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H/新줌마병법

올여름이 뜨거웠던 이유

浮萍草 2015. 8. 27. 22:18
    사랑 잃고 남미로 간 친구… '그녀의 칼로'가 서울 왔네
    두 발 절단하고도 웃으며 "날개 있으니 발은 없어도 돼"
    그 낙천의 힘에 경의를! 삶이여, 사랑이여 영원하라!
    ▲  김윤덕 문화부 차
    font face=바탕 color=#0000ff blue> "엄마, 저 아줌만 왜 얼굴에 수염이 났어?" 앞줄에 선 여자애가 물었을 때 혼자 웃었어. 귤색 원피스를 입은 그 애 엄마는 어쩔 줄 몰라 했지. 기억나니? 그 질문. 30년 전 내가 너에게 했던 거잖아.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놀라지 마. 네가 지독히도 사랑했던 '그녀'가 서울에 왔어. 칼로, 프리다 칼로. 휴가 마지막 날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전시장에 간 건 순전히 너 때문이야. 너 대신 나라도 '손님'을 맞아야 할 것 같아서. 수은주가 섭씨 34도를 치고 올라간 미친 날씨였지. 네가 떠나던 날도 그랬어. 공항에서 전화 한 통으로 작별 인사 한 넌,내가 울먹이자"제발 촌스럽게 굴지 말라"며 깔깔거렸지. 이모 사는 LA로 갔다가 남미로 간다고 했어. 파블로 네루다와 이사벨 아옌데와 체 게바라가 살던 땅,지구를 반 바퀴 돌아야 닿을 수 있는 그 열대의 땅으로 말이지. "갑자기 왜? 언제 올 건데?" "그냥. 칼로의 '푸른 집'에 한번 가보고 싶어서. 거기에선 맘껏 숨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 널 처음 본 건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였어. 단발머리에 토끼처럼 입을 앙다물고 있던 넌,신고식으로 돌린 소주 한 사발을 눈 깜짝 않고 들이켜서 남자 선배들 코를 납작하게 했지. 미대 갈 돈이 없어 뜬구름 잡는 정치학과에 왔다고 했었니? 운동권 형들 따라 걸개그림 그리러 다니느라 수업을 곶감 먹듯 빼먹다가 쌍권총 아니 따발총으로 도배된 성적표를 받아 들고 낄낄거릴 때도 아둔한 난 그림에 대한 너의 병적인 집착을 알아채지 못했지. 그러다 '너의 그녀'를 만났어. 어느 겨울방학엔가 담배 연기 찌든 네 자취방에서 신줏단지처럼 꺼내 보여주던 칼로의 그림들. 원숭이와 흑고양이, 벌새들에게 둘러싸인 채 핏방울 뚝뚝 흘리는 여인에게서 대체 뭘 느끼라는 건지. 그래서 던진 질문이"이 여자는 왜 코 밑에 수염이 났어?"였고 넌 배꼽을 쥐고 웃어댔지. 칼바람 파고드는 옥탑방에서 네가 라면을 호로록 삼키며 들려준 칼로의 생애는 끔찍했어. 소아마비. 강철봉이 허리와 골반 자궁을 관통한 교통사고. 발가락부터 무릎까지 차례차례 절단해야 했던 수술. 그보다 더 아팠던 디에고 리베라와의 사랑. 네가 말했지. "난 칼로를 보면 힘이 나. 세상에 두려워할 일이 없지."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 네가 인천 어느 공단에 위장 취업했다는 소식을 들은 건 졸업 무렵이야. K라는 선배와 열애 중이라는 소문도 함께. 왜 그 남자일까 쓴웃음이 나더라. 마초에 골초였고 화염병은커녕 자기 손엔 먼지 한 톨 안 묻히면서 사상가입네 폼만 재던 가짜. 야무지고 똑똑한 네가 왜 그런 사람을 좋아했는지. 너 떠난 뒤 바람 타고 들려온 소문도 많았지. K가 도의원 됐다는 얘기 어느 음대생과 결혼했다는 소식 요즘엔 TV에도 나오던걸. 나이 많고 뚱뚱한 데다 여성 편력 가득했던 난봉꾼 리베라를 미워하면서도 그를 사랑했던 칼로를 이해할 것 같다고 넌 말했지.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지는 거라면서도 그런 운명적인 사랑 해보고 싶다고 했어. 아버지의 부재, 가난보다 지독했던 외로움. 그래서 기꺼이 사랑하고 기꺼이 상처받았던 걸까. 리베라가 후원자 나타샤 겔만을 한 송이 칼라꽃으로 묘사한 초상화를 보며 바람꾼들의 공통점이 보이지. 어떤 여자든 그녀가 간직한 가장 매력적인 모습을 포착해 부풀리는 마법! 혁명가적 포부에 말솜씨까지 현란했으니 칼로 같은 여전사(女戰士)인들 당해낼 재간 있었을까. # 난 어떻게 사느냐고? 출판사 몇 곳 옮겨 다니다 그마저도 두 아이 뒤치다꺼리한다고 그만두고 애인에다 엄마에 이젠 부처님 돼달라고 징징대는 남편과 온갖 궁상을 떨며 살고 있지. 돌아보면 우리가 그토록 매달렸던 혁명(革命)이란 게 별건가 싶어. 내겐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한 것이 혁명이나 다름없었거든 천둥벌거숭이 아이들을 사람 되게 키우는 것도 혁명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면 넌 날 비웃을까. 미술관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 먹다가 엉뚱한 생각을 했어. 칼로에게 아기가 있었더라면 리베라 같은 남자쯤 헌신짝처럼 버리지 않았을까. 기억나니? '우주, 대지, 나, 디에고, 세뇨르 솔로틀의 사랑의 포옹.' 아기가 된 리베라를 칼로가 안았고 그들을 대지의 여신이 다시 우주가 감싸 안은 그림. 누군가 그러더라. '소유할 수 없는 남자를 자식으로 삼아버린 칼로의 통쾌한 복수'라고. 말할 기운만 있어도 밖에 나가서 사고 치는 게 남자들이니 자식처럼 품고 살아야지 별수 있느냐던'고리짝' 할머니들 넋두리가 떠올라 피식 웃었지. 그나저나 칼로의 '푸른 집'엔 갔었니? 탱고 리듬 넘실대는 거리에서 체 게바라 같은 남자 만나 사랑에 빠진 거니? 한국 떠날 때 뱃속에 있던 아기는 어엿한 청년이 됐겠구나. 여전히 힘들 때마다 칼로를 떠올리겠지. 수술로 두 발을 잘라내고도"날개가 있는데 발이 무슨 필요가 있어?"하며 웃었다는 여자. 혹 서울 올 일 있으면 '인어의 약초'라고 한다는 마테차 한 봉지 사다주렴. 살아 있으면 만날 날 오겠지. 칼로의 이름으로 안녕! 비바 라 비다( Viva la Vida).
    Chosun ☜        김윤덕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차장 sion@chosun.co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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