못 합니더. 일단 첫발을 떼고 보라니까예." 밥집은 손맛이 아니라 다릿심으로 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지만,그래도'김훈 오라버니' 만날 때까진 문 닫지 않고 버틸 거란다. 그렇게 헤벌쭉 웃으며, 또 잔소리다. "보소. 사람은 먹는 대로 삽니더. 밥이 곧 미래라예. 암만 바빠도 주말 한 끼는 제대로 만들어 자시소."
    김윤덕 조선일보 논설위원 겸 문화부 차장 sion@chosun.comn / 이철원 일러스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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