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광복 70년… 물건의 추억

34 스타들 사진과 만화 넘친 '책받침'… 박정희 대통령 "교육헌장 넣어라"

浮萍草 2015. 12. 31. 10:30
    1979년 4월 30일 청와대 접견실에 시중의 불량 학용품 200여점이 전시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1시간 동안 직접 공책에 글씨도 써 보고 수채화용 팔레트도 여닫아 보더니 참석한 문구업자들에게 일갈했다. 
    "이렇게 형편없는 학용품을 팔면 어린이들이 자기 나라에 대해 멸시감을 갖게 됩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책받침에 관해 구체적 요구를 했다. 
    "영문이나 만화 그림은 없애고 산수화(山水畵)나 고적 사진,국민교육헌장 등을 넣는 게 좋겠다"고 문교부 장관에게 말했다(조선일보 1979년 5월 1일자).1970
    년대 학생용 책받침에'마징가 제트''로보트 태권 브이''태권 동자 마루치 아라치'등 인기 만화영화 캐릭터들이나, '원더우먼' '600만불의 사나이' 등 외국 스타 
    사진류로 도배가 되자 대통령까지 한마디 한 것이다.
    1970~1980년대에 학생들 사이에 유행했던 다양한 디자인의 책받침들.

    책받침만큼 다목적으로 쓰인 학용품도 드물다. 연필 글씨가 잘 써지라고 공책 갈피에 끼우는 물건이지만,판판한 면에 그림이나 글씨를 넣어 간직하거나 전할 수도 있었다. 1993년 7월 여당 대표이던 JP(김종필)는 야당의 퇴진 공세에 시달리고 '불편한' 보도들이 이어지자 특별한 책받침을 만들어 출입 기자들에게 하나씩 나눠 줬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라"는 불경 글귀가 거기 적혀 있었다(조선일보 1993년 7월 11일자). 본래 용도로 책받침을 쓰는 일이 거의 사라진 오늘도 홍보·광고용 책받침은 남아 있다. 뭐니뭐니해도 책받침의 가장 화려한 변신은 좋아하는 스타 사진을 간직하는 앨범이 된 것이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당국은 요란한 책받침 그림들을 퇴출시켜 보려고 애를 썼다. 1981년 공업진흥청은 전국 초등학교 5~6년생 1만1000명을 대상으로 학용품 그림에 관한 설문 조사까지 했다. 공진청은 "책받침에 '만화보다는 학습에 도움이 되는 그림을 인쇄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71%로 압도적"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조차도 과연 그 결과를 어린이들의 진짜 여론이라 믿었는지 의심이 든다. 1980년대엔 잡지에서 오려낸 스타 사진을 문구점에 가져가 플라스틱을 코팅해 만드는 맞춤형 책받침이 유행했다. 책받침에 코팅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10대의 우상인가 아닌가를 가르는 기준이 됐다. 소피 마르소,브룩 실즈,피비 케이츠,제임스 딘,주윤발,이소룡 등 청춘들을 설레게 했던 '책받침 스타'들의 전설은 오늘날까지도 회자된다. 2014년 7월 48세의 소피 마르소를 인터뷰한 조선일보 기사도 그녀와 책받침에 관한 옛 이야기로 시작했다.
           김명환 조선일보 사료연구실장 wine8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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