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땅의 歷史

서천 갈대밭과 모시 물들이는 여자 박예순

浮萍草 2015. 12. 30. 09:34
    갈대밭을 연인들이 걷습니다… 여자는 그 옆에서 모시를 짭니다
    1400년 전 나당 연합군 부여로 진격한 금강변 서천 신성리 갈대밭에는 사계절 사람들이 몰린다
    박예순은 그곳에서 모시를 짜고 쪽물을 들인다 가난해서 시작한 모시가 지금 천직이 되었다
    남 서천군 금강변에는 갈대밭이 있다. 밑도 끝도 없이 아득하게 크고 넓다. 박예순은 그 갈대밭 옆에서 모시를 짠다. 쉰아홉 살 되도록 평생 바느질을 하고 모시에 물을 들인다. 못 먹고 못살던 시절 갈대밭은 농민들이 뿌리를 캐서 삶아 먹었던 한스러운 밭이었다. 지금 갈대밭은 사시사철 연인과 가족 객들이 찾는 이색 풍경이 되었다. 가난 탓에 먹고살려고 손에 쥔 모시에 염색이지만 지금 박예순에게 모시는 천직이다. 그녀가 말했다. "가난 '덕분에' 내 할 일을 찾게 되었다"고. ㆍ아주 옛날 이야기―기벌포와 갈대밭
    서기 656년 백제 마지막 왕 의자왕이 주재한 회의에서 좌평 성충이 이리 말했다. " 머지않아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 적군이 쳐들어오면 육로로는 탄현(炭峴)을 넘지 못하게 하고 수군은 기벌포(伎伐浦)에 못 들어오게 한 뒤 험한 지형에 의지하여 싸우시라." 기벌포는 전북 군산과 충남 서천 사이에 있는 금강 하구다. 수도 부여 남서쪽으로 50km 정도 떨어져 있다. 사위(四圍)가 탁 트여 뻘에 빠진 적군은 궁수들의 화살을 피할 수가 없는 곳이었다. 주색에 빠진 의자왕은 그치라는 말에도 끝까지 바른말 해대는 성충을 옥에 가뒀다. 4년 뒤인 660년 7월 9일 13만 대군을 실은 당나라 소정방 함대 2000척이 기벌포에 나타났다. 신라 수군 함정 100척도 함께였다. 나당 연합 함대는 뻘 위를 버드나무 가지를 엮은 멍석으로 덮어 군사들을 금강 좌우 측 강변으로 상륙시키며 부여로 북상했다. 같은 날 신라군 5만 병력은 무주공산인 탄현을 넘어 황산벌에서 계백의 오천 결사대를 몰살시키고 부여로 진군했다. 기벌포에 상륙한 나당 함대는 금강 좌우 측 강변으로 병사들을 볶은 콩처럼 쏟아붓고 빠른 속도로 북상했다. 중국 사서 '구당서'에는 '(적군이) 저절로 무너졌다'고 적혀 있다. 그해 백제는 멸망했다.
    신성리 갈대밭에 겨울이 왔다.1400년 전 나당 연합군이 휩쓸고 간 금강변은 지금 평화롭다. 갈대밭 한쪽 편에는 갈대밭을 닮은 미로가 설치돼 있다.갈대밭을
    보며 자라난 서천 여자 박예순은 지금 모시 장인이다. /박종인 기자

    13만 대군이 수륙 병진하던 길목에 신성리가 있다. 한산면이다. 신성리 강변에는 갈대밭이 있다. 서천군청에 따르면 갈대밭은 폭 200m에 길이 1㎞, 면적은 7만5000평이라 하는데 두 눈으로 보아야 느낄 뿐 숫자로는 규모를 짐작할 수 없다. 백제가 쑥대밭이 됐을 그때도 갈대밭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갈대가 뿌리 내린 그 늪지는 최근 생긴 땅이 아니다. 서천 토박이 이병철(64)이 말했다. "나 어릴 때 신성리는 허허벌판에 갈대밭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뿌리라도 캐 먹겠다고 들어와서 집을 짓고 논을 개간하고…." 뿌리는 찌고 삶아서 먹고, 짚 대신에 갈대로 생필품도 만들었다고 했다. 상상해본다. 1355년 전 그날 북과 징을 두드리며 강 양쪽을 새카맣게 물들였을 당나라와 신라 군사들을 마치 영화처럼 저 갈대밭과 중무장한 군사들이 중첩되면서 금강변에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영화'공동경비구역'(감독 박찬욱·2000년)에서 지뢰를 밟은 국군 이병현을 인민군 송강호가 깐족대면서 살려준 장면을 이곳에서 찍었다. 주민들 기억으로는 "이 영화 찍은 곳 왔노라"며 방문객들이 오기 시작한 때가 7년 전,그러니까 2008년 무렵이었다. 이후 방문객 사태(沙汰)가 터지고 지금은 전남 순천만과 해남 고천암호, 경기도 안산 시화호와 함께 통칭 대한민국 4대 갈대밭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ㆍ모시 물 들이는 여자 박예순
    모시 장인 박예순.
