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 맛 세상

소박해서 더 값진 陶藝家의 시골 밥상

浮萍草 2015. 8. 20. 09:25
    평범한 밥상 위에 쌉쌀한 상추·나물·배추며 
    빈대떡 녹두까지 식구가 직접 재배·채취한 것들 
    곤지암 陶窯서 만난 김기철은 유약을 쓰지 않고 
    白磁 굽듯이 自然에 순응한 食재료만 썼다
    ▲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른 아침 빗질한 자국이 정갈한 흙길 한편 꽃달개비 파란 꽃잎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장닭이 푸더덕거리며 나타나 부지런히 모이를 쪼았다. 산비탈 아래 상추며 고추 따위를 심은 푸성귀밭이 있었고 뒤로 나무 울타리만 두른 닭장에서 암탉 네댓 마리가 새끼들을 살뜰히 보살폈다. 경기도 곤지암에 있는 도예가 김기철(82)의 보원요(窯)는 어릴 적 시골 할머니 집처럼 푸근하고 자연스러웠다. 보원요를 찾아간 건 음식이 훌륭하단 소문 때문이었다. 김기철은 자신의 작업장을 찾는 손님들에게 한 끼 식사를 대접하는데 맛있는 걸 넘어 감동스럽기까지 하다는 게 소문의 핵심이었다. 과거 그의 책을 펴낸 출판기획자는"음식을 먹는다기보다 생명력을 먹는다는 느낌"이라고 감탄했다. 그래서 그에게 소개받아 그 감동스럽다는 밥상을 맛보러 보원요를 찾았다. 도예가의 아내가 정성스럽게 차린 점심상을 받았다. 언뜻 봐서는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밥상이었다. 하지만 채소 맛이 완전히 달랐다. 상추는 잎이 질기다고 할 정도로 두꺼웠고 쌉쌀한 맛이 진했다. 식탁에 내놓고 조금 지나면 풀 죽어 시들시들한 여느 상추와는 종(種)이 다르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여름이라 하루에 서너 알밖에 얻지 못한다는 토종닭의 달걀로 만든 달걀찜은 진하고 선명한 노란빛을 띠었다. 지난 가을 담갔다는 김장김치는 여전히 싱싱하고 아삭했다. 맛의 차이는 재배 방법에서 비롯됐다. 상추는 물론이고 김치를 담근 배추,들깨 국물에 무친 머윗대며 고추장에 박아 장아찌로 만든 씀바귀,섬쑥부쟁이,왕고들빼기,비름나물가죽나물 등 각종 나물은 물론 빈대떡에 들어간 녹두까지 모두 보원요 식구들이 직접 재배하거나 가마 주변 땅에서 채취한 것들이었다.
    ▲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법정 스님 등 눈 밝은 이들에게 귀하게 대접받았던 그의 백자(白磁)지만 그는 도예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자연스럽다'를 최고의 경지로 여긴다"는 김기철은 도예가의 길도 자연스럽게 밟게 됐다. 혹자는 운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40대 중반이었으나 서울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일사 김봉룡 옹의 '나전칠기전(展)'을 우연히 관람했어요. 너무 감탄했고 충격받았어요. 누구는 이렇게 창작하며 사는데 난 뭐 했나. 앞이 캄캄하더라고요." 얼마 후 그는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 3개월을 드러누워야 했다. " 집사람 친구가 '심심한데 이 흙 가지고 장난이나 해보세요'라며 청자흙 한 덩어리를 갖다줬어요. 그저 주병 따위를 만들어 거실 피아노 위에 올려놓았더니 보는 사람마다 재주가 좋다고 칭찬하더라고요." 여기저기 도자기 배울 곳을 찾다가 이천의 한 도요(陶窯)에서 실습하게 됐다. 여기서 만난 한 도공과 1978년 오늘날 보원요가 있는 곤지암 터에 도자기 가마를 세웠다. 가마를 시작하고 1년쯤 되었을 때 우연히 전시회를 열었는데 이게 성공을 거뒀다. 물레를 쓰지 않고 손으로 빚은 작품이 낯설면서도 자유분방한 느낌을 주었다. 당시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그에게 공간대상 도예상을 줬다. 전시 성공에 고무된 김기철은 새로운 시도를 했다. 유약을 바르지 않고 백자를 구운 것이다. " 다양한 색감과 문양이 나타나더라고요. 기름칠한 것처럼 반들반들 윤기도 나고." 김기철이 곤지암에 가마를 만들고 나서 도자기 굽는 일보다 더 관심을 가진 건 농사였다. "고등학교 때 6·25 사변이 터져서 고향인 충북 괴산의 큰집으로 3년을 피난 가 있었어요. 가는 날부터 지게질을 했는데 6·25가 끝나고도 서울로 안 나오겠다고 했어요. 농사일이 힘들지만 재미가 있었어요. 제일 나쁜 논을 일구라고 받았는데 제일 수확을 많이 했어요." 그는 가마 주변 3000여 평 논밭에서 쌀은 물론 배추며 상추·녹두 등 각종 채소와 곡물을 직접 재배한다. 농사를 지을 때도 자연의 방식에 순응하고 전통 방식을 따른다. 비료나 살충제를 치지 않는 건 당연하고, 비닐로 하우스를 만들지도 않는다. 잡초가 자라지 못하도록 농작물 주변 땅에 검정 비닐을 치는 '멀칭'도 하지 않는다. "식물이 자라면서 잎사귀와 뿌리를 통해 땅과 공기로부터 무수한 성분을 빨아들여야 하는데 멀칭을 하면 빨아들이질 못해요. 비료를 치고 하우스 재배하면 뜨겁고 수분이 많아지니 식물이 뻥튀기같이 되지요. 그래서 요즘 채소나 과일은 향이 없어요. 냉장고에 며칠만 두어도 흐물흐물 물렁 팥죽이 되지요." 자연에 순응하는 전통 방식으로 키운 재료에 정성이 더해지니 맛이 없을 수 없다. 김기철 자신은 '소박하고 촌스러운 밥상'이라지만 요즘 찾아보기 힘든 진짜 시골식 밥상이니 이보다 더 호사스럽고 귀한 밥상일 수 없다. "옛날 시골 농사꾼들이 해먹던 소박하고 촌스러운 밥상이 주는 감동이 그렇게 큰 줄 몰랐어요. 흔히 떠들어 붙이는 가짜 유기농이 아니라 순수한 재래식 재료이기 때문에 채소 한 잎을 씹어도 그 향취와 질감이 다르다고 찬사를 해댑니다. 손님들이 밥상에 둘러앉아 맛있게 식사하는 모습이 나 또한 얼마나 흐뭇하고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김기철은 "된장찌개, 김치 한 가지라도 따끈따끈한 밥 한 그릇과 정성스레 차려줄 때 우리의 영혼은 살이 찐다"고 했다. 영혼에 한껏 살이 오른 채 서울로 돌아왔다.
    Chosun ☜       김성윤 조선일보 문화부 음식전문 기 gourmet@chosun.com

    草浮
    印萍