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광복 70년… 물건의 추억

31 童心 설레게 했던 '연막 소독차'… 市 관리 "전시행정이다" 고백도

浮萍草 2015. 12. 10. 09:28
    1962년 7월 17일 밤 8시 제6관구사령부(수도군단의 전신) 소속 차량들이 특별한 소탕작전을 위해 서울 시내로 출동했다. 
    소탕 대상은 다름아닌 모기와 유충, 전염병균들이었다. 
    시의 요청을 받은 군이 DDT 연막 살포에 나선 것이다. 
    군용차의 소독 작전은 196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7080세대들의 어린 시절 추억으로 남아있는 연막 소독의 역사는 1960년대 초 군의 지원 속에 시작됐다. 
    그 무렵 전염병균과 해충, 특히 모기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모기가 옮긴 뇌염으로 1967년 여름의 경우 150여명이 사망했다.
    주택가를 도는 연막 소독차를 동네 아이들이 뒤따라 가고 있다. 1976년 6월 촬영된 장면이다. /조선일보 DB

    연막 소독차가 동네에 나타나 석유 냄새 풍기는 새하얀 연막을 뿜어내면,개구쟁이들은 모두들 하던 일을 멈추고 차 꽁무니를 따라 달렸다. 집에서 밥 먹다가도 맨발로 뛰쳐나왔다. 너무 멀리 쫓아갔다가 집을 잃어버린 아이들도 있었다. 남루한 모든 풍경을 뒤덮어 잠시 사라지게 만드는 흰 구름 같은 연막은 하늘에 떠 있는 듯한 환상과 설렘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연막 소독엔 문제도 없지 않았다. 뿌린 약품의 절반 이상은 엉뚱한 곳에 허비되는 데다,바람이 세게 불면 별 효과가 없었다. 어떤 어머니들은 '연막이 회충에 특효'라며 소독차만 오면 아이들을 내보냈다지만 살충제 연막은 건강에 해로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막차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행정 당국이 질병 퇴치를 위해 뭔가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수단으로 이만한 게 없기 때문이었다. 연막차들이 소독이 더 필요한 변두리보다는 도심 대로에 집중됐던 것도 '보여 주기'에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1975년 어느 지방의 보건소 방역반은 시청 간부 자택 주변에만 연막 소독을 했다가 주민들의 분노를 산 일도 있다. 실제로 서울시의 어느 관계자는 "효과도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막 소독을 고집한 것은 전시행정의 표본"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조선일보 1999년 2월 23일자). 지난 7월 15일 질병관리본부는 '비효율적인 연막 소독을 그만 하라'고 각 시·군·구청에 요청했다고 한다. 필요한 곳에만 살충제를 분무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막 소독 중단' 발표는 1990년대 말부터 반복돼 왔다. 그래도 연막차는 잊을 만하면 나타났다. 심지어 지난 6월 메르스 사태 때도 일부 지역에선 호흡기 바이러스 퇴치와 무관한 연막소독을 했다가 논란을 빚었다. 전시효과 만점인 '새하얀 연막 분사'의 유혹을 우리 관청이 떨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연막소독차가 과연 사라질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김명환 조선일보 사료연구실장 wine813@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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