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과학 이야기

48 햄과 소시지, 어느 정도 먹어야 대장암에 노출될까?

浮萍草 2015. 11. 5. 11:16
    WHO가 인체 발암성이 확실한 ‘1군’ 발암물질로 분류한 소시지. /이덕환
    계보건기구(WHO)가 가공육과 붉은 살코기를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건강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소비자들은 큰 혼란에 빠져 버렸고 가공육을 생산하는 기업과 축산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드러내놓고 거부감을 표시하는 나라와 전문가도 있는 모양이다. 특히 가공육과 붉은 살코기를 많이 소비하는 유럽의 국가들이 그렇다고 한다. 평소 발암물질에 대해 유난히 민감했던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가공육을 찾는 소비자의 발길이 뚝 끊어져버렸다고 한다. ㆍ가공육과 붉은 살코기의 발암성
    WHO가 인체 발암성이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된 ‘1군’으로 분류한 가공육에는 소·돼지·양·닭·오리의 살코기·내장·피 등을 염장·숙성·발효·훈제의 방법으로 가공해서 향미와 저장 특성을 개선한 햄·소시지· 핫도그(프랑크푸르트식)·염장쇠고기(콘비프)·육포·통조림육·소스가 모두 포함된다. 인체 발암성이 의심스럽지만 과학적으로 충분한 근거를 찾지는 못한 ‘2A군’으로 분류한 붉은 살코기는 소·송아지·돼지·양·말·염소와 같은 포유류의 살코기를 말한다.
    WHO가 가공육이나 붉은 살코기를 한 번이라도 먹으면 누구나 대장암에 걸린다고 밝힌 것은 아니다. 가공육과 붉은 살코기가 대장암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밝힌 것도 아니다. 다만 장기간에 걸쳐 지나치게 많은 양의 가공육이나 붉은 살코기를 매일 섭취하면 대장암에 걸릴 확률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 WHO의 결론이다. 구체적으로는 지속 적이고 장기간에 걸친 하루 가공육 섭취량이 50그램씩 늘어나면 대장암 발병 가능성이 18퍼센트 늘어난다고 한다. 10개국의 전문가 22명이 다양한 식습관을 가진 국가와 집단을 대상으로 한 학술논문 800여 편을 검토해서 내린 결론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수행된 대규모 집단에 대한 연구의 결과가 특히 중요한 근거였다고 한다. 그런 결론은 거부하거나 평가절하 할 이유는 없다. ㆍ‘1급’이 아니라 ‘1군’이다
    우리 언론이 가공육의 발암성 분류를 ‘1군’으로 소개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WHO가 사용하는 용어는 ‘Group 1’이다. WHO 산하의 국제암연구소(IARC)가 매년 전문가 회의를 통해 인체 발암성이 과학적으로 확인된 화학물질과 환경요소를 추가한다. 가공육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모두 110 여 종의 화학물질과 환경요소가 1군으로 분류됐다.
    독성에 따른 분류로 잘못 인식되는 표현. /이덕환
    1군 발암물질에는 비소·석면·탈크·벤젠·벤조피렌·크로뮴·니켈·라듐·담배·디젤배기가스처럼 악명 높은 발암물질이 포함 되어 있다. 그런데 술·젓갈·햇빛·목재분진·모래먼지(실리카)·미세먼지·검댕도 1군이고 실내에서 고기를 구워먹기 위해 사용하는 조개탄에서 배출되는 가스도 1군이다. 심지어 일부 경구·호르몬 피임약과 폐경기 여성의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요법도 1군으로 분류된다. 같은 1군으로 분류되더라도 실제 발암 독성은 천차만별이라는 뜻이다. 세계적으로 매년 흡연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100만 명이 넘고 과음에 의한 사망자도 60만 명이 넘는다. 그러나 육류의 과다소비로 목숨을 잃는 사람은 3만 명 수준이라고 한다. 1군 발암물질이라고 무작정 두려워할 일은 아닌 셈이다. WHO의 발암물질 분류는 인체 발암성의 강도(위험성)에 따른 것이 아니다. 인체 발암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가 분류의 기준이다. 확실한 과학적 근거가 있으면 ‘1군’이고, 근거가 확실하지 않으면 ‘2A군’이나 ‘2B군’이 된다. 인체 발암성을 의심하기 어려우면 ‘3군’이고,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확실하면 ‘4군’이 된다. 그동안 전문가와 언론이 사용해왔던‘1급’ 발암물질이라는 표현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었다. ‘1급’이라는 표현을 소비자들은 발암성이 가장 큰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에게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1군’을 ‘1급’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Premium Chosun        이덕환 서강대 교수 duckhwan@sogang.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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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빛-술-젓갈-피임약도 발암물질?
    
    ㆍ육식과 첨가물을 멀리할 이유도 없다
    인간이 소화시킬 수 없는 셀룰로오스를 고급 단백질로 변환시켜주는 초식동물. /이덕환
    WHO가 육식을 포기하도록 요구한 것도 아니다. 단백질 섭취에 육류가 가장 뛰어난 식품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육식에 사용하는 초식동물은 인간이 직접 소화시키지 못하는 셀룰로오스(식이섬유)를 최고급 단백질 식품 으로 변환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현실적으로 육식이 전 세계에 일반화되어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심지어 100퍼센트 육류에만 의존해서 살 수밖에 없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종교·문화·생리적 이유로 육류 섭취를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가공육에 사용하는 아질산나트륨과 같은 식품첨가물이 문제라는 일부 언론의 지적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아질산나트륨은 거의 모든 국가가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식품첨가물이다. 더욱이 아질산나트륨이 들어있는 천연 야채와 곡물도 있다. 그런 아질산나트륨의 유해성을 주장하는 전문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질산나트륨이나 니트로소아민은 WHO의 발암물질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발암성을 주장하는 학술논문의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2010년 WHO의 검토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ㆍ실생활에 맞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가공육과 붉은 살코기의 건강한 소비에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줄 식약처. /식약처 홈페이지 캡처
    화학물질이나 환경요소의 인체 발암성을 확인하는 일은 쉽지 않다. 윤리적인 이유 때문에 인체에 대한 직접적인 실험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암에 걸린 환자에 대한 임상자료와 본격적인 역학(疫學) 조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해야만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WHO의 발암물질 분류가 유일한 것도 아니고 완벽한 것도 아니다. 미국·유럽연합(EU)·오스트레일리아처럼 독자적인 발암물질 분류 체계를 운영하는 나라도 있다. UN이 구축하는 ‘세계조화시스템’(GHS)도 있다.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의 전문성이나 운영방식이 완벽한 것도 아니다. 결국 인체 발암성에 대한 분류에는 상당한 정도의 과학적 불확실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식품안전관리기관과 전문가를 위한 WHO의 분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현명한 자세가 아니다. 식품 안전을 위한 업무를 담당하는 식약처와 관련 전문가들이 WHO의 결론을 고려해서 소비자들이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소비자는 그런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질 때까지 냉정하고 차분하게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WHO의 결론에도 불구하고 가공육과 붉은 살코기는 앞으로도 우리의 생존에 꼭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해 주는 좋은 식품으로 남게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암을 일으킬 가능성은 분명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햇빛·술·젓갈·피임약·X-선을 포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100퍼센트 안전이 보장된 천국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편식과 과식을 피해야 한다는 상식을 잊지 말아야 한다.
    Premium Chosun        이덕환 서강대 교수 duckhwan@sogang.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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