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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햄릿의 열정' 후배들을 위하여 배우로 돌아온 유인촌

浮萍草 2015. 8. 11. 08:00
    배우로 돌아온 유인촌. /이경호 기자
    로 데뷔 45주년을 맞고 있는 명배우 유인촌이 요즘 열다섯 살이 된 자신의 극장 유시어터에서 젊은 아티스트들과 근사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무대와 객석을 장악하는 배우로서의 본능에 은빛 머릿결의 여유를 더하며 새로운 만남과 해후를 시도하는 2015년 여름의 유인촌을 만난다. 예순넷 : 아직 아무것도 선택하거나 결정하지 않은 나이.삶과 일,사랑,슬픔이 기로처럼 얽혀 있는 시간의 경계면. 희끗한 은백의 머릿결로 여름이 가득한 극장 입구에 서서 유인촌은 자신의 나이를 그렇게 정의한다. 대한민국 배우 중 ‘햄릿’을 가장 많이 연기했던 배우이자 22년간 양촌리 김 회장의 둘째 아들로 열연하며 국민배우 대열에 올라섰던 그를 우리는 오래도록 ‘9시 뉴스’ 이외의 방송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ㆍ문광부 장관·예술의전당 이사장 역임
    문광부 장관 재임 시절인 2008년 5월, 서울 조계사 봉축법요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장면. /조선일보DB

    2004년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취임을 시작으로 그는 3년간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대통령실 문화특별보좌관 그리고 예술의전당 이사장에 이르기까지 9년에서 조금 모자라는 시간을 정치인 또는 문화 행정가로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의 데뷔 무대였던 <오셀로>의 ‘이아고’나 ‘사느냐 죽느냐’로 번민했던 ‘햄릿’ 이상으로 그의 정계 활동은 늘 갈등과 ‘클라이맥스’를 연출하며 그를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불안과 격정과 안도를 반복하게 했다. 그 폭포수가 쏟아지는 듯한 정신없는 나날 속에서 그는 배우로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얻은 것은 행정 영역을 경험하며 갖게 된 폭넓은 시각과 통찰력,잃은 것은 나 개인의 안위와 배우로서의 커리어. 하지만 모든 경험은 다 좋은 것이며 그래서 문광부 장관과 문화특보로 활동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어쩌다 이런 호랑이굴로 들어왔지 싶은 두려움을 느낄 때도 있었고 구설수와 오해에 휩싸여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예민하게 굴기보다는 기민하게 대응하자는 쪽을 선택하며 나 스스로에게 떳떳한 길을 걸었으니까. 무엇보다 공직에 나가 고군분투했던 시간을 끝내고 나니 무대가 더 없이 따뜻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굴곡의 깊이를 아는 만큼 연기의 결도 더 풍성해졌으니 기쁘고 다행스러울 뿐이다.” ㆍ 9년간의 ‘외도’ 끝내고 다시 무대로
    지난 2012년 예술의전당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그는 자신의 레퍼토리인 <홀스또메르>와 <파우스트>를 들고서 지방의 작은 극장을 순례하며 전국에 산재한 관객을 찾아나서기도 했다. 특히 도시의 극장이 아닌 초자연의 환경에서 공연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에 강원도 봉평에 달빛극장을 만들기도 했다. 별과 해를 가져다 조명으로 쓰는 천혜의 노천극장 무대를 직접 쌓아올리기 위해 포클레인과 지게차 면허를 취득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올해는 그가 1999년에 문을 연 청담동 유시어터가 개관 15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정글북>과 <백중사 이야기> 등‘개관 15주년 기념 페스티벌’작품이 연이어 공연되며 젊은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인‘1일 1만원’ 대관료 프로젝트를 준비해 열다섯 살이 된 유시어터의 역사에 새로운 깃발을 꽂고 있다.
