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이건희의 세계 1위 방정식

1 까만 고무신 신던 이건희, 흰 고무신 생기면 아끼겠다고 구석에 숨겨

浮萍草 2015. 10. 25. 15:00
    이건희와 장난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2일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청년희망펀드에 2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한다고 삼성그룹이 밝혔다. 이 회장은 아버지 이병철 회장 세대를 이어 대한민국 산업계를 이끌어온 2세대 총수들 가운데 얼굴이다. 총수 1세대가 대한민국 경제근대화의 초석을 낳았다면 그가 주도한 2세대는 대한민국 경제를 세계화시켰다. 이 회장의 삶과 업적을 시리즈로 되돌아본다./편집자 먼저 어린 시절의 이건희부터 살펴본다. 이건희 회장은 세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진 않다. 이건희는 1942년 1월9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당시 선친인 이병철은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서 삼성상회를 경영하고 있었다. 삼성상회는 청과물과 건어물을 취급하는 무역회사로 이병철이 이제 막 사업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때였다. 당시 대구에는 이건희 위로도 6명이나 되는 자식들이 있었으므로 그의 어머니는 어린 이건희를 돌보기 어려웠다. 이건희의 어머니인 박두을 여사는 3남인 이건희를 낳은 후 젖을 떼자마자 그를 의령의 시어머니 댁으로 보낸다. 의령의 친가로 보내진 이건희는 갓난 아기때부터 친할머니집에서 친할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유모의 손에서 컸다. 유모에게는 이건희 또래의 딸이 있어 그 딸과 함께 오누이처럼 함께 자랐다.
    젊은 시절의 이병철 전 삼성회장과 아들 이건희 회장.
    그가 엄마를 다시 본 것은 네살이 되어서였다.네살이 되어서 그는 대구의 어머니에게 보내 졌던 것이다. 어머니를 처음 보았을 때 이건희는 좀 혼란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때까지 할머니를 어머니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에게 누구냐고 물어보기까지 할 정도였다. 또 형과 누나도 그때 처음 보았다. 누나들을 같은 형제인줄 모르고 ‘네 엄마는 누구냐’고 물을 정도였다. 그는 거기서 유치원을 다녔다. 어린 시절의 그는 예상 밖으로 풍족하게 지내지 못했다. 주로 까만 통고무신을 신고 다녔는데 어쩌다 흰 고무신이 생기면 아낀다고 구석에 숨겨 놓고 신을 정도였다. 먹고 살만 한 집안이었지만, 근검절약하는 가풍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집안은 증조모 때에 부를 쌓았다. 증조모가 한끼를 덜 먹고 베 한필을 더 짜는데 몰두했다. 안 먹고 안쓰는 것이 재산을 늘릴 수 있는 유일한 시대였다. 증조모 시절에 그렇게 악착같이 노력해서 4백석 지기의 부를 이루었다. 조부는 거기에 1백석을 더 늘려 5백석까지 만들었다. 그 5백석을 이병철의 형인 이병각이 3백석,동생인 이병철이 2백석씩 물려받았다. 대구 시절 그의 집안은 두평짜리 방3개,세평짜리 방 한 개 등 4개의 방에 모두 열 대여섯 식구가 살았다. 이병철 내외와 3남4녀, 그리고 일군들이 함께 살았던 것이다. 방4개에 열대여섯 식구가 살았으니 매우 비좁았다. 유치원 때 이건희가 소풍가는 날, 그의 어머니는 김 다섯장과 삶은 달걀 한개를 다른 형제들 보다 더 넣어주었다. 그날이 이건희의 생일날이어서 특별 보너스로 더 준 것이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근검절약으로 재산을 모아온 집안이어서 허풍더풍 쓰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당시 이건희 위로는 이맹희, 이창희 두 형과 인희,숙희,순희,덕희 등 네명이나 되는 누나가 있었다. 이병철은 그 당시 사업 때문에 몹시 바빴고 누나와 형들은 학업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온 가족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것이 이건희가 중학교 3학년때였다고 한다. 그날 온가족이 처음으로 만난 것을 기념해서 가족사진을 찍었을 정도였다. 그는 초등학교를 여섯군데나 옮겨다녔다.
