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진영에 깃든 선사의 삶과 사상

30 눌암식활(訥岩識活)

浮萍草 2015. 10. 30. 10:08
    “호랑이 외호하고 비둘기는 경청”
    山澤間癯容 깊은 산골짜기 수척한 얼굴로 能調禽馴獸 능히 새와 짐승을 길들이고 相對道氣喜 깊어가는 수행의 즐거움에 三十年如一日 삼십년이 하루와 같았네
    암사에 모셔진 눌암식활(訥岩識活, 1752~1830) 선사 진영에 실린 조진화(趙晉和, 1799~1828 활동)의 영찬이다. 조진화는 순조 연간에 교리,순천부사,사간원 대사간,이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이 찬문은 그가 순천부사로 지내던 1811년에 지은 것으로 당시 눌암스님의 세수는 59세였다. 내용만 보면, 이는 영찬이라기보다 스님을 뵙고 나눈 감흥을 전달한 글로 여겨진다. 눌암스님은 16세에 선암사로 출가해 상월새봉(霜月璽封, 1687~1767)-용담조관(龍潭慥冠)-혜암윤장(惠庵玧藏)의 법맥을 계승했다. 상월스님이 선암사에서 대화엄법회를 개최하고 화재로 소실된 선암사를 중창하였듯 눌암스님도 선암사의 선풍을 진작하고 도량을 일으키는데 노력을 다했다. 1789년에 스님은 선암사 원통전에서 원자 탄생을 기원하는 백일기도를 주관했고 순조의 탄생으로 선암사는 왕실의 비호를 받게 됐다. 1797년에 12조례를 제정해 칠전(七殿) 선객이 수행정진에 매진할 수 있게 했고 1818년에는 화재로 소실된 대웅전,요사,누(樓)를 중건해 오늘날 선암사의 가람을 완성했다. 눌암스님의 행적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일화는 영찬에 밝힌“능히 새와 짐승을 길들였다”는 사건이다. 출가 후 스님은 금강산과 묘향산에서 호랑이의 수호를 받으며 수행했다. 이를 상징하듯 진영에는 두 마리 호랑이가 스님 좌우에 그려져 있고 상황을 설명한“의상굴에서 공부할 때 호랑이 두 마리가 3년을 외호하였다”와“묘향산 법왕봉 아래서 호랑이 한 마리가 한 달 반을 외호하였다”는 글이 적혀 있다. 호랑이 아니라 경상에는 비둘기가 그려져 있는데,이 또한“선암사에서 큰 법회를 열어 설법할 때 비둘기가 날아와 고개를 숙여 설법을 들었다”는 또 다른 이적을 표현한 것이다. 눌암스님의 수승함을 상징하는 호랑이와 비둘기는 진영만이 아니라 승탑에도 조각될 정도로 제자들에게 중요한 존재로 인식됐다. 이런 인식은 새와 짐승을 길들인 스님의 수행의 깊이를 탄복했던 조진화의 글이 진영에 기록되는 일로 이어졌을 것이다.
    ☞ 불교신문 Vol 3145 ☜      
    해제ㆍ설명= 정안스님(불교문화재연구소장) / 이용윤(불교문화재연구소 불교미술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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