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F S = ♣ /조훈철의 문화재 이야기

6 춘향전의 이도령은 실존 인물?

浮萍草 2015. 11. 7. 07:00
    주 부석사에서 국도를 따라 봉화로 넘어가다보면,‘춘향전의 실존인물 이몽룡 생가’라는 뜻밖의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작자미상 허구의 창작소설로만 여겨 온 춘향전의 주인공 이몽룡이 실존인물을 모델로 탄생했다는 사실에 순간 숨이 멎는다. 
    본능적으로 운전대의 방향은 이몽룡 생가로 향하고 있다. 
    계서(溪西) 성이성(成以性, 1595~1664) 그가 바로 이몽룡의 실존 인물이란다.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에 가면 이몽룡 생가를 만날 수 있다. 
    여느 양반 가옥과 다름없이 솟을대문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사랑채 ‘계서당(溪西堂)’이 보인다. 
    사랑채는 안채로 연결되는 중문과 접해있고 다른 종가(宗家)처럼 사랑채 좌측에는 사당(祠堂)이 위치하고 있다. 
    사랑채와 안채가 하나로 연결된 특이한 ㅁ자형 구조의 전형적인 양반가옥이다. 
    이 곳은 현재 창녕성씨 계서공파 13대 종손(성기호 75세) 내외가 문화해설사 겸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종택을 지키고 있다.
    이몽룡생가 사랑채 계서당 정면. /조훈철

    성이성이 ‘춘향전’의 실존 모델이라는 사실을 학술적으로 밝혀낸 이는 국문학자인 연세대학교 설성경 교수이다. 그는 성이성 본인의 일기를 후손이 편집한 ‘계서선생일고(溪西先生逸稿)’와 성이성의 4대손 성섭(成涉 1718~1788)이 지은 ‘필원산어(筆苑散語)’,조선왕조실록에 보이는 성이성과 관련된 기록,그리고 민간에서 구전된 설화 등을 지난 30년동안 면밀히 대조 분석하면서 ‘춘향전’ 이야기 속의 역사적 실체를 밝히는 데 전념해 왔다. 먼저 소설 속 이몽룡은 16세에 남원 광한루에서 춘향이를 만나 사랑을 나누다가 그 이듬해 17세가 될 때 아버지가 동부승지로 임명되어 남원을 떠나게 된다. 성이성은 1595년(선조 28년) 영주시 외가에서 부용당 성안의(成安義)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13세 때인 1607년, 남원부사로 발령이 난 부친을 따라 남원에 갔다. 이곳에서 여러 스승을 모시면서 학문에 매진하던 중 부친이 광주목사로 승진해서 남원을 떠나게 된다. 이때 그의 나이는 17세, 결국 성이성이 남원에서 머문 기간은 5년이 된다. 이때 남원에서 성이성은 춘향을 만났을 가능성이 있다. 젊은 시절 두 인물은 유사한 생의 이력을 보이고 있다.
    계서당 현판 글씨. /조훈철

    이후 이몽룡은 여러 성현의 말씀을 탐독하여 과거에 응시하여 장원급제를 한 후 곧바로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온다. 한편,한양에 올라 온 성이성은 33세 때 식년시 문과에 급제한 후 관직 생활을 시작한다. 사간원, 홍문관 등 삼사의 요직을 거치면서 왕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네 차례나 암행어사(暗行御使)로 파견되는데 그 중 두 번은 남원으로 내려온다. 남원에 파견 당시인 인조25년 11월부터 적어온 친필 암행어사일지 한 권만이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온다. 소설 속 이몽룡보다 늦은 시기에 벼슬길에 오르고 암행어사에 제수되었지만 그 행적은 유사하다고 하겠다.
    Premium Chosun ☜        조훈철 前 동국대학교박물관 선임연구원 agora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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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이성의 시와 거의 일치하는 암행어사 이도령의 시
     사람이 암행어사가 되어 호남지방으로 내려가는 경로 또한 흥미롭다. 
    소설 속 이몽룡은 남대문을 출발하여 청파역에서 말을 타고 남태령을 넘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한편,성이성이 남긴 유일한 친필 호남암행일지에 나타난 경로를 보면,남대문을 나와 남관왕묘, 청파역,동작동,남태령,과천에서 용인에 도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만약 춘향전이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하지 않고 완전한 허구였다면 이동 경로가 이렇게 유사하기는 힘들 것이다.
    사당 동쪽에 위치한 500년 수령의 소나무, 일명 이몽룡 소나무. /조훈철

    이몽룡이 실존 인물을 모델로 삼았다는 결정적인 근거는 춘향전의 절정 부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변사또의 잔치상 앞에서 이몽룡이 던지고 간 칠언절구의 한시는 다음과 같다. 금준미주 (金樽美酒) 천인혈(千人血) 금동이에 좋은 술은 뭇 사람의 피요 옥반가효 (玉盤佳肴) 만성고(萬姓膏) 옥반의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촉루락시 (燭淚落時) 민루락(民淚落) 촛농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가성고처 (歌聲高處) 원성고(怨聲高)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도다
    한편, 성이섭의 4대손인 성섭은 그의 문집 ‘필언산어(筆苑散語)’에서 자신의 고조(高祖) 성이성이 남원땅에서 행한 ‘암행어사 출두 사건’이라고 분명히 밝히면서 그 내용을 소상히 기록해 두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준중미주 (樽中美酒) 천인혈(千人血) 술동이 안의 맛있는 술은 뭇 사람의 피요 반상가효 (盤上佳肴) 만성고(萬姓膏) 판 위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촉루락시 (燭淚落時) 민루락(民淚落) 촛농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가성고처 (歌聲高處) 원성고(怨聲高)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의 소리 높도다.
    위 두 편의 한시구절을 보면 네 글자만 제외하고 칠언절구가 정확히 일치한다. 이 사실은 춘향전이 명확한 실존 인물인 성이성을 모델로 하여 그 당시 전해오던 설화에 위대한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탄생된 소설이라는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다. 더욱 의미 있는 일은 소설 춘향전의 주인공 이몽룡이 실존 인물인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역사 속에 묻힐 수도 있었던 한 위대한 인물의 재발견이다. 어사 성이성! 그는 뛰어난 경세가이자 백성들의 억울한 사정을 살핀 어진 목민관이었다. 특히 강계부사 재직시에는 ‘관서활불(關西活佛)’로 칭송받기도 했다. 선생 사후 조정에서는 그 공적과 청렴함을 높이 평가해 청백리로 녹선했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기에 바쁜 현대인들에게 성이성 선생의 행적은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깊어가는 가을,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에 있는 이몽룡 생가를 한 번 방문하심은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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