    한산 여자들은 모시를 짜고 소곡주를 담갔다. 9세기 통일신라 경문왕 때에도 당나라에 한산모시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으니 그 연원은 최소 1000년이 넘었다. 소곡주는 백제 때부터 담갔다. 서천 노변은 한 집 건너 모시 집이요, 그 사이에 소곡주 양조장이다. 박예순은 그 서천에서 태어나 지금도 모시를 만진다. "…나는 다른 여자들처럼 모시 길쌈을 하는 친정 엄마 도우며 모시를 배웠다. 솜씨 좋고 배려심 깊은 할머니한테서 바느질도 배웠다. 1970년에 아버지가 도장 잘못 찍는 바람에 가세(家勢)가 기울었다. 소 빼고 모든 집안 살림에 빨간 압류딱지 붙는 거 보고 중학교 못 가고 서울에서 식모살이를 했다. 3년 하고 나서 열일곱 살 때 봉제회사에 들어가 미싱을 돌렸다. 다른 사람보다 속도가 훨씬 빨라서 다들 이뻐했다. 나이를 네 살 속여서 취직했는데 결국 언니들보다 먼저 반장이 됐다. 별의별 미싱 다 돌려봤다. 나이가 차서 중매로 고추 농사 짓는 남자와 결혼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친정에서 배우고 사회에서 익힌 대로 모시를 짜고 바느질로 돈을 벌었다." 다른 사람이 한 필을 짤 때 그녀는 세 필을 짰고 바느질도 기가 막혔다. 1995년 모시 짜기 경진대회에 나가서 4등을 했다. 못 배워 가난한 게 한(恨)이어서 박예순은 공부를 했다. 모시 짜기 대회에 나가면 상장을 받았고 농업진흥청과 기술센터에서 교육받으라고 하면 무조건 가서 수업을 들었다. 천연 염색도 배웠고 홈페이지 만드는 법도 배웠다. 배우면서 아이들 체험학습장도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염색 공방도 만들어 명함도 팠다. 그러다 2007년 막내아들 대학 보내고 박예순은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마쳤다. 검정고시 공부하면서 그해에 농업진흥청 경진대회에서 세모시 한복과 장신구로 최우수상을 받고서 쓰러져 사흘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지금은 방송통신대학 가정과 학생이다. 모시를 베틀에 걸고 짜려면 우선 모시 껍질을 가느다랗게 찢어야 한다. 앞니로 줄기 한쪽 끝을 물고 당겨내는 '모시 째기' 작업이다. 수십 년 모시를 째다 보면 앞니에 홈이 파진다. 이게'이골'이다. 한산 여자들은 모시 째는 데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이골이 나지 않으면 모시 째는 작업도 더디고 세(細)모시도 나지 않는다. 일부러 틀니에 이골을 내달라고 주문하는 늙은 여자들도 있다. 그러다 허기가 지면 모시 잎을 쪄서 밥을 짓고 떡을 만들고 국수를 해 먹곤 했다. ㆍ걸레장이의 수수께끼
    마량포구 달맞이
    박예순은 이골이 날 때까지 모시를 째고 짓다가 염색을 배웠다. 2009년 문화관광부와 서천군이 '한산오일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산모시, 공작선,대장간,짚풀공예,솟대 제작 등 한산 장터를 상징하는 장인들에게 브랜드를 부여하고 후원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이들은 한다(韓多)공방이라는 영농조합까지 만들었다. 한산 장터는 이후 대표적인 관광 장터로 떴다. 지난여름 갈대밭 둑방길 아래 한다공방의 체험관이 생겨났다. 박예순은 갈대밭 옆 체험관과 자기 작업장에서 모시를 만진다. 자기가 보아도 솜씨가 좋으니, 만지면서도 늘 신기했다. 2009년 외삼촌 회갑연이 열렸다. 