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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거보이'가 '집밥 선생'이면 안 되는 이유

浮萍草 2015. 7. 16. 09:07
    '설탕 듬뿍' 간편한 조리로 TV예능 스타 된 外食사업가
    설탕이나 人工조미료 써도 대중식당은 맛만 내면 되지만
    미각장애 부를 만한 식단을 가족 식탁에 올릴 수 있겠나
    ▲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먹방(음식 먹는 방송)'에 이어 '쿡방(요리하는 방송)'이 뜨면서 최고의 '예능 대세(大勢)'로 등극한 이를 꼽으라면 외식 사업가 백종원씨일 것이다. 그가 험난한 방송 예능계를 평정할 수 있었던 비장의 무기는'쉽고 간단한 조리법'이다. 그의 손만 거치면 이때껏 주방 근처도 얼씬하지 않았던 중년 남성도 쉽게 따라 하는, 그러면서도 맛있는 요리로 변신한다. 쉽고 맛있는 그의 레시피는 설탕이 듬뿍 들어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오죽하면 시청자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슈거보이(Sugar Boy)'다. 생선조림이나 양념치킨은 물론이고 닭볶음탕,김치찌개,콩국수,심지어 된장찌개에도 설탕을 넣는다.지금은 값싼 재료지만 원래 설탕은 귀하고 비쌌다. 집들이 선물로 설탕 포대를 들고가던 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설탕이 흔하고 값싼 물건이 된 건 비교적 최근 현상이다. 인간이 설탕을 식용(食用)한 역사는 25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의 인도 땅에 살던 누군가가 사탕수수즙을 추출해 설탕으로 정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인도 요리에서 여전히 사용되는 짙은 갈색 덩어리 설탕 '구르(gur)'가 설탕의 초기 형태다. 유럽 사람들이 설탕을 처음 맛본 건 이보다 한참 늦은 11세기였다. 이슬람으로부터 성지(聖地) 예루살렘을 되찾겠다며 팔레스타인에 상륙한 십자군(十字軍)은 다디단 설탕 맛에 빠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베네치아가 설탕을 수입해 유럽에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입되는 양도 적고 가격도 엄청나게 비싸서 백종원씨처럼 펑펑 쓰진 못했다. 요리에 향신료로 조금 넣거나 귀한 약재(藥材)로 다뤘다. 설탕이 대중화된 계기는 유럽 국가들이 서인도 제도와 인도양의 섬 식민지에 대형 사탕수수 농장을 건설하고 아프리카에서 들여온 노예의 값싼 노동력을 착취해 설탕을 대량 생산하면서였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493년 두 번째 항해 때 오늘날의 아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에 사탕수수를 전했다. 이후 50여년이 지난 1550년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카리브 해·서아프리카·브라질·멕시코 등지에서 설탕 생산에 이미 한창이었고 영국·프랑스·네덜란드가 뒤를 바싹 쫓았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18세기에 접어들자 설탕은 어렵잖게 먹을 수 있는 대중 식품이 됐다. 당시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설탕은 공장 노동자들의 식생활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식품으로 여겨졌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설탕만큼 싸면서 고열량인 식품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음식저술가 해럴드 맥기(McGee)는 "홍차와 잼에 넣은 대량의 설탕은 노동계급에 (일하는 데 필요한) 연료를 공급했다"고 말한다. 영국 국민 1인당 연간 설탕 섭취량은 1700년 2㎏에서 1780년 5㎏으로 배 이상으로 폭등했다. 한반도에는 삼국시대에 설탕이 수입됐다고 짐작되지만 기록은 없다. 문헌상 최초 기록은 고려 명종 때 이인로가 쓴 '파한집(破閑集)'이니까 12세기 말에는 확실히 설탕을 먹은 듯하다. 고려 때 설탕은 중국 송나라에서 들여오는 값비싼 수입품이라서 부자들이나 아주 가끔 맛볼 수 있었다. 설탕이 우리나라에서 대중식품으로 보급된 건 1950년대 중반 제당공장이 설립되면서였다. 식품영양학자인 정혜경 호서대 교수는 "설탕을 한식에 두루 넣게 된 건 소득수준이 올라간 1980년대부터"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그 전까지 설탕은 한식에 거의 쓰이지 않았고 꿀이나 조청이 조금 들어가는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한식에 설탕이 대량 사용된 건 외식업계에서 비롯됐다고 음식 전문가들은 본다. 비용이나 노력을 크게 들이지 않으면서 음식 맛이 좋다고 느끼게 하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 설탕을 넣는 것이다. 단맛은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맛이기 때문이다. 갓난아기도 본능적으로 단맛을 찾는다. 일본의 미각 연구가 스즈키 류이치는 최근 국내 발간된 '미각력(味覺力)'에서"인간에게는 자신에게 필요한 성분을 추구하는 성질이 있다"며"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당분이나 지방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설탕을 과다 섭취하면 몸에 이롭지 않다는 건 설명이 필요 없다. 밥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 대부분이 필요 이상의 당분을 이미 섭취하고 있다. 게다가 자극적인 음식은 먹을수록 그 맛에 무뎌진다. 달게 먹을수록 더 단맛을 짜게 먹을수록 더 짠맛을 찾게 된다. 스즈키는 이를 '미각 장애(障礙)'로 규정하면서 "값싸고 간편한 음식을 먹은 대가로 정상적인 미각을 내놓으면 모처럼 건강에 좋은 요리를 먹어도 맛있게 느끼지 못 하고, 당분이나 염분을 과도하게 섭취하게 된다. 가능하면 이런 상태가 되지 않도록 이른 단계에서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중식당에서는 제한된 예산에서 맛을 내기 위해 설탕이나 인공조미료(MSG)를 쓸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설탕과 인공조미료는 몸에 해로운 물질은 아니다. 사먹는 손님이 선택할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쉽고 맛있어도 가족의 식사를 책임지는 엄마(또는 아빠)라면 그럴 수 없다. 음식에 설탕을 듬뿍 넣는 슈거보이 백종원씨가 훌륭한 '식당밥 백선생'일 수는 있어도 '집밥 백선생'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Chosun ☜       김성윤 문화부 음식전문 기자 gourme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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