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H/新줌마병법

그 댁 남편도 가을바람 나셨나요?

浮萍草 2015. 11. 5. 06:00
    하늘은 높고 먼산에 단풍물 드니 목석같던 내 남편도 바람을 타네
    머리 물들이고 수염까지 기르니 보살님, 이를 어쩌면 좋을까요?
    "잠깐 스치고 지나가니 바람, 바람 탓 말고 그대를 가꾸시게"
    김윤덕 문화부 차장
    빛 꽃단풍이 북한산 허리를 휘감고 도니 연신내 강 보살을 찾는 여인네들이 부쩍 늘었다. 상호를 있는 대로 구기고 나타난 여자들은 하나같이 '바람'을 탓했다. 황무지 같던 사나이 가슴에 한줄기 가을바람 비집고 들더니,십수 년 살 부비며 산 낭군님 눈빛이 전혀 딴사람으로 변하더라는 거다.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자식을 본다는 사내가 아니던가. 이날도 세 여인은 보살 집 문지방을 넘자마자 앞다퉈 하소연을 쏟아냈던 것이다. #
    생전 멋과는 담쌓고 살던 남자예요. 이발비가 5000원에서 7000원으로 올랐다고 바리캉을 사네 마네 궁상떨던 짠돌이였다니까요. 근데 느닷없이 머리에 꽂힌 겁니다. 눈만 뜨면 거울부터 찾고요,
    2주일이 멀다 하고 동네 미용실을 들락거려요. 하루는 커다랗고 뽀글뽀글한 물체가 현관으로 걸어들어오더군요. "부하 직원들이 내가 너무 차가워 보인대서.훈내 물씬 풍기는 남자가 돼볼까 하여.흐흐."훈내는 얼어죽을! 남편은 두상이 크다 못해 정육면체라 파마를 하면 머리가 두 배로 커 보입니다. 스펀지 밥이죠. 키는 짜리몽땅해도 남편의 그 찰랑머리를 제가 얼마나 좋아했게요. 그 앳된 소년은 오간 데 없고 나이트클럽에서"싸모님~"하며 다리 흔들 것만 같은 아저씨가 서 있더란 말입니다. 머리를 볶고 온 날부터 모임도 부쩍 늘었어요. 무슨 밴드니 고무줄 모임에 나가더니 요즘엔 같은 자동차 타는 사람들 모임에도 나가요. 어제는 "앞머릴 퍼플 톤으로 물들여볼까?" 하길래 제가 뒷목을 잡았지요. 낼모레 오십입니다. 분명 누가 있어요. 이 순정남을 꼬드기고 부추기는 여편네가 있다니까요. 그렇지 않고는 단돈 천원에 벌벌 떨던 남자가 머리에 기십만원씩 처들일 리 있나요. 그 여우 같은 미용실 원장부터 당장 요절을 낼까 하는데, 어찌하면 좋을까요 보살님. #
    머리는 양반이유.우리집 남자는 글쎄,염소처럼 수염을 길러요. 이게 다 그 여자 상사 때문이지요. 몇날 며칠 야근하느라 면도를 못 하고 출근했더니, 이 여자 왈 "어머머, 조니 뎁인 줄 알았네" 하더랍니다. 이 순둥이 남자 두 눈이 뒤집혀서는 그날로부터 수염을 안 깎습니다. 관리라도 제대로 하면 또 몰라요. 패션의 피자도 모르니, 임꺽정처럼 그저 무성하게만 기릅니다. 보다 못해 한소리했지요. 멋을 낼 거면 차승원 흉내라도 내라, 얼굴형은 물론 수염의 질과 양에 따라 어울리는 수염이 따로 있는 거다…. 아, 그랬더니 이 남자 인터넷을 뒤져 수염 전용 가위랑 빗이랑 에센스까지 마구 사들이는 겁니다. 그뿐인가요? 수염에는 야성미 넘치는 옷을 입어야 한다며 가죽 점퍼를 사고, 청바지를 사고, 카우보이 부츠까지 사더니 이젠 꽁지 머리를 할 기세랍니다. 하수상하여 떠보았지요. "여자 생겼어?" 그러자 펄펄 뛰더군요. 남자의 로망을 몰라도 너무 몰라준다면서.젠장,털을 기를 거면 가슴팍에나 기르든가요. 세상에서 제일 재미난 짓이 딴짓이고, 모범생이었던 남자가 바람 타면 걷잡을 수 없다던데, 저 바람 어찌하면 잡을까요.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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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휴, 수염은 명함도 내밀지 마슈. 우리 낭군은 아주 대놓고 몸을 만듭니다. 가장이 건강해야 두 딸 시집 밑천 마련한다며 한 달 전 동네 헬스장에 등록했지요. 근데 운동 시작한 다음 날부터 시도 때도 없이 카톡이 울립니다. 하도 시끄러워 남편 폰을 열었다가 까무러칠 뻔했지요. 헬스장 다니는 여자들과 단체 톡방을 만들었는데 오가는 대화가 가관입니다. "미스터 정, 요즘 허벅지에 잔근육 많이 생겼더라" "탱탱한 게 박서준 저리 가란데?" "불금에 '구름처럼' 한잔 어때?" 아줌마들 주책이야 그렇다 쳐요. 절 진정 열받게 한 건 남편의 답글이었죠. 마누라 문자엔 '응',아니면 '몰라'로 초지일관하던 인간이 아줌마들 문자엔"쌩유쌩유,저도 신나용,하트하트""누님들과의 수다는 제 삶의 비타민입니당" 이러면서 닭살 작렬합니다. 헬스 다니고부터는 저랑 눈도 잘 안 마주치고요, 팔짱이라도 낄라치면 기겁을 합니다. 누가 봐도 바람난 거 맞지요? 부지깽이 들고 달려가 헬스장을 한번 뒤집어엎어야 할까요? #
    내비둬어~. 머리털 볶아 깨소금을 뿌려 먹든, 옥수수수염 길러 차로 마시든 내비두랑께. 끽해야 석 달! "멋지다, 섹쉬허다" 추임새 서너 번 넣어주면 제 풀에 잦아들지. 약이 바짝 오른 모기도 찬 바람 불면 입이 돌아가 맥을 못 추는 법. 잠시 바람 좀 타면 또 워뗘. 그거 막으면 진짜루 바람나. 시비 걸 시간 있으면 자네를 가꿔. 거리 뒹구는 낙엽처럼 시들어 바스라지기 전에 거울 좀 보랑께. 펑 여사가 명언을 남겼지. 남자, 관리하지 말고 너 자신을 가꾸라고! 저 아래서 출렁이는 게 뭐여. 설마 배여? 머리 모양은 또 뭐여.만재도 할매들도 그런 빠마는 안 하겄네. 책도 좀 읽어. 시집이 얇고 짧응께 강추! 지진희 같은 애인 있으면 소원이 없겄다 혔어? 내 말대로만 혀봐. 물 묻은 바가지에 깨 달라붙듯 사내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텡게. 아니면 말구!
            김윤덕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차장 sion@chosun.co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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