    ㆍ홍하상
    작가. 기업인에 관한 책을 많이 써온 작가로 유명하다. 2003년에 국내 최초로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을 다룬 책 <이건희,그의 시선은 10년 후를 바라보고 있다>를 시작으로 <이병철 경영대전> <정주영 경영정신><주식회사 대한민국 CEO 박정희><세계를 움직이는 삼성의 스타 CEO> 등 국내의 기업가를 다룬 10여권의 저서를 냈다. 그 외에 <일본의 상도>, <중국을 움직이는 10인의 CEO> 등 일본과 중국의 기업인들에 관한 저서가 상당수 있다. 최근에는 <유럽명품기업의 정신>을 출간, 기업과 기업가 정신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다루었다. 1년의 절반 정도를 일본·중국·유럽 등 현장을 누비면서 직접 취재하는, 발로 뛰는 작가이다.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이후 논픽션 작가로 30여년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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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싼 장난감들을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을 즐기다
    구에서 사업을 하던 선친 이병철이 좀더 크게 사업을 하기 위해 1947년 5월 서울로 상경한다. 
    종로구 혜화동 163-25번지에 60평짜리 집을 사서 자리를 잡고 그 이듬해엔 서울의 종로2가에서 무역회사인 삼성물산공사를 차렸다. 
    이건희는 종로의 혜화국민학교에 다녔다. 혜화국민학교 2학년 때 6·25가 터졌다.
    이병철은 6·25가 일어났을 때 미처 피난가지 못했다. 
    이병철 일가는 적 치하에서 3개월 동안 상당한 고생을 했다. 
    자본가여서 인공치하의 내무서에 수시로 불려갔고 그가 타던 48년형 미국산 시보레 승용차는 징발되어 남로당 총책이었던 박헌영이 타고 다니기도 했다. 
    불안한 나날을 보내던 이병철 일가는 9월 28일,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이 수복되자 마산으로 내려갔다.
    이건희는 거기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마산에 살 땐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다시 대구로 전학을 했다. 대구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의 부친이 부산의 동광동으로 자리를 옮겨 고철수집업, 설탕과 비료 수입업 등을 했기 때문이다. 
    그도 부산으로 전학을 가게되었다. 부산에서는 두 번 전학을 했다.
    어린 시절의 이건희 회장.
    건희가 천장에 매달면 끈을 물고 빙빙 돌아가는 비행기,레일 위를 달리는 모형기차 등 당시 로서는 구경하기도 힘든 장난감을 가져와서 함께 놀던 생각은 나는데 말이 없고 장난도 잘 치지 않던 아이라 다른 기억은 거의 없다.” 부산사범부속 초등학교 시절,4, 5학년을 같이 다녔던 권근술 전 한겨레 신문 사장의 기억 이다. 아버지 이병철이 1950년대 피난지 부산에서도 사업에 성공했을 때이니까, 집안은 부유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게 있다. 그 비싼 장난감들은 그저 갖고 노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뜯어보고 다시 조립해보는 과학 탐구의 대상이었다. 이것은 이건희 뿐만 아니고,그 위의 형들 즉 이맹희와 이창희가 모두 그랬다. 그들 3형제는 신기한 장난감이나 물건이 생기면 갖고 놀다가 결국은 분해해보고 다시 조립 하는 것을 즐겼다. 이러한 취미는 줄곧 계속되어 그는 카메라를 뜯어보기도 하고,VTR, 훗날 심지어는 자동차 까지 뜯었다가 조립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른다. 그의 형 이맹희도 60대에 이르는 나이까지 세계의 명품 AV시스템은 모조리 구입해서 왜 그 성능이 좋은 지 그 구조을 뜯어보고 살펴보는 걸 낙으로 삼을 정도였다. 이건희가 부회장이었던 1980년대초 삼성그룹은 삼성정밀을 설립했다.
    삼성이 처음에 카메라 사업에 진출했을 때 그는 삼성정밀 사장을 불러 집에 카메라가 몇대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삼성정밀 사장이 카메라가 한 대밖에 없다고 대답하자 그는 카메라 회사의 사장이면 세계적인 카메라는 다 갖고있으면서 밤낮으로 연구해야한다고 권유한 적도 있었다. 이미 세계 일류 카메라의 구조에 대해 상당한 식견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의 이건희는 말은 별로 없고,혼자서 골똘히 생각에 빠지거나 장난감을 뜯어보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이 점은 그의 부친인 이병철도 그랬다. 이병철 회장도 혼자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는 스타일의 경영인이었다. “좀체 화를 내는 법도 없었고, 큰 소리와 욕설은 물론 보고 받을 때도 겉으로 좋다, 싫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다. 평생동안 아버지가 큰소리를 내면서 웃는 모습을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병철의 장남인 이맹희가 쓴<묻어둔 이야기>이라는 책에서 그린 아버지의 성격이다. 이건희 회장은 수줍어하고,부끄러움을 타며 남 앞에 나서길 싫어하는 체질이다. 그의 이러한 성격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형성되어 온 것이라고 볼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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