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H/新줌마병법

가을, 당신을 위한 주례사

浮萍草 2015. 8. 31. 08:30
    결혼하길 잘했다는 이 남자, 다섯 가지 비결을 들어보니 존댓말로 싸우기, 맛집 찾기… 
    결혼이 맛있는 여행 되려면 '양념'은 가능한 적게 넣고 소소한 행복 만들어가야
    김윤덕 문화부 차장
    갑내기 아내와 결혼한 지 12년 된 어느 만화가가 허허실실 웃으며 말했어. "결혼 생활, 기대 이상입니다!" 이게 웬 낮도깨비 홍두깨로 꽃송편 빚는 소리인가 하여 한가위 달덩이처럼 복스러운 얼굴을 가진 그의 얘길 가만히 들어봤지. #
    집이 일터인 그는 365일 하루 24시간을 아내와 함께 지내. 둘 다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집돌이, 집순이라 아무 문제가 없대. 종일 민낯에 추리닝 바람으로 삼시 세 끼 함께 먹으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 지고 행복하다니, 대단하지? 몇 가지 비책(秘策)이 있었어. 첫째, 한집에 있지만 각자의 영역을 분명히 한대. 남편은 만화를 그려 생계를 책임지고, 아내는 알뜰히 살림을 담당하지. 둘째, 사생활을 철저히 존중해. 밥 먹을 때 잠시 마주할 뿐 종일 아무 말 안 하고 지내는 날도 많대.
    셋째는 '충고 안 하기'야. 자기는 진심 어린 충고인데 듣는 쪽은 잔소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너무 잘 아는데 상대가 꼭 집어 말하면 싸움만 되잖아? 모르는 척하는 게 고수. 입이 근질거려도 젓가락으로 허벅지를 찌르며 참는 거야. 넷째가 웃겨. 싸울 땐 반드시 존댓말 쓰기. 그러니까 '너, 미쳤어? 대체 왜 이래?' 하며 악쓸 상황이 '여보, 이성을 잃으면 안 되죠. 별안간 왜 이러는 거예요?'가 되는 거야. 개콘이 따로 없지? 만화가 왈, 존댓말로 싸우면 이성의 끈을 놓치지 않아서 좋대. 다섯째도 특이해. 맛난 음식엔 아낌없이 쓴다! 내 집 마련 위해 오늘 맛있게 먹을 양식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게 이 부부 철칙이야. 그렇다고 엄청 비싼 걸 먹는 것도 아니야. 집 근처에 작은 회사가 있는데 5000원만 주면 마을 주민도 구내식당을 이용할 수 있나 봐. 산보 겸 아내와 손잡고 나가 '스뎅' 급식판에 소시지랑 계란말이 담아 먹는 재미가 그만이래. 맛집보다도 맞집 찾아가는 과정이 훨씬 즐겁다는군. 참, 예쁘지? 하루하루 소소한 행복이 모여 큰 행복이 된다고 믿는 이 남자, 배시시 웃으며 이러더라. "결혼하니까 좋더라고요~."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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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이들처럼 결이 비슷한 부부는 세상에 많지 않아. 결혼이란 서로가 얼마나 다른 종류의 사람인지 확인해가는 여정이니. 각자 지닌 '정답(正答)'의 격차를 좁혀가는 여행이랄까. 자기와는 전혀 다른 생명체를 탐구해가는 수업이기도 하지. 그거 알아? 나이 칠십에도 영화 '대부(代父)'를 보고 밤새 알파치노 꿈을 꾸는 게 여자라는 걸. 말로는"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 하지만 내 아내가 김태희보다 예쁘다고 생각하는 남편은 세상에 한 명도 없어.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라고? 그럴 리가! 이심이체(二心異體), 각 심각체(各心各體)여서 '여행'하는 동안 별별 일이 다 생기는 거야. 가끔은 불청객이 끼어들어 소란을 피우기도 할 거야. 그럼 서로 삿대질도 하고 밤새 등을 돌린 채 눈물 콧물 찍어내며 씩씩댈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낙심할 건 없어. 순조롭고 평탄하기만 한 여행은 재미가 없는 법. 기왕이면 클라이맥스와 반전이 있어야 라스트신에서 기립박수를 받지. 사랑이 변할까봐 두렵다고? '나인 나'와 '결혼한 나'의 비율을 50대50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해봐. 패를 다 보여주지 말 것. 부부 사이에도 '밀당'이 필요하다고.운이 좋으면 어느 길목을 도는 순간 작고 어여쁜 '현자(賢者)'도 만날 거야. 그 현자로 인해 웃음 떠날 날 없다가도 잠 못 이루며 근심하는 날 또한 많아질 테지만 덕분에 사랑이 무엇인지, 슬픔이 무엇이고, 인생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지.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살라고는 안 할게. 그건 좀 억울하잖아? 다만 너희를 찾아온 어린 현자가 혼자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때까진 함께 있어줘야 해. 그것만 약속해. #
    어느 요리사가 그러더라. 행복한 결혼은 맛있는 요리와 꼭 닮았다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려면 양념을 되도록 적게 넣어야 하는데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라는 거야. '뭘 잘해줄까' 보다는 '뭘 하지 말까' 고민할 것! 그래야 둘 사이가 소박해지고 사랑 또한 오래간다는 거지. 어느 도예가도 비슷한 얘길 했어. 흙을 빚는 손의 힘이 너무 세거나 약해도 그릇이 찌그러지듯 애정이 너무 과하거나 모자라도 부부 사이에 금이 간다고. 어느 천문가는 아내와 남편이 자주 함께 하늘을 올려다 보라고 했지. 하늘, 그 너머 광대한 우주를 떠올리면 우리는 잠시 이 지구별에 머물다 가는 존재이고,사랑만 하고 살기에도 얼마나 짧은 인생인지 깨닫는다는 거야. '30인의 결혼축사'를 모아놓은 작은 책에서 읽었는데 어때. 그럴듯하지? 인생에 정답이 없듯 결혼에도 정답은 없어. 너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봐. 공부를 덜 했다고? 모르니까 사랑하고, 모르니까 뛰어든 거야. 함께 쥔 '사랑의 노'를 놓치지 않으려고만 애써봐. 손해만 왕창 본 여행이란 생각이 든다면 그럭저럭 잘 가고 있다는 증거야. 참, 사랑에 침묵은 금물이라고 얘기했던가?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란 세상에 없어. 맛있는 수다쟁이가 되라고. 자,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야.
            김윤덕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차장 sion@chosun.co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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