모처럼 뵌 외당숙에게 염색 공방 명함을 드렸다. 말없이 명함을 응시하던 그가 말했다. "…걸레장이가 되다니 피는 못 속이는구나." "걸레가 아니라 한산모시"라고 대드는 그녀에게 어르신이 말을 이었다. "네 어미 조상 대대로 옷감을 물들여 궁(宮)에 들이는 염색 장인이었느니라." 순간적으로 온몸에 소름이 끼치며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 지금 박예순에게 모시는 경제와 무관하게 후계를 이어가야 할 천직이며 소명(召命)이 되었다. ㆍ철새 찾아오는 갈대밭
    백제 멸망 3년 뒤인 663년 백제 부흥을 꿈꾸는 세력과 배 1000여 척에 승선한 일본 지원군 3만7000여명이 기벌포에서 당나라 수군과 결전을 벌였다. 하지만 기상 상황을 무시한 성급하고 무모한 공격으로'삼국사기'에 따르면'가옥은 황폐하고 시체는 풀더미처럼 누웠다 (屋凋殘屍如莽)'. 백제 부활은 꿈으로 끝났다.
    박예순이 만든 모시 조각보.

    지금 금강은 평화롭다. 겨울 기벌포는 광활하다. 서천군이 해변에 만든 장항스카이워크는 이 옛 해전터를 굽어본다. 나당 연합군이 행군한 금강변에는 철새들이 날아다닌다. 그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태어난 박예순은 국졸 미싱공에서 솜씨 좋고 후계 걱정하는 장인이 되었다. 그녀가 말했다. "이제 나는 내 시간을 많이 갖는 시골 아줌마가 되었다." 아줌마가 창 너머 갈대밭을 바라본다. 신성리 갈대밭은 몰래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이 틈입할 뿐 끔찍한 전쟁 흔적은 간 곳 없다. 평생 모시를 만진 이 여자는 며칠 전에야 자기 오른쪽 어깨 회전근개가 파열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시골 여자의 일생과 모시의 일생이 궁금하고 갈대밭의 추억을 원하거든 지금 서천으로 가보라. ㆍ[서천 여행수첩]
    〈볼거리〉 1.신성리 갈대밭: 내비게이션은 '신성리갈대체험관' 혹은 '한산면 신성로 500'. 주차장이 넓다. 갈대밭 안쪽에 미로처럼 산책로가 있다. 운동화를 신을 것. 땅이 질척하다. 2.신성리갈대체험관: 박예순을 비롯해 한다공방 장인들 작품을 설명을 들으며 구경하고 구입할 수 있다. 공방은 월요일 휴무. (070)4103-1651 3.두메산골물듬이: 박예순이 운영하는 모시 및 천연 염색 체험장.민박도 가능하고 농산물 구입도 가능하다. 시초면 후암리1구 405번지 (041)952-0934, cafe.daum.net/dumesangolmuldmi. 4.한산오일장: 정리가 잘된 시골 장터. 각종 공방 구경과 먹거리 체험을 할 수 있다. www.gohansanjang.net 5.한산모시관: 한산모시에 관한 모든 것을 소상히 볼 수 있다. 전통 장인 모시 짜기 시연도 볼 수 있다.
    6.장항 스카이워크: 나당 연합군과 백제군이 맞붙은 기벌포 바다 전망대. 7.마량포구: 해돋이를 볼 수 있는 서천군 서쪽 포구. 달맞이도 할 수 있다. 〈맛집〉 농부의 식탁 모시: 서천군 농산물로 만든 농가 맛집. 흙공예를 전공한 토박이 박호선과 요리를 하는 올케가 운영. 인테리어도 예쁘다. 불고기정식 1만3000원, 모시국수 불고기 세트 9000원, 모시떡국 7000원 등. 서천군 기산면 신막로 121, (041) 951-6728
         박종인 조선일보 여행문화 전문기자 sen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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