           이일섭 웰빙라이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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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인촌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좋은 길을 걷는 것
    작년 개최된 '고궁에서 우리 음악듣기'의 진행 중 출연자인 안숙선, 황병기(오른쪽)씨와 함께. /이경호 기자
    ㆍ후배들에 ‘활동’ 공간 열어주고 함께 공연도 국의 대배우 로렌스 올리비에가 ‘햄릿’에 도전하면서20대는 제대로 아는 게 없어서,40대는 모든 게 정점에 올랐지만 교만해서,60대는 잘 알지만 체력이 예전만 못해서 평생을 제대로 된 ‘햄릿’을 연기하지 못했다는 회한과 깨달음을 토로한 적이 있다. 우리의 대배우 유인촌도 이제 배우 인생의 절정을 지나 64세의 황혼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일찌감치 올리비에의 소회에 느낀 바가 있었는지 젊은 배우들과의 하모니에서도 오히려 그들을 이끌고 아우르는 힘을 잃지 않고 있다. 정확을 넘어 딕션이 살아 있는 발성과 파워와 리듬이 공존하는 제스처로 채워지는 그의 클래식한 연기는 최근작 <페리클레스>를 그의 연기 인생에 새로운 축으로 만들며 유인촌을 ‘우리 시대의 대배우’로 절감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항상 무대에 선다는 일념으로 몸과 마음을 관리하고 있죠. 60세가 넘은 지금에야 연기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됐고 이제부터가 전성기라는 희망을 새기게 됐어요. 더구나 예전엔 몰랐던 리허설의 즐거움도 알게 됐죠. 대부분 저보다 어린 연출가와 상대 배역을 상대로 내가 원하는 호흡을 몸으로 일깨워주는 일이 너무나 흥분돼요.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움직여달라고 얘기하는 것보다 연습하는 내 모습을 그들에게 더 많이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내 연기에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를 스스로 찾아내게 하는 일은 오랜 연륜을 갖고 있는 내 소임이기도 하죠. 그럼에도 리허설엔 늘 실수가 따르죠. 예전엔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도리어 즐거워요. 실수만큼 좋은 경험이 없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죠.”
    1996년 12월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빠담 빠담 빠담>의 티저.전성기 시절 그와 윤복희의
    매력이 담겨 있다.
    9년에 달하는 정치 외도에서 돌아와 무대 위에 좌정하고 파묻히고 이내 뛰어오르려는 대배우 유인촌이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늦게 그리고 오래가라’는 영원에 접근하는 강령이다. 찰나로 느껴지는 생의 덧없음을 지울 수 있는 것은 시작과 끝보다는 과정의 단계가 길게 이어지는 게 좀 더 온전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ㆍ유인촌이 말하는 건강한 삶
    ● 오랜 공직 생활을 뒤로하고 다시 배우로 돌아온 것은 예정된 수순인가요. “무대는 내게 고향과 같은 곳이다. 삶이란 너절한 프레임 속에서 너절하지 않게 살 수 있는 것이 배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하나요. “어떻게 늙을까? 추하게 늙을까? 멋있게 늙을까? 물론 맨 끝의 상황으로 가자고 종용한다. 예전엔 내 얼굴이 하얗게 센 머리와 잘 어울린다는 걸 몰랐다. 나이가 드는 일을 받아들이는 것,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새파란 젊음보다 더 의미 있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얘기다.” ● 어떤 연기가 명배우의 연기라고 생각하는지.“무대에 서서 가공의 무엇을 보여주기보다는 살아온 것이 무대 위에 자연스레 배어나는 연기.” ● 여러 가지 생각과 고민, 스트레스 등을 어떤 방법으로 정리하고 해결하나요. “내겐 걸으면서 판단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나는 걷기 좋은 길을 많이 알고 있다. 국립극장을 지나 남산타워로 올라가는 길이 이맘땐 가장 호젓해 좋고 북촌의 골목길은 운치와 정다움이 있어서 사계절 내내 좋다. 청계천 지류가 한강 물줄기에 합류하는 서울숲 근처의 여울목은 사방으로 탁 트여서 마음속 문제를 해결 하는 장소로 그만이다. 장관 재임 시절에도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광화문 청사부터 걷기 시작해 그곳을 지나가곤 했다.”
           이일섭 웰빙라이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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