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이건희의 세계 1위 방정식

2 이건희가 평생 친구로서 마음을 준 대상

浮萍草 2015. 11. 6. 19:21
    건희는 부산사범부속 초등학교 5학년때인 1953년 일본의 도쿄로 유학을 떠났다.
     ‘선진국을 보고 배우라’는 아버지의 지시였다. 
    일본말도 배워야 했고, 공부도 해야했다. 
    친구도 없었고, 또 집으로 돌아와 봐야 아버지,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상당히 외로웠을 것이다.
    <나면서부터 떨어져 사는 게 버릇이 돼서 성격이 내성적이 됐고,친구도 없고 그러니까 혼자 생각을 많이 하게 됐고,생각을 해도 아주 깊이 하게 됐다…. 
    가장 민감한 때에 민족차별, 분노, 외로움, 부모에 대한 그리움. 이 모든 걸 다 느꼈다.>
    그가 한 인터뷰 중의 한 귀절이다. 
    중1때 그는 집에서 페키니스라는 개를 기르기 시작했다. 
    페키니스를 친구삼아 놀았고 그후 지금까지 개는 그의 평생 친구로서 아이스크림을 같이 나누어 먹고 한방에서 잠을 자며 때로는 직접 목욕도 시켜주고 빗질도 
    해줄 정도로 친한 대상이 되었다. 
    그가 개를 좋아하는 이유는 ‘거짓말 안하고 배신할 줄 모르는 충직함’ 때문이라고 훗날 술회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개. /홍하상

    이건희 회장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알아주는 애견가에 속한다. 중학교를 다니면서 특기할만한 것 중의 하나는 그가 1200~1300편의 영화를 보았다는 것이다. 1200~1300편이면 그 무렵 일본에서 10년간 만들어진 영화 편수이다. <영화를 감상할 때면 대개 주인공에게 치중해서 보게된다. 그런데 등장 인물 각자의 처지에서 보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람의 인생까지 느끼게 된다. 거기에 감독, 카메라맨의 입장에서 두루 생각하면서 보면 또 다른 감동을 맛보게 된다.> 그가 권하는 영화 감상법이다. 그는 영화를 볼 때 주인공 뒤의 배경까지도 본다고 알려져있다. 이런 취향은 훗날 VTR을 만들 때 반영된다. VTR을 생산하기에 앞서 외국제품을 뜯어서 그 내부를 본다. 거기에 들어가 있는 부속 하나하나의 역할과 만든 회사까지도 모두 보게 만들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한국인 프로레슬러 역도산(力道山·1924-1963)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이건희도 역도산에 매료되어 있었다. 이건희 어린 시절의 일본유학은 3년으로 끝난다. 중1을 마치고 귀국, 서울 사대부중에 편입한 것이다. 고교도 서울사대부고를 다녔다. 고교 때는 레슬링부에 들어간다. 역도산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레슬링은 2학년말까지 계속된다. 웰터급 선수로 운동을 했고, 전국대회에 나가서 입상을 하기도 했다. 그가 훗날 레슬링협회 회장이 된 것이나 비인기종목이었던 레슬링을 88서울올림픽 때는 금2,은 2,동5개라는 메달밭으로 가꾸게 된 것도 고교시절 그가 레슬링을 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스포츠맨십은 경영과 자주 접목된다. 93년 신경영을 주창할 당시,<심판이 없는 골프에서는 자율을,야구에서는 팀워크를,럭비에서는 투지를 배워야한다> 고 그는 설파했다. 그러면서 근대 5종 경기를 빗대 경영자의 5대 종목을 1.기술에 대한 지식,2.경영에 대한 감각,3.컴퓨터에 대한 관심,4.제1외국어, 5.제2외국어라고 빗대어 설명 하기도 했다.
    Premium Chosun ☜        홍하상 작가 hasangstory@naver.com

    草浮
    印萍

    일본 근로자들이 불량품을 만들지 않는 비결
    견 그는 사색적이고, 연구에만 몰두하는 듯이 보이지만,실제로 그는 상당한 스포츠맨이며 그러한 자질들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길러진 것들이다. 
    서울 사대부고를 졸업한 이건희는 국내에서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일본 와세다 대학으로 건너간다.
    
    ㆍ와세다 유학
    그의 부친 이병철은 이건희에게 다시 ‘선진국을 배우라’고 권유한다. 이병철도 와세다 대학 상과 출신이다. 1961년의 일이다. 이건희는 와세다 경영학과로 진학했다. 학창 시절 책읽기를 좋아하는데다 일본 역사에 관심이 많아 거기서 많은 교훈을 얻었다고도 한다. 그는 와세다 대학 시절, 일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일본에서 프로레슬러로 당대를 풍미했던 역도산도 골프장에서 자주 만났고 사기나 절도범 중에서 전과 20범같은 최고수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연구를 했다. 심지어는 1류 야쿠자들과도 퍼블릭 코스에서 같이 골프를 치며 1년간 놀아보기도 했다. 그가 그런 부류들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어느 분야에서나 톱(top)은 뭔가가 있기 때문에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결론도 내렸다. ‘1류란 자신이나 일에 대해 철저한 사람들이고 인간미가 넘치며 벌줄 때는 사정없이 벌 주고 상을 줄 때는 깜짝 놀랄 정도로 준다는 것이다.’
    1970년대 중반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암수술을 받은 뒤 처음으로 야외에 모인 가족들.왼쪽부터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건희 삼성 회장,고(故) 이병철 회장,이명희 신세계 회장. /신세계 제공

    그렇다면 한때 일본이 상품으로서 세계를 제패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20분 정신>을 얘기한다. 일본사람들은 아침8시까지 출근하라고 하면 7시50분에 사무실에 도착해서 전화기나 팩스를 닦고 서류를 정돈하는데 비해 미국 사람들은 8시 5분에 사무실에 나타나며 한국 사람들은 8시 정각이나 플러스 마이너스 1분에 온다는 것이다. 또 퇴근 할 때도 일본사람들은 10분 늦게 퇴근하면서 그 10분 동안 기계를 닦고 정리정돈을 하고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사람은 기계의 나사를 조이다가도 퇴근시간이 되면 멈추고 가버린다. 이것이 한국과 일본, 미국의 차이라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의 출퇴근 전후의 그 <20분 정신>이 결국은 불량을 없애주고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는 그 20분을 이렇게 계산해낸다. 삼성그룹은 18만명의 직원이 있다. 그 20분을 물리적으로 계산해보면 1년에 7000명을 고용한 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이걸 금액으로 따지면 89년 당시 1000억원이다. 이건희는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일본과 비지니스를 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
    Premium Chosun ☜        홍하상 작가 hasangstory@naver.com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